말레이시아 시골 초등학교. 고학년인 12살 소녀 '자판'은 낙천적 성격의 소유자다. 뭐든 신기하고 재미있을 나이, 친구 '파라', '마리암'과 티격태격해도 못 이긴 척 함께 놀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다. 자판의 아빠는 아이에게 별로 간섭하지 않고 놔두지만, 엄마는 외동딸 장래를 염려해서인지 엄하게 대하며 간섭도 잦다. 그래서 자주 다툰다.

그렇게 계속되던 일상에 급격한 변화가 찾아온다. 자판이 또래 중 처음으로 여성의 신체 변화를 시작한 것이다. 학교와 가정은 그런 12살 소녀를 배려하며 보살펴야 할 텐데, 엄격한 동네 분위기는 오히려 자판을 억압만 할 뿐 돌봄엔 무관심하다. 문제는 자판에게 찾아온 낯선 변화가 아니다. 여성이라면 겪는 신체 변화를 터부시하는 주변 분위기다. 파라를 위시한 친구들은 자판을 따돌리고 편견을 조장한다. 억울한 피해자가 보호받을 곳은 어디에도 없다. 교사들은 유난을 떤다며 방치하고, 동급생들은 별 이유도 없이 괴롭힘에 가담한다. 엄마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하는 데 일조한다.

고립된 자판 주변에 이상한 기운이 스며든다. 신체 변화는 통상을 넘어선다. 그러나 안전하게 도움 받을 상대가 없기에 불안만 증폭되며 원하지 않는 변화를 촉진한다. 자판이 속앓이하는 가운데 주변에 집단 발작과 공포가 퍼지고, 혼란의 원흉으로 그가 지목을 당한다. 따돌림은 점점 강도가 심해진다. 소녀는 더는 참고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익숙한 공포 장르에 3세계 국가의 개성을 첨가한 변주

 <호랑이 소녀> 스틸
<호랑이 소녀> 스틸오드(AUD)

<호랑이 소녀>는 아마 관객 대부분이 처음으로 접할 말레이시아 영화일 것이다. 게다가 공포영화다. 이쯤 되면 동남아시아 공포영화의 특징 중 하나인 원한 맺힌 귀신을 떠올릴 법하지만, 이 영화는 10대 소녀가 월경을 처음으로 맞이하며 겪는 신체적 공포를 오컬트 장르와 접목하는 개성을 선보인다. 동아시아 영화로선 무척 드문 사례다. 물론 서양에서도 월경을 직접 표현하는 건 드문 경우긴 하지만 말이다.

이 영화를 보게 된 장르 영화 애호가들이라면 몇 편의 서양 10대 공포물을 언급할 것이다. 가장 먼저 머릿속에 등장할 작품은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1976년 <캐리>다. 따돌림을 받던 10대 소녀가 월경과 함께 잠재된 초능력을 충동적으로 개화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밀도 깊게 다룬 작품의 원작은 현대 미국 통속문학의 거장 스티븐 킹의 소설이기도 하다. 크게 성공한 것은 물론 속편과 리메이크까지 꾸준히 이어지며 공포영화 장르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캐리>에 비교하면 평가는 뒤처지지만, 10대 호러 장르 변주로 3편까지 이어진 <진저 스냅> 시리즈도 언급할 만하다. 역시 10대 자매가 첫 월경을 맞으며 겪는 신체 변화를 늑대인간이란 소재와 연결해 장르적 변주를 모색한 작업이다. 당사자로선 두려운 동시에 생소한 경험을 위험한 힘을 가진 낯선 존재로의 변이와 연결하고, 자매의 서로 다른 대응방식이 운명을 결정하는 점 등이 역시 후대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말레이시아 산 공포영화 <호랑이 소녀>는 <진저 스냅>의 배경을 동남아시아로, 늑대인간 전설을 지역에 실제로 존재하는 호랑이에 관한 공포로 변주하는 모양새다. 구성 측면에선 공포영화 애호가들에겐 오히려 익숙한 형식이지만, 10대의 성장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는 여성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말레이시아 사회의 명암을 소재로 삼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변주를 이룬다. 작품이 공개된 후 칸과 시체스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영화제와 평단의 주목을 받은 데에는 그런 특별한 뭔가가 포착되었기 때문일 테다.

본 작품이 주목받은 핵심 요소라면, 첫 번째로 장르 영화계에선 익숙한 소재와 장치를 잘 변주했다는 점일 테다. <캐리> 이후 다뤄지기 시작한 10대, 특히 성적 차별점이 본격화되는 어린 소녀들이 겪는 혼란과 긴장을 사회적으로 탄압과 공포의 대상인 '괴물'과 연결하는 구도는 서구 관객에게 그렇게 낯설거나 난해하지 않은 접근법이다.

하지만 문화적 배경이 확연히 다른 말레이시아의 사회적 요소와 융합되면서 이야기는 단조롭지 않게 흥미를 추가한다. 그렇게 절반은 예측이 가능하되, 나머지 절반은 생소한 발견을 가능케 하는 신예 감독의 작업은 영리하게 세계 영화계 틈새를 파고들었다. 근래 한국 독립영화가 놓치는 구석에 약진하는 3세계 영화들의 전형적인 패턴이 여기에서도 발견되는 셈이다.

닫힌 사회와 성에 관한 금기가 불러온 비극과 전복

 <호랑이 소녀> 스틸
<호랑이 소녀> 스틸오드(AUD)

그렇다면 대체 <호랑이 소녀>는 익숙한 그릇에 어떤 색다른 내용을 끼얹었기에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은 걸까? 다들 궁금해할 것이다. 초반에는 사실 해외의 높은 평가가 잘 공감이 되진 않았다. 12살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한국 독립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학교 내 따돌림 문제는 생생하게 표현되었지만, 저예산 독립영화답게 공포 장르에 요구되는 특수효과나 조역들의 연기에선 취약점도 종종 눈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에 왜 다들 그리 열광했을까 물음표가 떠오를 때가 적지 않았다.

말레이시아에 대해 우리는 대개 싱가포르처럼 1세계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시민사회까진 아니라도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는 경제 수준이나 사회적 자유도가 높은 나라로 흔히 인식하는 편이다. 물론 딱히 틀린 평가는 아니지만, 해당 국가가 가진 보수적 풍토와 종교적 편향 문제를 감독은 집요하게 파고들며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파급되는 긴장감을 100% 활용한다. 자신이 나고 자란 국가의 어두운 이면을 그저 소재로서만이 아니라 주제의식으로 각인하려는 의지가 명확하다.

말레이시아는 다민족 국가인 동시에 이슬람을 국교로 표방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주류 민족인 말레이계는 대개 이슬람 신자, 소수이지만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중국계나 인도계는 종교부터 다르다.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으로 도시가 아닌 시골로 갈수록 말레이계의 보수적 이슬람 성향이 날로 심화하는 중이다. 그런 사회적 권위주의화가 이 영화에는 고스란히 묻어나는 셈이다.

자판은 자기가 원한 게 아니라, 두려움 속에 여성성이 발현되는 중이다. 그러나 올바른 성교육을 통해 소녀를 안정시키는 역할은 주변에서 통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은 자기 몸에 일어나는 낯선 변화를 오직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생리현상으로 당연히 풍길 수밖에 없는 비릿한 냄새를 학교에선 불경하게 여기며 기도 시간에 출입을 금지한다. 마치 불순한 죄를 지은 마냥 배제된 자판을 마침 먹잇감을 노리던 또래 학생들은 죄인처럼 취급한다. 교사들 역시 권위주의에 찌들어 자기 몸 간수 제대로 못 한다며 주인공의 간절한 호소를 외면하다 사고가 생기면 수습 대신에 책임을 떠넘기기 일쑤다. 마지막 피난처가 되어야 할 가족 역시 제 역할 방기하는 건 매한가지다.

주인공은 필사적으로 두려움을 떨치고 '정상'적인 삶을 이어가려 애쓴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에도 누구 하나 화답하지 않는다. 친구 중 일부는 심심풀이 혹은 열등감의 표출로 가학적인 괴롭힘을 행하고, 나머지는 표적이 될까 봐 침묵하거나 방조로 일관한다. 정작 약자를 동정하거나 타인을 구하려 애쓰는 건 자판뿐이다. 하지만 소녀의 착한 심성과 뉘우침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 잠재된 야수성은 그렇게 모든 수고가 허사가 된 후 불가역적으로 자포자기한 주인공에게 깃들기만 하면 되는 셈이다.

서양 공포물에서 흔히 차용될 늑대인간이나 흡혈귀, 혹은 원한 맺힌 혼령의 빙의 같은 익숙한 요소와 다르게 하필 '호랑이'를 닮아가는 주인공의 수난은 어떤 함의를 지닐까? 말레이시아는 이미 인위적으로 멸종당한 한국과 달리 여전히 호랑이가 야생에 출몰하는 지역이다. 인간이 자연을 개발하며 서식지가 파괴되고, 먹잇감이 부족해지며 종종 충돌을 빚고 있는 자국의 실태를 활용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괴물이나 민담으로만 남은 귀신보다 몇 곱절 더 흥미로운 실체적 공포를 가미한 기획이다. 시골 주민들이 실제로 경계하고 두려워하게 마련인 야수와 어른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10대의 폭주를 연결하는 건 오히려 정석적인 활용일 테다.

말레이시아 10대 공포물의 사려 깊은 매력

 <호랑이 소녀> 스틸
<호랑이 소녀> 스틸오드(AUD)

월경 같은 필연적 생리현상을 죄악시하며 언급하기조차 꺼리는 폐쇄된 시골 마을, 성적 만능주의만 외치며 정작 아이들 사이에서 왕따가 횡행하는 실태 파악도 하지 못하는 권위주의 학교와 엄격함을 핑계로 자식의 자유의지를 억압하는 가족 틈바구니에서 고통을 당하는 건 자판뿐만이 아니다. 소녀를 괴롭히는 친구건, 공감의 손길을 내미는 친구건 같은 운동장 안에서 역할이 다르기만 한 것이다. 주인공이 겪는 신경증과 발작을 다른 아이들도, 심지어 일부 교사들도 더불어 당하는 건 호환이 특정인에게만 가해질 리 없는 것처럼 사회적 억압이 불러온 부정적 영향력을 은유하는 걸로 보인다.

여기에 추가해 전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과잉된 SNS 열풍도 살짝 꼬집는다. 아이들은 휴대전화로 뭐든 계속 촬영하고 동영상을 게시한다. 히잡을 두르건 말건 10대의 문화는 그런 것이다. 하지만 이를 조장하며 동시에 규제하는 어른들의 온라인 사용은 영화 속 돌팔이 의사처럼 상업주의와 자기 자랑에만 빠져 도저히 청소년의 모범이 될 희망은 영 보이지 않는다. 처음엔 뜬금없어 보이던 세로화면 구사의 의미가 조금씩 이해된다. 투박하지만 명확한 의사 표시다.

아무리 애써도 답 없는 어른들에 기대할 것도 없고, 통제와 억압 외엔 제시하지 못하는 동네에 질린 소녀는 차라리 야수가 되는 게 행복할지 모른다. 문제는 자판만 그런 처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주인공의 일탈을 동경하고, 강요된 삶에서 탈출을 꿈꾼다. 그런 10대의 집단적 반응은 의미심장한 전개다. 톰 소여가 해적이 되는 모험을 떠날 때 혼자가 아니던 것처럼, 잠재된 불만과 자유를 향한 욕구는 시골 마을의 통제력이 쇠퇴하는 틈새만 기다렸던 셈이다. 사회풍자가 적절히 가미된 <호랑이 소녀>는 몇몇 한계에도 불구하고 흥미진진함을 놓치지 않는다. 시작은 뻔해 보였는데 결말에 이르면 꽤 놀라운 감흥에 도달할 영화다.

<작품정보>

호랑이 소녀
Tiger Striper
2023|말레이시아|오컬트 바디 호러
2025.05.07. 개봉|95분|12세 관람가
감독/각본 아만다 넬 유
출연 자프린 자이리잘, 디나 에즈랄, 피카 장르
수입/배급 오드(AUD)

2023 76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대상

호랑이소녀 아만다넬유감독 말레이시아영화 바디호러 자프린자이리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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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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