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세계사동물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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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은 일정한 시설 내에 살아있는 동물을 사육하고 관람하는 곳으로 현대인들에게도 친숙하다. 고대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진귀한 짐승을 잡아다가 길렀다는 기록이 종종 등장한다. 프랑스의 루이14세 등 절대왕권을 휘두른 군주들은 '권력의 상징'으로 코끼리, 사슴, 페르시아 염소, 타조 등 진귀한 동물을 수집하여 왕궁에서 사육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의미에서 대중적인 동물원이 탄생한 것은 1752년 건립된 오스트리아의 쇤부른 동물원이다. 1779년 오스트리아 황제 요제프 2세가 쇤부른 동물원을 사상 최초로 일반인에 개방한 것은 근대식 동물원의 시초로 불린다. 이후 18-19세기에 런던, 파리, 베를린 등 유럽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잇달아 동물원들이 탄생하며 점차 지금과 같은 문화 시설로 자리 잡는다.
'제국주의 시대'를 맞이하여 유럽이 동물을 바라보는 인식은, 단순한 수집의 대상을 넘어 점차 극단적인 방식으로 변해갔다. 서구권에서는 상류층을 중심으로, 오직 인간의 쾌락을 위하여 살아있는 동물을 사냥하고 전리품으로 삼는 '트로피 헌팅'이 유행했다. 인간들은 동물의 사체, 머리, 가죽, 뿔 등을 박제하여 마치 트로피처럼 집에 보관했다.
또한 트로피 헌터들은 자신의 힘과 권력을 과시하여 크고 공격적인 사냥감을 노렸다.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로 지배하던 시절, 왕족과 상류층들이 해마다 건너와 호랑이 사냥을 즐겼다고 한다. 역대 영국 국왕인 조지 5세, 엘리자베스 2세 등도 인도를 방문하여 사냥에 참여하거나 관람했던 기록이 남아있다. 1882년에는 한 해에만 영국인이 살상한 인도호랑이가 무려 1.726마리에 이르렀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트로피 헌팅을 광적으로 선호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퇴임 이후 아들과 함께 아프리카로 건너가 사냥을 즐겼고 불과 11개월 사이에 코끼리, 호랑이, 얼룩말 등 무려 11400마리에 이르는 동물들을 살상했다고 한다. 루스벨트가 사냥한 동물들의 사체 중 다수는 박제되어 미국 국립자연사 박물관으로 넘겨졌다.
트로피 헌팅이 유행하면서 박제된 동물의 사체들은 악어 머리로 만든 화분받침대, 곰의 머리와 가죽으로 만든 의자, 48마리의 박제된 토끼들이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듯한 연출 등 기괴한 장식물과 소품으로 활용되어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당시 부유층들 사이에서는 의인화된 박제품을 소장하는 게 유행이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트로피 헌팅은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합법적으로 성행하고 있다.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아프리카 국가들은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국가 수입원인 트로피 헌팅을 묵인하고 있다.
동물 향한 인식의 변화
▲<벌거벗은세계사> 중 한 장면tvN
동물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산업혁명'부터다. 석탄과 석유가 상용화되기 이전만 해도 인류가 기름을 얻는 주요한 수단은 고래였다. 특히 많은 고래 중에서도 질 좋은 기름이 나오는 '향유고래'는 인간들의 사냥 1순위가 됐다. 산업혁명 초창기에 기름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고래를 사냥하는 포경산업도 크게 융성하게 됐고, 수많은 고래가 인간의 필요성에 의하여 무자비하게 학살당했다.
1857년부터 세계 최초로 석유가 등장하고 대체제가 생기면서 비로소 무분별한 포경산업에는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이 당시 입은 피해가 워낙 컸던 향유고래는 지금까지도 개체수를 회복하지 못하고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고 있다.
애견 문화의 발전도 산업혁명 시기의 중요한 변화였다. 서구권에서 애견 문화는 이미 16세기부터 시작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상류층의 전유물이었고 애완견이라기보다는 사냥개를 기르는 용도에 가까웠다. 하지만 19세기 들어 도시화 속에 경제적 여유가 늘어난 중산층과 일반 가정을 중심으로 애완견 문화가 확산된다. 당시 영국의 군주였던 빅토리아 여왕도 수십 마리의 강아지를 키운 애견인으로 유명했다.
한편으로 이 시기에는 인간의 취향에 맞추기 위하여 의도적인 교배를 통한 품종개량이 성행하기도 했다. 현재 지구상에 있는 400여 종의 견종 중 80-90% 이상이 19세기 품종개량을 통하여 탄생했다. 이상적인 외모의 개를 향한 인간의 욕망 때문에 강제로 품종개량을 당한 닥스훈트, 푸들, 포메라니안 등은 수많은 '유전병'이라는 부작용을 안게 됐다.
19세기 미국 뉴욕시에서는 길거리에서 주인 없이 떠돌이 개를 도살하는 정책이 시행된다. 육종가(동물의 품종개량을 시행하는 직업)들이 만들어낸 순종 혈통 강아지들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실행한 정책이었다. 1836년 한해에만 뉴욕 일대에서 무려 8천여 마리에 이르는 떠돌이 개들이 학살당했다고 한다. 당시 미국인들은 개들을 철제 우리에 가둬 물에 빠뜨려 익사하는 잔혹한 수법을 사용했다. 놀랍게도 이런 방법은 무려 1894년까지 무려 40년 가까이 계속됐다.
또한 동물 산업의 발전은 서커스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코끼리, 호랑이, 낙타 등 여러 동물들은 혹독한 훈련을 거쳐 공연에서 각종 곡예를 선보이며 많은 인기를 끌었다. 오늘날에 서커스는 훈련을 빙자한 '동물 학대'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인간의 동물 활용방식은 또다시 변화한다. 두 번의 세계대전과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동물은 인간을 대신하여 희생하거나, 문명 발전과 경쟁을 위한 실험 도구로 활용되기에 이른다. 1차대전 기간에 미국은 말 100만 마리를 해외로 지원했는데 전쟁 기간 동안 무사히 귀환한 것은 단 200여 마리에 불과했다고 한다. 2차대전 시기 소련에서는 탱크를 파괴하기 위한 목적으로 폭탄을 장착한 군견을 활용하기도 했다.
냉전 시대에는 우주 개발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강아지와 고양이 등이 인간을 대신하여 우주비행선에 승선하여 실험에 투입되기도 했다. 또한 현대전이 점차 발전하며 동물들은 지뢰탐지형 군견, 해상정찰용 돌고래 등이 개발되어 세계 각국에서 적극 활용되고 있다.
오늘날의 동물들은 이제 단순한 도구로서의 역할 넘어, '인류의 생명을 연장시킬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2차대전 이후 전 세계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식량문제'가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1950년대 미국은 부족한 농업생산량을 만회하기 위하여 고기 소비를 촉진했고, 가축사육제한이 풀리면서 축산업이 급성장했다. 육류 생산성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공장식 축산' 시스템이 활성화되면서 대랑 가축 사육이 가능해졌다. 유엔식량농업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전세계 육류 소비량은 1960년대 7백만 톤에서 2023년 기준 3억 7100만 톤으로 5대 이상 증가했다. 이처럼 닭, 소, 돼지 등 동물의 육류는 오늘날 필수 식량자원으로 꼽히며 인류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의학의 발전에 있어서도 동물의 역할은 매우 컸다. 동물유래의약품은 동물의 장기나 체액에서 유효성분을 추출하여 만든 치료제를 뜻한다. 개의 췌장에서 발견한 인슐린은 현대인들의 대표적인 질병인 당뇨병을 치료하는데 효과가 있다는 게 확인됐다. 코로나19팬데믹 시기에 백신 개발에서는 실험용으로 사용된 쥐의 역할이 컸다. 이처럼 동물들은 다양한 백신개발과 유전병의 치료까지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더 나아가 현대 의학에서는 동물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장기이식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과정에서 동물 실험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는 동물 실험 영상들이 공개되면서 생명윤리가 지켜지지 않고 있는 잔혹한 현실에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실험에 적합한 유전형질을 갖고 있거나 사람의 특성과 가깝고, 사람에 대한 충성심도 높은 동물인 강아지 비글. 원숭이 등이 실험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실험실에서 태어나 실험실에서 운명을 마쳐야하는 동물들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2022년 국내 동물단체와 실험기관의 협의로 29마리의 비글들이 구조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비글들은 모두 새로운 가정으로 입양됐다. 사람에게 그토록 큰 상처를 받고도 여전히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비글의 모습은, 그에 대비되는 인간의 잔혹함을 일깨우며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자극했다.
오늘날에는 '동물 복지'가 세계적인 화두로 조명받고 있다. 2019년 미국 환경보호청은 2035년까지 신약 개발에 동물 실험 의무를 폐지하기로 했다. 축산분야에서도 과거의 공장식 축산 시스템을 벗어나 넓은 방목환경과 자연사료 방식의 보급을 통하여 동물복지를 강화하는 체제로 변화하고 있다.
"동물의 삶도 우리 삶만큼 중요하다. 그들도 지구라는 집에서 우리의 이웃이다"는 동물학자 제인 구달의 격언이다. 인간의 삶에서 동물이 없었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인류는 지금처럼 발전된 문명을 형성하지 못한 것은 물론, 아예 생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동물이 인간에게 전해준 수많은 선물처럼, 이제는 인간이 동물들에게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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