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가 사망한 날, 당신이 꼭 봐야 할 영화

[김성호의 씨네만세 1015]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과 <제인 오스틴 북 클럽>

문자가 없었다면 우리는 기껏해야 동굴에 벽화나 그리고 있었을 테다. 당신의 지적 수준을 무시하려는 게 아니라 문자의 발명이 그만큼 대단한 일이었단 얘기다. 문자를 통하여 인간은 저의 세계를 당대를 넘어 미래로까지 확장했다. 또한 문자를 통하여서 저의 인식이 과거와 통하도록 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지식의 보고로써, 문자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문자를 통하여 인간은 선사시대에서 비로소 역사시대로 진입했다. 문명을 일구고, 역사를 썼다.

인류는 문자를 활용하는 수많은 장치를 이룩했다. 그중 문자 문명의 결정체라 불릴 만한 도구가 바로 책이다. 인류는 물질세계에서 이룩한 모든 것들을 개념화해 책 안에 담았다. 도로와 수도를 놓고,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치는 모든 방법을 책으로 썼다. 군사를 이루고 제도를 세우는 일, 다스리고 교육하는 일도 책 안에 기록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이야기뿐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까지 책으로 써냈다. 책은 인류문명 그 자체가 됐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 또 두 번째 금속활자본인 구텐베르크의 <불가타 성경>은 인류역사의 새 장을 연 순간이라고 평가된다. 인간이 일일이 손으로 기록하거나 조악한 목판으로 찍던 책을 비로소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인류는 최근에 이르기까지 기술과 지성, 감성과 이성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발전의 시대를 구가했다. 앞선 문장에서 오늘이 아니라 최근이라 적은 것은 기술을 제하고 다른 세 가지는 꾸준히 발전했다 말하기 민망한 부분이 있어서다.

4월 23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 World Book and Copyright Day'이다. 이날이 하필 책의 날이 된 것은 서양 문학의 두 기둥인 미겔 데 세르반테스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1616년 4월 23일에 사망한 때문이다. 이들이 살던 시대엔 구태여 책의 날이랄 것도 없었으나, 책 읽는 이를 지하철 한 칸에서 한 명이나 만날까 말까 한 오늘에 이르러 특별히 기념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제인 오스틴 북 클럽 포스터
제인 오스틴 북 클럽포스터소니 픽처스 클래식

제인 오스틴을 읽는 여섯 사람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을 맞아 어떤 영화를 소개할지 잠시잠깐 고민하였다. 읽기를 즐기는 나는 지난 씨네만세 천 여 편 글 가운데 책과 관련한 적잖은 영화를 소개하였고, 개중에선 <러브레터> 편이나, <투모로우> 편과 같이 영화 그 자체가 아닌 영화 속 책 이야기에 집중해 써내려간 글까지 있었던 터다.

무튼 아직 다루지 않은 책과 관련한 영화 가운데 따로 소개할 만한 작품을 헤아리던 중 아직 이 영화를 소개한 적 없다는 사실이 반짝 떠올랐다. 로빈 스위코드의 2007년 작 <제인 오스틴 북 클럽>, 이보다 적절한 영화는 채 얼마 되지 않는 것이다. 책, 그중에서도 특별한 지위를 형성하는 문학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이로움을 이 영화만큼 다감하게 표현한 작품이 드문 때문이다.

영화는 6명의 사람들이 모여 진행하는 책모임을 중심으로 한다. 제목이 말해주듯 영국 문학가 제인 오스틴의 유명 소설을 제 집에서 한 권씩 돌아가며 발제하는 책모임이다. 중산층 여성들의 삶과 욕구, 심리를 다루었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작가답게, 이 책모임 또한 여성들이 주축을 이룬다. 여성들이 모인 책모임이 빚어내는 섬세하고 온유한 분위기가 영화 전체를 휘감아 흐른다.

남성과 여성의 독서취향을 딱 잡아 말하기는 어렵겠다. 요즈음 세상에선 인종이나 성별, 학력이나 종교 따위의 특징으로 개인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때문이다. 그것이 심지어 분명한 경향성을 드러내어 판단의 효과적 기준점이 될 때조차 그러하니, 나는 이것이 과도하다 여기지만 공식적으로 공표되는 글에선 조심할 밖에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한국에선 유독 민감하기 짝이 없는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니만큼.

이 영화는 그와 같은 차이를 흥미롭게 드러내는데, 제인 오스틴에게 각별히 여성들이 호응하고 남성들은 좀처럼 그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상황을 통해서다. 극중 조셀린(마리아 벨로 분)이 그릭(휴 댄시 분)과 처음 만나는 장면이 꼭 그러한데, 그릭은 SF소설 행사를 찾았다가 다른 일로 건물에 들어선 조셀린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때 둘은 책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둘이 각자 언급하는 두 작가 제인 오스틴과 어슐라 르 귄 사이만큼이나 거리감이 있는 것이다. 그건 문학의 세계에선 수성과 해왕성만큼의 거리다. 어찌됐든 태양계 안에 있다는 공통점은 별 위안이 되지 않는다.

제인 오스틴 북 클럽 스틸컷
제인 오스틴 북 클럽스틸컷소니 픽처스 클래식

여자만 읽는 제인 오스틴? 그런데 말입니다

제인 오스틴의 책에선 늘상 지역 사교계를 무대로 일하지 않는 계급 남성들과 그들과 관계 맺는 여성들의 이야기만이 펼쳐질 뿐이다. 역사와 사회를 굴리는 일, 거기까진 아니라도 최소한 지역이나 가정의 경제라도 꾸려가는 진짜 일들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불과 얼마 뒤 등장하는 도스토예프스키와 디킨스, 위고, 트웨인 등의 대문호에 비하여 오스틴의 소설이란 얼마나 얄팍한가. 그렇게 비웃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비평은 절반만 옳다. 오스틴의 세계엔 이와 같은 관점에선 도무지 닿을 수 없는 진실 또한 담겨 있는 때문이다. 진짜 중요한 일이 온통 거세됐다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그녀의 세계 가운데는 한 여성의 가장 낭만적인 순간이, 그 청춘의 격정과 도전과 실패와 좌절이, 인간의 위선과 악덕, 미덕 따위가 진솔하게 담겨 있기도 한 것이다. 이것이 그녀의 소설이 시간을 건너 지금껏 살아남은 비결이고, 오늘날까지 수많은 여성 독자가, 물론 한 줌의 남성 독자들도 그녀의 작품을 지지하는 이유일 테다.

영화는 바로 이와 같은 견지에서 오스틴 소설의 유익함을 드러낸다. 오스틴과 가장 멀리 떨어진 독자조차도, 말하자면 나와 같은 이까지도 이 영화를 보고난 뒤 그녀의 작품들을 다시 펼쳐보게 할 만큼, 그리하여 약간이나마 스스로의 굳어진 경계를 넓히게 할 만큼의 변화를 일궈내는 것이다.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의 경로를 걸어온 서로 다른 이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난 감상을 나누는 일이 그러하듯이. 말하자면 변화하게 하는 것이다. 나아가게 하는 일이다.

여섯 사람은 오스틴의 책을 읽기로 했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차이점이 두드러진다. 조셀린은 재정적으로 여유롭고 일에도 열정이 있지만 사랑엔 영 관심이 없는 여성이다. 그녀의 단짝 실비아(에이미 브래너 분)는 도서관 사서로, 20년을 함께 한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통보받고 실의에 빠져 있다. 실비아의 딸 알레그라(메기 그레이스 분)는 화끈한 청춘이다. 고등학교 프랑스어 교사로 일하는 프루디(에밀리 블런트 분)는 섬세한 공주 같은 성격이지만 무심하기 짝이 없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상처받기 일쑤다. 우연히 프루디를 만나 모임에 데려온 베르나뎃(캐시 베이커 분)은 오스틴의 왕팬으로, 모임을 주최한 당사자다.

제인 오스틴 북 클럽 스틸컷
제인 오스틴 북 클럽스틸컷소니 픽처스 클래식

책과 사람, 관계가 피어나는 특별한 순간

오스틴의 여섯 명작, <에마> <맨스필드 파크> <노생거 사원>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설득>까지를 하나하나 맡기로 한다. 한 명 부족한 자리를 채우는 건 조셀린이 우연히 만나 불러온 남자, 그릭이다. 이들에게 부족한 남성적 시선을 가진 이, 딱 원하는 조합이다. 책에 대한 관심으로 모인 이들과 달리 그릭이 조셀린에게 마음을 품고 이 자리에 왔다는 건 영화 속에서나 현실에서나 혼성 책모임을 낭만적으로도, 추잡하게도 만들 수 있는 흔한 설정이다.

책과 각 인물이 맺는 관계가 얼마나 적절한지 테트리스 줄 두어 칸이 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펑 하니 사라지는 모양을 보는 듯하다. 사랑을 몰랐던 조셀린이 제게 다가서는 그릭을 밀어내는 과정이, 또 그럴수록 스스로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에 휘둘리는 상황이 <에마>의 그것과 꼭 닮아 있는 것이다. 결혼을 깨고 새 여자를 만나는 남편을 놓아버리지 못해서 고통을 받던 실비아는 <맨스필드 파크> 속 결혼을 둘러싼 이야기로부터 스스로를 돌아볼 계기를 얻는다.

야성적인 면모가 살아있는 불같은 알레그라는 실패한 사랑 뒤에 <이성과 감성>을 접한다. 여섯 번 이혼하고도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 베르나뎃은 <오만과 편견>을 맡는다. 오만과 편견을 딛고 나아가는 이 소설로부터 베르나뎃은 다시 도전할 용기를 얻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릭, 조셀린을 마음에 품고 여성들의 책모임에 뛰어든 그는 <노생거 사원> 속 캐서린처럼 새로운 사람들과 기대를 뛰어넘는 관계를 맺는다. 마지막으로 프루디는, 남편과 함께 <설득>을 읽는다. 후회를 딛고 성숙에 다가서는 소설 속 인물들처럼 그들은 그들 자신에게 다음 기회를 허한다.

<제인 오스틴 북 클럽>은 독서, 그리고 책모임이 주는 이로움을 자연스레 일깨운다. 누구나 삶 가운데 뻥 하고 구멍이 뚫릴 때가 있다. 도심 싱크홀 마냥 휑하게 뚫린 구멍 속으로 아까운 것들이 마구 빠져나갈 때가 있다. 그를 어찌 메워야 할지 알지 못한 채로 겁을 잔뜩 먹고 도로 전체를 폐쇄하고 다시는 그 구역에 들어서지 못할 때가 있다. 그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제인 오스틴 북 클럽 스틸컷
제인 오스틴 북 클럽스틸컷소니 픽처스 클래식

책과 문학, 인간에게 길을 제시한다

책이, 문학이 인간에게 길을 제시한다는 건 다행한 일이다. 인간은 글과 이야기로 스스로를 구해내는 법을 찾아냈다. 지식을 넘어 깨달음을, 지혜를, 용기를, 온갖 미덕을 삶 가운데 들여놓을 수 있는 방법을 얻어냈다.

불행히도 오늘의 인간은 책을 읽지 않는다. 책을 통해 타인과 관계 맺는 일 또한 찾아보기 어렵다.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책모임이 하나둘 고사하고, 시민 한 명이 일 년에 읽는 책이 채 4권이 되지 않는다는 통계가 묵시록을 전하듯 발표되는 세상이다. 극장에 가만히 갇혀 영화를 보는 일조차 버겁게 느끼고, 십 분이 넘어가는 콘텐츠를 끝까지 보기를 지루해 한다는 세대가 오늘의 세상을 가득 채운다. 한자 한자 스스로 읽고 나아가야 하는 책의 운명이야 뻔한 게 아니냐는 자조적 목소리를 수도 없이 접한다.

그러나 나는 책의 미래를 믿는다. 내가 그릭처럼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어내듯, 조셀린이 그릭이 추천한 SF소설들에 빠져들 듯, 이 글을 읽은 이들이 영화를 보고 책모임에 나서듯이 세상은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고 여긴다. 책은 변하도록 돕는다. 인식을 확장하고 이해를 깊게 한다. 인간은 그로부터 성장한다.

<제인 오스틴 북 클럽>은 예쁜 영화다. 오스틴의 소설이 그러하듯 작은 비관과 그보다 커다란 낙관이 낭만적으로 흩어져 있다. 나는 이제 그 멋을 알겠다. 당신도 그러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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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