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 시즌 3 스틸컷
<신병> 시즌 3 스틸컷ENA

최근 내 유튜브 쇼츠 알고리즘을 장악한 드라마가 있다. <신병> 시즌 3다. 드라마를 직접 보지 않아도 각 캐릭터의 서사나 극의 흐름을 거의 다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쇼츠 영상이 쏟아진다.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시즌 1과 2도 방영될 때 내 유튜브 알고리즘을 휩쓴 적이 있으니까. 그렇게 마침내 <신병> 드라마를 찾아봤다는 사실이다.

지난 두 시즌이 방영될 동안에는 알고리즘에 <신병> 관련 쇼츠가 아무리 많이 등장해도 굳이 본편을 보지 않았다. 재밌긴 해도 크게 공감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열상감시장비로 북한군을 감시하며 GOP와 GP에서만 군 생활을 한 입장에서 일반적인 군부대를 배경으로 한 <신병>은 조금 낯설었다. 위병소 근무도, 당직 근무도, 불침번도 안 하고 아침이나 저녁 점호도 생략하기 일쑤인 환경에서 군 생활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눈길 끈 한 장면

 <신병> 시즌 3 스틸컷
<신병> 시즌 3 스틸컷ENA

그런데 <신병>의 세 번째 시즌에서는 마침내 눈길을 끈 대목이 있었다. 바로 '최일구'(남태우) 병장이 예비군 훈련 지원을 나가는 에피소드였다. 예비군 훈련 에피소드 내용이 반가운 것은 아니었다. 마치 재입대하는 기분이 드는 동원 훈련을 가고 싶어 하는 예비군은 없을 테니까. 흥미로운 건 최일구가 전역한 선임들을 만나서 펼쳐지는 장면이었다.

입소하는 예비군 사이에서 막역하게 지냈던 선임, '심진우'(차영남)와 오랜만에 재회하고 가볍게 농담을 주고받던 최일구. 그런데 그의 표정은 이내 굳어진다. 구막사 시절 악마 선임 라인이었던 김태희, 전대한, 장덕규가 등장한 것. 최일구는 일병 시절 그들에게 시달렸던 트라우마가 도졌는지 그들을 보자마자 그대로 얼어붙는다.

훈련 도중 휴식 시간에, 그리고 불침번을 서면서 최일구는 심진우에게 자기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지금도 콩벌레만 보면 심장이 가파르게 뛰고 식은땀이 난다고. 악마 같던 선임들이 그에게 억지로 콩벌레를 먹이려고 했던 순간의 기억이 잊다 싶으면 다시 떠오른다면서. 그렇게 2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는데도 최일구의 마음 한에 자리 잡은 콩벌레는 작아지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

 <신병> 시즌 3 스틸컷
<신병> 시즌 3 스틸컷ENA

최일구의 사연을 보다 보면 동병상련이 느껴진다. 나 역시 나만의 콩벌레가 있으니까. 일상 속 사소한 일에서 그 시절의 괴롭힘이 돌연히 떠오르니까. 평상시에 쓸 일 없는 손 편지를 써야 할 일이 생기면 매주 할당된 선임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서 검사받던 이등병, 일병 시절이 생각나는 식이다.

해외 축구 중계를 보던 중에는 불법 토토 사이트에서 어느 팀에 베팅해야 할지를 묻고는 결과가 안 좋으면 다음 경기가 열릴 때까지 갈구던 선임이 갑자기 생각나기도 한다. 2주 전에 동부 전선에서 북한군 10여 명이 군사분계선(MDL)을 침범했다는 뉴스를 보고는 순간적으로 감시 기지 상황실 상황이, 정신없이 밀려드는 상급 부대와 간부들의 질문 전화와 성화가 생생하게 귀를 울리기도 했다.

이처럼 작은 콩벌레가 모여 더 큰 콩벌레가 되기도 한다. 지난 5년간, 내가 국내 여행 장소를 고를 때면 강원도 동해를 무의식적으로 선택지에서 지웠던 것처럼.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이 한 데 모여서인지는 몰라도, 강원도의 산과 바다는 아무리 예쁘다 한들 여전히 감시장비 화면 속 잿빛 풍처럼 보이니까. 그래도 최일구의 콩벌레에 비하면 내 마음속 콩벌레는 덜 징그럽고, 크지도 않다는 점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찰리 채플린의 명언으로 잘 알려진 말이 있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거다. 그런데 <신병> 시즌 3을 보면서는 이 표현의 순서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는 게 더 적절할 듯싶다. 코미디 드라마인 <신병>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웃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그 웃음 뒤에 크고 작은 콩벌레가 한 마리씩은 숨어있을 테니까. 한국의 남성이라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오랜 기간 짊어져야 하는 콩벌레가.

때마침 대통령 선거 기간과 맞물리다 보니 <신병> 시즌 3을 보면서 한 가지 바람이 생겼다. 여러 후보가 군 복무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공약을 하나둘 내놓는 가운데, 현역 군인과 예비군 마음속 콩벌레를 줄여주는 약속도 있었으면 하는 것. 마음속에 콩벌레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구성한 사회는 결코 건강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을 테니까.
덧붙이는 글 브런치스토리(https://brunch.co.kr/@potter1113)에도 실립니다.
신병 군대 예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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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종교학 및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영화와 드라마를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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