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곁엔 열두 명의 사도가 함께했다. 그중 첫째가 베드로다. 이스라엘 북쪽 갈릴레아 호수를 지나던 예수가 제자로 삼은 어부 중 첫째가 바로 그였다. '나를 따르면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주겠다'던 예수의 말에 베드로와 어부들은 그물을 놓고 그를 따라나섰다고 했다. 예수가 얻은 최초의 제자들로, 십이사도 중 다섯이 이들 가운데서 나온다. 그중에서도 우두머리 격이던 인물이 시몬 페트루스, 우리가 베드로라 부르는 이다.

베드로는 인간적이다. 배움이 깊지 않고 성질이 급해서 실수 또한 잦다. 기독교 경전 곳곳에 그의 실패와 실수들이 언급돼 있다. 문학 등 예술 작품에서 자주 인용되는 <성경> 속 명대사, "믿음이 작은 자여, 어찌 의심을 하였느냐?"는 말은 베드로에게 향한다. 예수가 저 유명한 물 위를 걷는 기적을 행했을 때, 베드로는 예수에게 청해 그처럼 물 위를 걸어 예수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그 도중에서 베드로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그 권능을 의심한다. 마침내 베드로가 물 아래 처박히자 예수가 그를 건져내며 위와 같이 일갈한다.

최후의 만찬 뒤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한 일화도 널리 알려져 있다. '모든 이가 예수를 버려도 나는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했던 베드로에게 예수는 '내일 아침 동이 틀 때까지 너는 나를 세 번 부정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날 밤 예수가 체포되고 겨우 몸을 빼낸 베드로다. 도주길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이들과 거듭 마주친 베드로는 예수와의 관계를 연거푸 부인한다. 마지막인 세 번째 순간에 위기에 처한 베드로는 '정말 내가 예수와 아는 사이라면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호언한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새벽닭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기독교 경전 가운데서도 문학적으로 인상 깊은 장면이다.

선종한 프란치스코

 <두 교황> 스틸컷
<두 교황> 스틸컷넷플릭스

베드로는 결점이 수두룩한 존재다. 겁 많고 나약하며 어리석고 욕심까지 적잖다. 그런 그에게 예수는 신뢰를 거두지 않았다. 그의 자리를 인정하고 나아지도록 북돋는다. 그 결과 베드로는 변화한다.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던 예수의 이야기가 그대로 현실이 된다. 베드로는 예수에게 가장 신뢰받는 제자였을 뿐 아니라, 예수 사후 온 생애를 바쳐 초기 기독교를 건사하는 지도자가 된다.

그 죽음은 어떠했나. 소설과 영화 <쿼바디스>에 영감을 준 그 죽음 이야기는 깊은 감동을 준다. 로마의 박해를 피해 도망치던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러 로마로 간다'는 예수의 환영을 보고 그를 따라 로마로 돌아가 자수하는 이야기는 얼마나 놀라운가.

기독교의 가장 숭고한 정신, 곧 희생과 실천의 자세가 제 주와 같이 역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베드로의 최후로써 완성된다. 베드로가 오늘의 가톨릭과 정교회 등 기독교 주요 종파(개신교와 유대교, 이슬람교, 성공회 등은 교황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로부터 첫 교황으로 간주되는 데는 이러한 사연이 자리한다.

<두 교황>은 가톨릭교회의 수장으로 신앙과 행정 모두에서 확고한 권위를 자랑하는 교황의 이야기다. 것도 265대 베네딕토 16세와 266대 프란치스코, 두 교황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극영화다. 21일 향년 88세의 나이로 선종한 프란치스코가 아직 추기경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조나단 프라이스 분)이던 시절을 배경으로, 로마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안소니 홉킨스 분)와 보낸 얼마간의 시간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영화는 콘클라베부터 콘클라베까지, 2005년 베네딕토 16세가 선출되는 장면으로 시작해 2013년 프란치스코가 취임하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건 바티칸과 로마에서 두 교황이 마주 앉아 하는 대화이고, 이를 통해 두 사람이 가진 각기 다른 삶과 신앙, 철학과 상황까지를 자연스레 내보인다. 어째서 베네딕토 16세는 스스로 교황의 지위를 내려놓으려 하는가를, 또 훗날 프란치스코가 되는 베르고글리오는 그를 받아들이고자 하는지를 영화는 관객 앞에서 납득시킨다.

은퇴를 원하는 추기경

 <두 교황> 스틸컷
<두 교황> 스틸컷넷플릭스

베르고글리오는 은퇴를 원한다. 콘클라베에서 제법 많은 표를 받았으나 권력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던 그다. 이미 일흔이 넘은 고령으로 은퇴를 코앞에 두고 있었던 데다 연달아 터지는 교회의 비리와 늦춰지는 개혁으로 실망했기 때문도 있었을 테다. 추기경이 은퇴하기 위해선 교황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탓에 그는 로마로 가는 비행기표를 산다. 때마침 바티칸에서 편지가 한 통 오니, 교황이 그와 대면하고 싶다는 연락이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베르고글리오를 앞에 두고 교황은 의도를 알 수 없는 공격적 물음을 이어간다. 베르고글리오가 그에 대항하는 동안 그가 터 잡고 서 있는 신앙과 사상, 철학적 기반들이 하나둘 자연스레 모습을 드러낸다.

베네딕토 16세는 하나부터 열까지 베르고글리오에게 동의하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어째서인지 그와의 만남을 끝내려 하지 않는다. 깊어지려 하면 멀어지고 멀어지려 하면 다시 붙드는 교황의 태도에 베르고글리오는 연유도 알지 못한 채로 바티칸과 로마에서 며칠을 보내고 만다. 기회가 날 때마다 은퇴를 허가해 달라는 청원을 넣어보지만 교황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꼼짝 없이 묶인 신세다.

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는 능숙한 솜씨로 두 사람이 서 있는 서로 다른 상황과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여정까지를 효과적으로 내보인다. 엄격한 성품의 독일인 사제로 어린 시절부터 신앙생활에 매진하여 오늘에 이른 베네딕토 16세를 비교적 자유로운 성품의 베르고글리오와 대비시킨다. 아르헨티나 태생인 베르고글리오는 남미인다운 정열을 간직한 사내다. 축구와 탱고를 즐기고 예쁜 여자를 열렬히 사랑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운명처럼 다가온 신의 존재를 느끼고 사제의 길을 선택해 오늘에 이르렀다.

그 과정 또한 순탄치가 못하였다. 아르헨티나 예수회 관구장으로 재임하던 1976년, 쿠데타가 있었다고 했다. 호르헤 라파일 비델라 장군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의회를 해산해 독재를 시작한 것이다. 세계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란 타이틀을 빼면 무능하기 짝이 없던 이사벨 페론은 완전히 실각해 정치적 역량을 발하지 못했다. 군부에 비판적인 모든 이들이 우산 없이 폭우를 맞았다. 가톨릭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수 없는 인간은 없다

 <두 교황> 스틸컷
<두 교황> 스틸컷넷플릭스

상황은 베르고글리오의 책임 아래 있던 예수회 신부들이 반정부 활동에 나서면서 급박하게 돌아간다. 베르고글리오는 가톨릭의 세를 지키고자 신부들의 활동을 금하려 들지만, 신부들은 그에 따르지 않는다. 서약에도 불구하고 제 명령에 불응해 정치적 문제에 개입하는 신부들에게 베르고글리오는 분노를 느낀다. 그는 이들의 지위를 일시적으로 정지하는 결정을 내리는데, 이것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된다.

치외법권적 지위를 일부나마 발했던 신부복이 벗겨지는 순간, 이들은 기댈 곳 없는 반정부인사로 전락한다. 가톨릭과 예수회가 신부들의 지위를 정지시킨 틈을 타서 군부는 이들을 연행해 고문한다. 상황이 이리 흘러갈 줄 몰랐던 베르고글리오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이날의 결정을 후회한다.

어찌 실수 없는 인간이 있을 수가 있을까. 예수조차도 십자가에 매달려 저를 죽도록 한 아버지를, 그러니까 신을 원망했는데 말이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는가' 하는 물음이 이 시대에도 얼마든지 변주돼 울려 퍼질 수가 있다.

신이 있다면 어째서 전쟁이, 고통이, 수많은 비명과 폭력과 갈취와 갈등이 있을 수 있느냐고 항변하고 싶어질 수 있겠다. 일평생 수도의 길을 걸어온 교황과 추기경이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실수와 실패 앞에서 그래도 희망이 되는 것은 가능성이다. 나아질 수 있다는, 언젠가는 잘못을 바로잡고 용서를 받을 수 있으리란, 그리하여 구원을 바라보는 가능성이다. 언제나 그렇듯 나아짐은 변화로부터 비롯된다. 오늘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것, 부활한 예수와 로마로 돌아간 베드로의 이야기가 보여주는 것도 바로 이것이 아닌가.

<두 교황>의 주제를 한 마디로 집어내자면 '변화'가 아닐까 한다. 극중에서도 변화와 타협이 같은 것이냐 다른 것이냐를 두고 두 사람이 깊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인상 깊게 담겼거니와, 베네딕토 16세와 베르고글리오의 삶 가운데서도 중대한 변화의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

베네딕토 16세는 일생 처음으로 신의 존재와 신앙을 의심한다. 도저히 그 사상에 동의할 수 없는 베르고글리오에게 제 자리를 넘길지 또한 고심한다. 베르고글리오는 과거 잘못된 선택으로부터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태어난다. 처음 한 여자를 사랑했던 그가 신의 음성을 듣고 사제서품을 받은 것처럼, 은퇴를 생각했던 그는 교황이란 막중한 책임을 지기를 각오하기에 이른다.

어디까지가 변화이고 어디까지가 타협인지를, 타협이 필요 없어지는 본질적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을 <두 교황>은 깊이 있게 응시하려 든다. 변화는 곧 타협이라던 베네딕토 16세는 진정으로 변화하고, 둘 사이엔 명확한 차이가 있다던 베르고글리오는 마침내 타협해 변화의 계기를 마련한다. 어찌 됐든 두 사람은 제 삶 가운데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가톨릭교회 최고 성직자인 교황과 추기경을 영화는 고위직 사제로서만 그리지 않는다. 두 사람의 인간적 면모가 드러나고, 나약함의 징표 또한 확인된다. 편견과 고정관념, 아집과 오만이 이들 가운데 수시로 고개를 들이민다.

그러나 영화는 인간이 그저 나약함에 주저앉는 존재가 아니란 걸 동시에 확인한다. <두 교황>은 마치 베드로가 온 길을 되돌아가 역십자가에 박히기를 선택했듯, 기꺼이 그와 같은 길을 택하는 나약한 인간들을 내보인다. 약함에서 덜 약함으로, 악함에서 선함으로, 매 순간 변화의 가능성을 가진 인간의 존재를 치열하게 긍정해 낸다.

우리는 모두 베드로

 <두 교황> 포스터
<두 교황> 포스터넷플릭스

베네딕토 16세에 이어 교황에 오른 프란치스코는 전 세계를 돌며 진보적 발언을 거듭해 화제를 모았다. 한국에서도 세월호 침몰참사 유가족을 면담하고 애도를 표하며 커다란 반향이 일었다. 일시적이나마 가톨릭에 신규 신자수가 급증할 만큼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단 평가도 있었다. 동시에 바티칸의 여러 스캔들을 비롯해 가톨릭 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단 비판도 적잖았지만, 대외 호감도만큼은 역대 가장 좋은 교황이라 불러도 될 정도였다.

고령에 따른 각종 질환으로 지난 2달여 간 집중치료를 받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은 가톨릭교회에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알린다. 종교의 권위가 추락하고 신도수가 감소하는 세계적 추세 가운데서, AI를 비롯한 과학기술의 진보와 그에 따르지 못하는 종교의 현실 사이에서, 무엇보다 전쟁과 기후위기, 극우정치의 도래란 위기의 징후 앞에서 가톨릭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야 하는지 이 영화가 묻고 있다.

이 시대 우리는 모두 베드로다. 기독교인이건 그렇지 않건, 심지어는 비종교인이라도 모두가 베드로다. 우리는 나약하다. 불완전하다. 그리하여 자주 못 한 선택을 한다. 비겁하고 탐욕스러우며 돌아보기 부끄러운 일들도 수시로 거듭한다.

다행한 건 베드로가 못나게 죽지는 않았단 것이다. 베드로는 제가 해낼 수 있는 가장 용감한 걸음으로 뜻있게 삶을 끝마쳤다. 의심하고 부정하며 도주했던 그가 다른 누구도 쉬이 해낼 수 없는 위대한 결정을 한다.

그가 죽은 자리에 성 베드로 대성당이 섰고, 오늘의 번성한 교회가 일어났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대로, 예수가 베드로가 되고 베드로는 또 다른 이들이 됐다. 프란치스코 또한 한 명의 베드로가 아닌가. <두 교황> 속 불완전한 프란치스코에게서 이 시대 흔들리는 교회와 세상의 희망을 찾는 건 그래서 지극히 자연스럽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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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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