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퍼: 목사.스파이.암살자> 스틸컷
파이오니아21
여기까지는 본회퍼란 인간의 결단을 소개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본회퍼가 유명한 것은 나치, 그리고 히틀러에게 저항했기 때문이다. 그냥 저항 수준이 아니라 아예 암살작전에 깊이 개입한다. <작전명 발키리>로 영화화된 바 있는 1944년, 마지막 히틀러 암살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암살 가장 가까이 다가섰던 이 사건마저 실패로 돌아가며 전쟁은 1년을 더 지속하고 수많은 사망자를 낳는다. 어쩌면 종전 직전에 이뤄진 상당수의 인종청소 또한 막아낼 수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본회퍼는 촉망받던 젊은 신학자다. 그가 유학한 미국 등지에선 독일로 귀환하지 말고 연구교수로 남아달라는 제안까지 있었을 만큼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본회퍼의 선택은 달랐다. 전란에 휩싸인 조국으로 돌아가서 교회를 중심으로 반나치 운동에 열을 올린다. 영화 속에 인상 깊게 등장하는 마르틴 니묄러의 구속사건 등 교회에 대한 탄압이 점차 심해지는 상황 가운데서도 그는 저항을 포기하지 않는다. 영국과 미국 등으로 망명할 기회가 열려 있음에도 그의 선택은 나치의 심장부에서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그에게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여기 나치가 독일을 점령하고, 독일인을 타락케 하며, 그로부터 유태인과 타민족을 비탄에 빠뜨리는 것을 그는 좌시할 수 없었다. 그의 신앙은 증오와 미움이 아닌 화합과 사랑이었던 것이다.
그를 이루는 방식은 그저 조용히 제 삶 가운데 침잠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말했다. 악을 대면하고도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악이라고. 악이 번성한 세상에서 말하지 않는 것은 말하는 것이며 행동하지 않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라 말이다. 그는 제 말대로 살았다. 죽음으로써 죽음을 넘어서는 삶을 얻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렇듯이.
본회퍼는 여러모로 영화적 매력이 있는 인물이다. 유년시절 1차대전을, 나이가 들어선 2차대전을 겪었다. 영화가 제목으로 선택한 것처럼 스파이며 암살자와 관계된 선택들도 있었다. 그저 신학자며 목사가 아닌, 적극적 저항과 폭력을 불사한 작업까지 진행했던 역동적 인물이다. 그 근간에 가치와 철학, 신앙이 있었다는 사실은 본회퍼란 캐릭터를 더욱 깊이 이해하도록 이끈다.
그러나 영화는 어떠한가. 제목에다 스파이와 암살자란 말을 가져다 쓴 것과 달리 영화 내내 목사며 신앙인으로서의 본회퍼만 등장할 뿐이다. 그의 신앙과 철학조차 줄글로 풀어쓴 대사를 통해서만 드러난다. 스파이며 암살자로서의 이야기를 완전히 배제했다면 인간 내면의 갈등에 천착하든, 신앙과 신념의 관계를 부각하든, 역사물과 장르물의 재미를 살려내든, 어느 하나라도 선택과 집중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영화는 선택도 집중도 않는 것으로 그 모두를 얻고자 기대한다. 본회퍼였다면 가장 꺼렸을 입벌리고 누워 과일 떨어지길 기다리는 자세를 그 전기영화가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민망한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나름의 진동을 일으킨단 건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오늘의 한국사회에 더욱 그렇다. 개신교가 국가와 정치에 종속돼 성경의 본질을 외면하는 상황에 당대 신앙인들은 저항했다. 어떤 순간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간 길과 그가 보인 사랑을 가장 우선하는 선택을 하려 들었다. 기독교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그 고민의 결과로써 행동했다. 그로부터 책임 있는 신앙이란 어떤 것인가를 내보인다.
반면 한국 교회의 오늘은 어떠한가. 예수 그리스도의 어떤 면모가 광장을 점령하고 편을 가르며 혐오를 쏟아내는 그들과 닮았는가. 엄연한 현실을 외면한 채 그저 일부 교회의 사례일 뿐이라며 눈 돌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건 과연 온당한 일인가. 한국에서도 존경하는 이 많다는 본회퍼의 모습이 오늘 한국 교회에서 얼마 보이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본회퍼: 목사.스파이.암살자포스터파이오니아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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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