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것과 달리, 이야기를 만든 이솝(그리스어로 아이소포스)에 관한 정보는 많이 남아있지 않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이솝을 노예 신분이었다고 기록했는데, <이솝이야기>는 여기서 영감을 얻어 이솝 우화의 탄생 과정을 추적한다(물론 허구의 이야기다).
상상력으로 탄생한 이솝 우화 탄생의 비밀은 독특하고 흥미롭다. 동시에 이야기의 힘을 공연 내내 강조하는데, 이때 동화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런 매력 덕분인지 <이솝이야기>는 2023년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이후 지난해 처음 관객을 만났고, 초연 직후 일본 진출을 확정됐다. 그리고 초연 이후 1년이 지난 올해 재연으로 돌아왔다.
사모스섬의 노예 '티모스'와 주인 '파빌로스'의 딸 '다나에'가 작품의 중심에 선다. 여기에 또 다른 노예 '페테고레'와 티모스의 어머니 '한나', 훗날 티모스를 데리고 있다가 노예 신분에서 풀어주는 '시타스' 등이 작품의 세계관을 이룬다.
<이솝이야기>의 독특한 점은 'Whisper'라 불리는 세 명의 캐릭터가 추가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각각 대지, 바람, 물을 상징하는데, 장면에 따라 필요한 인물을 연기하거나 퍼포먼스를 통해 무대를 채우는 역할을 한다.
전성우·윤은오·이석준이 티모스를 연기하고, 송상은·이수빈·장민제가 다나에와 시타스를 함께 연기한다. 김도빈·김대현·이형훈은 페테고레와 파빌로스, 그리고 왕까지 1인 3역을 소화한다. 이외에 강연정, 송나영, 임태현, 이휴 등이 출연한다. <이솝이야기>는 오는 6월 8일까지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이솝이야기> 공연사진
(주)컴인컴퍼니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이솝이야기>의 서사는 단순하다. 이솝 우화가 탄생하는 과정은 흥미롭지만 복잡하지 않다. 서사의 구조나 깊이에 비해 100분이라는 공연 시간은 길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서사에 담겨있으며 공연 내내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탁월하다. 덕분에 100분이라는 시간이 탄탄하고 세밀하게 느껴진다.
<이솝이야기>는 이야기가 가진 힘에 대해 끊임없이 묘사한다. 필자는 공연을 보며 크게 세 가지의 이야기의 힘을 발견했다. 먼저 '위로'의 힘이다. 티모스의 실수로 다나에의 뺨에 화상 흉터가 생긴다. 이 흉터는 다나에를 집 안에 가두는데, 여기에 이야기가 부여되는 순간 다나에는 미소를 띤다. 붉은 흉터는 태양이 동쪽이라고 표시해 둔 것으로, 별들이 다나에를 보고 방향을 설정한다는 이야기는 위로의 힘을 발휘한다. 어쩔 수 없이 다나에와 이별해야 했던 티모스는 끝내 다나에를 다시 찾아오는데, 이때 별이라는 상징물로 티모스를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해진다.
둘째로 이야기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힘을 지녔다. 예컨대 티모스는 실제로 본 적 없는 얼룩말을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었고, 얼룩말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이야기는 대면한 적 없는 존재를 알게 해주고, 나아가 이해하게 해주며,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세계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마지막으로 이야기는 도전을 결심하게 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페테고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졌고, 티모스는 이야기를 말하는 능력이 출중하다. 티모스는 페테고레에게 전해 들은 '토끼와 거북이'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솝 우화의 한 단편 말이다. 이때 사람들은 거북이가 어떻게 이길 수 있었는지 질문하지만, 페테고레와 티모스는 그 자리에서 답하지 못한다.
▲뮤지컬 <이솝이야기> 공연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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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어느 순간 페테고레가 티모스에게 그 이유를 말해준다. 거북이가 그곳에 "꼭 가야 했기 때문"이라고. 그 말을 들은 티모스는 자신도 다나에가 있는 곳에 반드시 가야 한다는 다짐을 되새긴다. 이야기를 통해 티모스는 도전을 결심하고, 끝내 다나에가 있는 곳에 도달한다. 그렇게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진다.
<이솝이야기>는 이처럼 이야기가 가진 힘을 이야기한다는 측면에서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다. 동시에 '토끼와 거북이' 우화는 이야기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우화는 통상적으로 자만을 경계하고 성실성을 강조하는 교훈을 담은 것으로 해석되었다. 하지만 <이솝이야기>에서 페테고레가 내놓는 해석은 사뭇 다르다.
우리는 흔히 이야기를 다양하게 해석하기보다는 권위적인 하나의 해석을 따라가려는 경향을 보인다. 소설을 읽을 때도, 공연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솝이야기>는 이야기를 수용하는 각자가 다양한 해석을 내놓을 것을 요청한다. 그래야만 이야기가 더 빛날 수 있다.
▲뮤지컬 <이솝이야기> 공연사진(주)컴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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