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 간판타자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KBO리그를 완벽하게 평정한 이정후는 이제 해외로 눈을 돌렸다. 야구인생 2막이 열리는 순간이자, 아버지의 위상을 뛰어넘어 한층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분기점이었다. 이종범은 현역 시절 일본 프로야구로 진출했으나 부상과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기대만큼은 성공하지 못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사실 이정후의 해외 진출 가능성이 처음 거론되기 시작할 무렵만 해도, 한국인 타자들이 메이저리그에서 도전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성공 사례도 드물었다.
공교롭게도 이정후의 빅리그 진출 가능성을 저평가한 인물 중에는 아버지도 포함돼 있었다. 이종범은 2019년 한 방송에서 "저라면 절대로 미국에 안 보낸다. 무턱대고 빅리그에 가는 것보단 '동네 깡패'가 되는 게 낫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단타형인 정후는 미국보다 일본 리그가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로부터 약 4년 뒤인 2023년 12월 12일, 해외진출 자격을 얻은 이정후는 포스팅 시스템을 거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전격 입단해 아버지의 예상과 달리 당당히 메이저리거 반열에 올랐다. 심지어 6년 1억 1300만 달러(약 1612억 원)에 무옵션에 마이너리그 거부권까지 포함된 초특급 대우를 받았다는 것은 빅리그에서도 이정후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는 증거였다. 이에 이종범은 당시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며 아들의 재능과 성장을 인정했다.
아쉽게도 첫 해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지난해 5월 13일 신시내티 레즈전에서 수비 도중 어깨를 다쳐 수술대에 오르면서 빅리그에서 데뷔 시즌 불과 37경기 만을 소화하고 시즌 아웃을 당했다. 큰 기대를 받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으나, 검증되지 않은 선수에게 샌프란시스코가 무리한 투자를 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왔다.
하지만 이정후는 한국에서도 그러했듯이, 좌절하지 않고 더욱 단단해져서 다시 돌아왔다. 올 시즌을 앞두고 MLB의 더 빠른 구속에 대응하기 위해 타격폼을 수정했고, 히팅 포인트를 뒤로 옮겼다.
지난해 빠른 볼을 던지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을 의식해 히팅 포인트를 앞으로 옮기고 강하게 방망이를 휘두르는 스타일을 시도한 것이 땅볼 양산으로 이어졌다면, 본연의 타격폼으로 회귀하면서 오히려 강속구 대처능력과 타구 질도 좋아져 자신감을 찾았다. 여기에 올해는 주로 3번타순으로 고정되면서 리드오프일 때보다 상대 투수의 공을 파악하고 경기에 나설 수 있게 된 것도 변화구 대처능력 향상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KBO리그 시절까지 단골 비교 대상이 주로 아버지였다면, 어느덧 이정후는 이제 역대 아시아 메이저리거들과 비교되는 반열에 올라섰다. 빅리그에 진출한 한국인 타자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추신수와는 '호타준족 스타일의 좌타자겸 외야수'라는 점에서, 히어로즈 선배인 김하성과는 'KBO리그 출신으로 빅리그에 직행해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사례'라는 점에서 각각 비교 대상이 되고 있다.
차이라면 추신수는 전성기에 출루 능력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최정상급이었지만 수비와 내구성에 약점이 있었고, 내야수인 김하성은 메이저리그에서는 공격보다 수비형 선수에 좀 더 가깝게 평가받고 있다는 정도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이정후가 가장 본받을 만한 롤모델로 삼고 있는 대상은 스즈키 이치로(일본)다. 아시아 메이저리거를 넘어 역대 최고의 교타자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치로는, 10년 연속 3할 타율, 200안타, 골드글러브 수상을 달성하며 아시아 최초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까지 입성한 전설이다. 공교롭게도 아버지인 이종범도 동시대에 활약한 이치로와 호타준족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종종 비교되며 '한국의 이치로'로 불리기도 했다. 이정후의 등번호인 51번도 이치로의 영향이었다.
이정후가 이뤄내야 할 '완성형'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이정후가 16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경기 1회에 윌리 애덤스를 상대로 안타를 쳐 득점을 올렸다.
AP=연합뉴스
앞으로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궁극적으로 이뤄내야 할 '완성형'은 어떤 모습일까. 엄밀히 말하면 이정후는 이치로와 비슷한 듯 하지만 스타일은 차이가 있다. 이치로는 일본 프로야구 시절에는 20홈런도 달성한 바 있으나,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에는 거포들이 즐비한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장타를 포기하고 극단적으로 컨택과 출루에 집중하는 스타일을 선택했다.
이정후도 KBO리그 7시즌간 통산 홈런은 65개에 불과할 만큼 교타자에 가까운 성향은 이치로와 비슷하다. 한국인 메이저리거 중 빅리그에서도 20홈런 시즌을 기록한 바 있는 전형적인 중장거리형 타자였던 추신수나 강정호와 비교하면 장타력은 확연히 떨어진다. 대신 이정후는 무려 244개의 2루타(연평균 35개)를 생산했고, 2020시즌에는 49개로 KBO 한 시즌 최다 기록을 수립했다. 기민한 강속구 대처능력과 적극적인 주루플레이를 통한 독보적인 2루타 생산 능력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162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한 시즌 최다 2루타는 1931년 보스턴에서 뛰었던 윌리엄 얼 웹이 151경기서 기록한 67개였다. 한 시즌 60개 이상의 2루타를 기록한 선수는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도 총 6명에 불과하며 모두가 백 년 전에 가까운 20세기 초반의 기록들이다. 이정후가 현재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산술적으로 162경기 기준 최대 95개의 2루타를 생산해낼 수 있다. 물론 실제로는 그 2/3인 60개 내외만 때려낸다고 해도 21세기 최다 2루타 기록으로 메이저리그 역사에 두고두고 이름을 남길 수 있다.
지난 2023년 프레디 프리먼(LA다저스)은 59개의 2루타를 기록하며 역대 공동 7위이자 21세기 최다 2루타 1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프리먼은 통산 509개의 2루타로 현역 선수 가운데 2루타 역대 1위를 기록 중이기도 하다. 프리먼 같은 출중한 '2루타 생산 능력'은 앞으로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이 적음에도 이례적으로 중심타선에 배치되고 있는 이정후만의 희소성을 대표할 '아이덴티티'가 될 수 있다.
이정후는 야구 선수의 길에 뛰어든 이래 매 순간 꾸준히 성장하고 발전하며 자신을 둘러싼 의심의 시선들을 실력으로 극복해왔다. KBO리그에서 누구도 넘어서지 못할 것 같았던 아버지의 그늘을 20대 중반의 나이에 이미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이제는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전설적인 선수들의 발자취를 따라잡으며 끊임없는 '청출어람'으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이제 갓 중반에 접어든 그의 야구 인생이 진화할 가능성은 아직도 무궁무진하다. 야구 팬들이 매일 그의 경기를 행복한 상상을 펼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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