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장의 위기', '투자배급의 위기'라는 말에 가려져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면에 나서진 않지만, 영화산업을 지탱하고 함께 일궈 온 영화인들을 소개합니다.[기자말] |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다른 것을 보자(Look Differnet)'라는 뜻을 품은 회사를 세우고 영화 홍보 마케팅에 투신한 지 21주년이 됐다. 그 사이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만 해도 5편( <광해, 왕이 된 남자>, <도둑들>, <변호인>, <명량>, <베테랑> 등)이다.
사실 단순 흥행뿐만이 아니다. 이윤정, 강효미 대표가 이끄는 퍼스트룩은 영화계에서도 특유의 창의적 아이디어로 꽤 정평 나 있다. <도둑들>의 경우, 한국영화 홍보 마케팅 사상 처음으로 개봉 전에 배우들 레드카펫 행사를 연 사례였으며,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선 처음으로 온라인 역사 강의 콘텐츠를 접목해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광해군의 인지도를 높여 놓기도 했다. 퍼스트룩의 이런 방식은 영화 홍보마케팅계에서 표준화되어 널리 활용되고 있다.
▲영화 홍보마케팅사 퍼스트룩의 이윤정, 강효미 대표(왼쪽부터).
이선필
참신했던 시도들, <방과 후 옥상>과 <다세포 소녀>
서울 삼상동에 위치한 퍼스트룩 사무실을 찾았다. 탄핵 정국에 영화들이 개봉 일정을 두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최근 소식부터 나눴다. 그만큼 뼛속까지 영화 홍보인이라는 방증 아닐까.
이들이 한국영화 르네상스기에 활약하면서 많은 유의미한 변화가 생겼다. 이윤정 대표와 강효미 대표는 지난 2013년 홍보마케팅인들이 함께 설립한 영화마케팅사협회(Korean Film Marketers Association)에서 각각 초대 부회장과 4대 회장을 지냈다. 영화계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던 홍보마케팅 비용 정산 관행을 타파해왔고, 후진 양성 및 업무 진행 시스템을 체계화하면서 일종의 안정적인 사업 모델을 세우는 데 역할을 해온 것.
그럼에도 2020년 닥친 코로나19 펜데믹과 영화 산업 위축 등 외부환경에 이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당장 신작 영화 투자나 제작이 급감한 상황에서 이들은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책을 만들고 있을까. 마케팅의 본질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는 건 아닌지 그 얘기부터 나눴다.
"단순히 관객이 표를 사게끔 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는 게 우리 철칙인데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과거엔 그냥 영화를 잘 포장해서 판매한다는 개념이 있었고 적당히 속여도 됐다면, 우린 그게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기에 마음을 건드리는 방식으로 임했거든. 근데 이젠 SNS 등 다양한 플랫폼이 나왔고, 알리는 방식 자체도 복잡해졌으니 큰 변화를 맞이했지만 본질 자체는 다르진 않다. 다만 경쟁 상대가 많아졌다는 게 중요하다. OTT도 있고, 영화 외에 할 수 있는 여가 생활 옵션이 다양해졌으니 영화 자체를 보게끔 하는 게 상당히 어려운 과제가 된 것은 맞다." (이윤정 대표)
영화제작사 명필름 마케팅팀 출신이던 이들이 독립해 회사를 차린 후 처음 의뢰받은 작품이 <방과 후 옥상>(2006)이었다. 당시 영화제작사에선 신선한 아이디어가 있는 신진 마케터를 선호한 결과였다. 두 사람의 창의성이 이때부터 발현된 셈.
"당시에 우린 기존에 안해왔던 걸 많이 시도하고 싶었다. 그 작품이 단순히 말하면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학생 이야기였는데 대중이 재밌게 느낄만한 소재는 아니었지. 그래서 콘셉트를 잡은 게 엄청 운 없는 남자의 코믹한 이야기였다. 주변에서도 정말 재수 없다고 생각되는 여러 일들이 있잖나. '불운의 제왕', '내 사전에 운빨이란 없다' 등의 문구를 뽑아서 홍보했지. 그 영화가 갖고 있는 내용과 많이 다른 각도로 포장한 거지." (강효미 대표)
"명화 중 나폴레옹 그림이 있잖나. 거기에 주연인 봉태규씨 얼굴을 그려 넣은 패러디 포스터도 만들었다. 한국영화에서 그렇게 패러디를 한 게 처음일 것이다. 저작권 문제가 있으니 실제 그림에 합성할 순 없었고, 화가 친구를 섭외해서 그려 달라고 했지. 전문 화가를 쓰기엔 돈이 부족했거든(웃음). 그리고 그때만 해도 시사회가 일반적이진 않았는데, 입소문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젊은 관객에 집중해서 엄청 시사회를 했다." (이윤정 대표)
영화 <다세포 소녀>도 이들의 참신함이 반영된 경우였다. 배우 김옥빈이 전자 바이올린 음악에 맞춰 춤을 춘 영상을 주요 홍보 수단으로 사용한 것. '흔들려 영상'으로 알려진 해당 춤은 포털사이트 질문란에 "왜 이리 인기인가?" 질문이 올라올 정도로 온라인상에서 크게 화제였다. 강효미 대표는 "지금으로 치면 쇼츠나 바이럴 영상 같은 것"이라며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가 있던 시기였는데 아무 내용 없는 그 영상이 검색어 1등으로 올라가며 큰돈 들이지 않고 널리 알릴 수 있었다"고 전했다.
▲영화 <방과 후 옥상>의 패러디 포스터와 <다세포 소녀> 홍보차 제작한 배우 김옥빈의 '흔들려' 영상.
퍼스트룩
"어쩌면 균열 필요한 시기일 수 있다"
이런 시도들이 표준화되고, 한국영화 제작 단가가 급증하면서 사실 마케팅 차원에서 모험을 하는 게 녹록지 않은 현실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우리 때가 운이 좋긴 했다"며 "좋게 말하면 시스템이 갖춰지고 체계적으로 홍보 마케팅이 이뤄지는 것이지만, 이런 위기에선 한 번쯤 균열이 생기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소위 업계에서 한창 논란인 '바이럴과 역바이럴'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관련 기사 :
인스타에 뜬 '권상우 운동 영상'의 반전… 이 마케팅이 먹힌다). 이윤정, 강효미 대표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밝혔다.
"고민이 많이 된다. 10대 20대를 상대한다고 하면 예전과 달리 무엇을 시도할 수 있을까.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겠지만 그 마음이 바뀌는 걸 우리가 어떻게 쫓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다. 리드하는 게 아니라 소통을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이윤정 대표)
"박찬욱 감독님이 <헤어질 결심>을 했을 때 20대 여성이 가장 많이 봤거든. 감독님도 계속해서 젊은 관객과 소통하고 싶어하고 거기에 반응하는 관객들도 분명히 있는 걸 확인한 셈인데 그 포인트를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하는 게 우리의 과제다. 예전보다 더 치열해져야지." (강효미 대표)
취향 및 플랫폼의 다양화와 다변화. 그리고 절대 인구 감소 등 영화산업 면에서 어느 것 하나 위기 요소가 아닌 게 없는 요즘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인 <명량>(1761만명) 사례는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것임을 인정하면서, 그 이후를 도모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보편적 정서가 관객을 움직이던 시기가 있었다면 지금은 개인화되고 개성들이 다 강하지. 남들이 보니 나도 본다는 개념은 사라지고, 나만이 즐기는 혹은 뭐에 꽂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요소로 의외의 흥행작이 생기기도 한다. 마케팅 측면에선 되게 어려워진 것이다. 사실 흥행을 예측하는 지표들은 상당히 정교해지고 발달했다. 특히 바이럴의 영향력은 분명 강해진 게 맞고.
주요 지표가 인지도, 선호도, 실제 극장 관람도인데 예를 들어 인지도는 높은데 선호도가 낮으면 마케팅 방향이 잘못된 거니 수정해야 하는 것이다. 선호도는 높은데 관람도가 낮다면 굳이 극장에 가서 볼 이유가 없다는 뜻이고. 인지도와 선호도가 높은데도 망하는 영화가 있는 반면, 인지도가 낮은데 흥행하는 경우는 없다. 우리가 가장 중시하는 건 관람도인데 이 세 요소를 충족하는 성공하는 영화들이 패턴이 있다. 수시로 체크하면서 전략을 짜고 수정한다." (강효미 대표)
"100만, 200만, 300만, 500만, 700만 흥행 등 그간 쌓인 데이터가 있으니 그 규모에 맞는 데이터들이 아주 자세하게 분석돼있다. 개봉 1주전 예매량, 2주전 예매량 등도 다 나와 있다. 마케팅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그 영향력이 사라지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자생적으로 100만 명 이상 관람하는 경우가 없거든." (이윤정 대표)
▲퍼스트룩 이윤정, 강효미 대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을 당시 모습. 퍼스트룩
바이럴, 그리고 위험 요소 관리의 비결
데이터 추이 분석과 함께 퍼스트룩이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위험 요소 관리다. 특히 바이럴 홍보 비중이 크게 높아진 상황에서 두 사람은 장점을 강조하는 동시에 예상되는 위험 요소를 효과적으로 낮추는 방법을 연구 중이었다. 올해 퍼스트룩이 경험한 <검은 수녀들> 사례는 이들에게도 뼈픈 경험으로 남았다. 개봉 직전 이른바 '여혐 논란'이 급격하게 퍼지면서 초반 흥행 동력을 크게 상실했기 때문이다.
"재밌는 요소를 매력적으로 강조하는 게 당연히 중요한데 예상치 못한 리스크(Risk, 위험요소) 하나로 모든 게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요즘 들어 그런 경향이 더 강해지다 보니 아무래도 리스크 관리가 더 중요해지는 것 같다. 홍보 마케팅이 개입되는 시기를 좀 더 앞당기는 방법이 있다. 즉 사전 기획 단계 때부터 예상되는 위험 요소를 보는 것이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할리우드의 <백설공주> 사례가 되게 처참하잖나. 정치적 올바름이 중요하다면서 기획한 작품인데 완전 외면받았다." (이윤정 대표)
"주의할 것은 과도한 리스크 관리로 창작자의 의도를 해친다든가 영화를 망치는 일이다. 정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확신이 들면 그것에 대한 조정은 제기할 수 있겠지.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마케팅의 중요도가 더 올라간다고 할 수 있겠다. 시기마다 힘을 싣는 비중도 많이 변했다. 과거엔 개봉 전과 후 마케팅 비율이 7대3 혹은 8대2 정도였는데 이젠 5대5에 가까울 정도로 개봉 후 마케팅이 중요해졌다. 개봉 2주차 때까지 관객들이 추이를 지켜보고 있거든." (강효미 대표)
"팬데믹 때보다 더 힘들다, 아니 오히려 위기가 이제 시작된 것일 수도 있다"고 이윤정 대표가 운을 뗐다. 창작과 산업의 경계에 있으면서도 자신들을 영화인으로 분류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두 사람에게서 깊은 고뇌가 느껴졌다. 그럼에도 이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는 "아무리 위기여도 콘텐츠 자체가 사라지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2018년경 퍼스트룩은 한 통신사와 협업해 자체적으로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제작해 제공하기도 했다. 사업적으로 다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 암울한 산업 상황이지만, 이들만의 비전을 마지막으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도 다양한 콘텐츠를 경험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그걸 바탕으로 새 전략을 짜서 영화나 드라마에 적용하고 있다. 업계에 있으면서 보람을 느꼈던 게 한참 코로나19 때 영화 일이 없을 때 새롭게 시작하는 OTT 콘텐츠나 드라마 쪽에서 우리에게 의뢰를 꽤 많이 하셨거든. 영화 마케팅 팀들이 잘한다는 신뢰가 구축돼 있는 걸 확인했다. 영화 프로그램을 만든 것도 그간 우리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생긴 기회였다. 그 프로도 7년 정도 했거든. 한 팀이 한 프로그램을 그 정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은데 우리에겐 좋은 경험으로 남아있다.
마케팅 협회 일을 할 때도 이 직군이 더 인정받고 그 위상이 올라가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래야 신규 인력들도 들어올 테니까. 얼마 전 기사를 보니 AI가 대체할 수 없는 직업군에 마케터가 있더라(웃음). 어려운 환경이라도 그 중요성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도전을 즐기면서 한다면 앞으로도 흥미롭고 즐거운 직업군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강효미 대표)
"결국 우린 콘텐츠를 다루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홍보, 마케팅은 물론이고 기획 관련 일도 해나갈 수 있겠지. 혹은 플랫폼이 될 수도 있고. 어떤 형태로 나아갈지 아직 모르지만,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지점을 생각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할 것이다. 퍼스트룩이라는 회사 이름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말이다.
안목이라는 단어를 되게 좋아하고 또 중요하게 여긴다. 다양한 선택을 할 테고 여러 답을 내릴 텐데 어떤 선택을 할지는 결국 그 사람의 안목이잖나. 다른 말로 인사이트라고 할 수도 있고. 그런 점에서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전문적인 능력을 지녔다고 봐도 된다. 콘텐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마케팅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윤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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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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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 마케팅만 21년, 영화산업 위기 이렇게 극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