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시련> 공연사진
(주)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연극은 세일럼 마을의 목사 패리스의 방에서 시작된다. 전날 마을 소녀들이 숲 속에서 문란한 춤을 추었는데, 여기에는 패리스의 딸 베티도 있었다. 베티는 그 광경을 목사인 아버지에게 들키자 기절하고, 여전히 온전한 상태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바로 여기서부터 연극 <시련>이 그려내는 세일럼 마을의 마녀 재판이 시작된다.
언뜻 보기엔 별 일 아닌 것 같은 이 사건은 마을을 발칵 뒤집는다. 사람들은 소녀들의 춤이 악마를 본 것이며, 따라서 소녀들을 마녀로 여긴다. 마녀로 지목된 사람이 자백하면 죽음을 면할 수 있지만, 만약 자신이 마녀임을 계속 부정한다면 사형을 당해야 한다. 이해하기 힘든 대목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동시에 광기의 마녀 재판을 가능케 한 요소들을 살펴보겠다.
<시련>의 마녀 재판을 들여다보면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마을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목사 패리스는 자신의 입지를 다져야 하는 상황이고, 따라서 딸이 마녀 재판에 연루되거나 자신의 능력이 쓸모없는 것처럼 여겨지면 안 된다. 이는 패리스가 마녀 재판을 대하는 태도, 재판을 통해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이기심과 연결된다.
재판을 주도하는 부지사 댄포스는 자신의 명예와 위신을 중시하며, 혹여 자신의 판단을 위협하는 진실이 나올까 우려한다. 토마스 푸트넘은 마녀로 몰린 사람들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마녀 재판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누군가는 한 남자를 차지하기 위해 그 남자의 아내를 마녀로 지목하고, 또 다른 이는 자식이 죽은 이유가 마녀 때문이라며 마녀를 색출할 것을 강하게 요구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그리고 그릇된 신념 때문에 마녀 재판은 멈출 줄 모른다. 지목된 사람이 마녀임을 확인하는 심문의 내용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 마녀로 의심된다며 제시하는 증거들이 모두 상관성을 증명하기 어려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왜 교회에 매주 출석하지 않았는지,아들 3명 중 2명만 세례를 받은 이유는 무엇인지, 십계명을 다 외울 수 있는지, 혹은 집에 인형이 있는지 등을 확인한다.
굳건하다고 여겨진 종교 또는 신이 때로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성스러운 영역으로 치부되는 것들 사이에 세속적인 힘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 역시 보여준다. 이는 종교뿐 아니라 법과 제도의 영역에서도 나타나는데, 댄포스 부지사가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댄포스는 비밀 유지를 목적으로 진술을 거부하는 이에게 법정 모독을 운운하고, 변호사를 대동하겠다는 요청에는 자신을 못 믿냐며 못마땅하게 반응한다.
<시련>은 마녀 재판이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조명하며 종교, 제도, 관계 등의 모순을 꼬집는다. 사람들이 성스럽고 순수하다고 여겼던 것이 실은 오염되거나 왜곡되기 쉽다는 사실을, 굳건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언제든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광란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연극 <시련> 공연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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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몇몇 사람의 탐욕과 그릇된 신념만으로 마녀 재판이 이루졌을까? 가지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 마녀로 지목된 사람과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 역시 마녀 재판에 가담했다.
이들이 마녀 재판이 가담한 첫 번째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마녀로 지목되었으나 자백하지 않으면 교수형에 처해지니, 지목된 사람들은 스스로 마녀임을 시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서 남을 마녀로 지목하는 경우도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평범한 사람들이 마녀 재판을 '하나님의 일'로 여겼다. 평범한 사람들의 잘못된 확신 역시 마녀 재판의 원동력이 된 셈이다. 나아가 이런 사회가 개인을 마녀 재판에 순응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세 번째 이유다.
사람들이 마녀 재판이 신을 위한 것이라 믿고, 따라서 마녀를 색출하는 데 적극 협조해야 하며, 그러지 않는 사람을 악으로 치부하는 사회에서 개인은 마녀 재판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마녀 재판이 수상쩍다고 한들 목소리를 내는 순간, 불이익을 당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마녀 재판은 의심할 수 없는 일이거나, 의심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또 마녀 재판에 연루될 경우 살기 위해 스스로 비굴해져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인물들도 존재한다. 연극 말미에는 그런 인물들을 다룬다. 재판에 넘겨지고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굳건했던 레베카 너스, 자일즈 코리가 그랬고, 그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 잡은 주인공 존 프락터가 그랬다.
이들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사회에 살았지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인물들이다. 이와 관련하여 존 프락터는 "이름"이라는 단어를 계속 언급하는데, 앞으로 <시련>을 보실 독자들께서는 이름이 지닌 상징성을 고민하며 연극을 즐기시면 좋을 것 같다.
▲연극 <시련> 공연사진(주)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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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준·김수로 등 연기파 배우가 그려낸 마녀재판의 광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