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가 사막에서 연꽃을 피워냈다. 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제니는 지난 13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이하 코첼라)의 1주 차 셋째 날의 공연자로서 무대에 올랐다. 아웃도어 시어터는 코첼라에서 메인 스테이지 다음으로 많은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무대다.
첫 솔로 앨범의 수록곡 'Filter'로 공연의 문을 연 제니는 처음부터 압도적이었다. 댄서들과 정규 1집 < Ruby >를 상징하는 빨간 옷을 맞춰 입은 제니는 빨간 카우보이모자와 선글라스 차림을 한 채 무대를 등장했다. 제니는 등장과 동시에 여유로운 태도로 무대를 압도했다. 2년 전 제니가 코첼라에서 블랙핑크로서 공연했을 당시 'Pink Venom'의 첫 소절을 부르며 등장했을 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세계 소녀의 날'에 발표된 노래 'MANTRA'가 바톤을 이어갔다. 여성 댄서들 사이에서 제니는 당당하게 'MANTRA'를 불렀고, 관객들은 여성의 연대를 외치는 후렴구를 부지런히 따라 불렀다.
댄서들과 함께 표현한 참선 수행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2025' 무대에 오른 제니
Coachella 공식 유튜브
공연 중반에 부른 'ZEN'은 이번 공연에서 단연 손꼽을만한 예술적인 순간이다. 'ZEN'이란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게 한다는 의미의 불교 용어 선(禪)에서 따온 것으로, 제니가 신라와 불교 철학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든 곡으로 알려져 있다. 조기석 감독이 연출한 뮤직비디오에도 불교에서 깨끗함을 상징하는 '연꽃',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 '부엉이'가 등장했으며, 신라 시대 금관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의상이 등장했다.
공연에서도 뮤직비디오 속의 철학이 충실하게 구현되었다. 전광판에 날아오르는 부엉이의 형상이 등장했고, 제니는 단순하고도 웅장한 비트에 맞춰 절제된 동작과 랩을 선보였다. 댄서들과 함께 선글라스를 맞춰 쓴 제니는 안무 중에 불교의 합장을 동작을 녹이기도 했다. "Rain, Midnight Bloom(비내리는 새벽에도 꽃을 핀다네)"라는 가사에 맞춰 댄서들과 함께 연꽃을 형상화한 것 역시 절묘했다. 댄서들과 한 몸처럼 움직이며, 구도자의 수행을 완성했다. 분위기의 전환도 자연스러워졌다. 서양적인 형식미 가운데 동양적인 요소를 덧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제니는 50분의 공연 동안 총 13곡을 부르며 공연을 풍성하게 채웠다. 두아 리파와 함께 부른 'Handlebars', 도미닉 파이크와 함께 부른 'Love Hangover', 래퍼 도치와 함께 부른 'ExtraL' 등을 혼자서 거뜬하게 소화했다. 'F.T.S' 같은 곡에서는 안정적인 보컬리스트로서의 능력 역시 증명했다. 'DAMN RIGHT'을 부를 때는 이 공연의 유일한 게스트인 알앤비 뮤지션 칼리 우치스가 등장했다. 우치스 역시 공연의 색깔에 맞춰 빨간 옷을 입은 채 무대로 등장했다. 라틴을 대표하는 알앤비 스타가 노래를 부르고, 그 앞에서 케이팝을 대표하는 스타가 도발적인 춤을 추는 장관이 연출되었다.
제니의 자부심과 확신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2025' 무대에 오른 제니Coachella 공식 유튜브
'c'mon, it's gon' be fxxing hard!'라는 도발적인 멘트와 함께 시작된 타이틀곡 'LIKE JENNIE'는 아마도 모든 관객이 기다리던 순간일 것이다. 'LIKE JENNIE'는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는 제니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확신을 담은 곡이다. 아웃도어 시어터를 가득 채운 관객들은 "Special edition and your AI couldn't copy(나는 AI가 복사할 수 없는 한정판이지)"라는 가사를 신나게 따라 불렀다 힘찬 몸동작으로 자기 확신을 표현하던 제니는 이 공연에서 유일한 한국어 가사를 절륜한 랩으로 선사했다.
'Starlight'을 마지막으로 공연을 마친 제니는 감격에 가득 찬 표정으로 관객들을 바라보며 다음을 기약했다. 물론 제니가 코첼라 무대에 처음으로 선 것은 아니다. 2019년 블랙핑크로서 무대에 올랐고, 2023년에는 케이팝 그룹 역사상 최초의 헤드라이너(간판 공연자)로서 메인 스테이지를 장식했던 바 있다. 제니는 그룹의 화려한 이름을 차치하고도, 솔로 뮤지션으로서 거대한 무대를 장악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동시에 솔로 1집 < Ruby >를 통해 증명한 아티스트 가능성 역시 무대를 통해 충실하게 구현했다. 곧 재개될 완전체 블랙핑크 활동에 대한 기대도 더욱 커졌다.
최근 몇 년간 그랬듯, 올해 코첼라에서도 케이팝 아티스트들의 활약이 빛났다. 제니와 같은 블랙핑크의 멤버인 리사가 앞서 첫날 인상적인 공연을 펼쳤다. (리사는 로제와 함께 제니의 공연을 관중석에서 즐기기도 했다.) 보이 그룹 엔하이픈 역시 사하라 스테이지에 올랐다. 코첼라는 동일한 라인업으로 2주에 걸쳐 진행된다. 제니 역시 오는 20일(현지 시각)에도 사막에서 연꽃을 피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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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카우보이 '제니'의 단독 무대, 코첼라 물들인 '루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