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현대모비스 함지훈 선수
울산 현대모비스 함지훈 선수KBL

프로농구 현역 최고령 선수 함지훈이 불혹의 나이를 뛰어넘는 맹활약을 펼치며 팀에 귀중한 승리를 안겼다.

함지훈의 울산 현대모비스는 4월 13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KCC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5전 3선승제) 1차전에서 안양 정관장을 상대로 접전 끝에 87-84 승리를 거뒀다.

지난 시즌까지 KBL 6강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 승리팀의 4강 진출 확률은 무려 92.6%(54회 중 50회)나 된다. 정규리그 3위팀 현대모비스는 6위 정관장을 상대로 정규리그 전적에서는 2승 4패로 밀렸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먼저 기선을 제압하며 4강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결정적 순간에 빛난 맏형 함지훈

현대모비스는 1차전에서 외국인 듀오 숀 롱(20득점 4리바운드)과 게이지 프림(19득점 7리바운드)이 모두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빛난 것은 맏형 함지훈이었다.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한 함지훈은 시즌 평균(21분 11초)보다 긴 24분 1초를 소화하며 17점 8리바운드의 맹활약을 펼쳤다. 외국인 선수를 제치고 팀내 최다 리바운드에, 국내 선수 중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렸다.

승부가 갈린 4쿼터는 그야말로 '함지훈의 시간'이었다.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던 4쿼터에만 10점 4리바운드를 몰아치며 승부의 흐름을 현대모비스로 가져오는 데 기여했다. 숀 롱과의 콤비플레이를 통해 정관장의 페인트 존을 연이어 헤집었고, 롱의 일대일로 파생되는 공격 찬스를 잘 활용하며 빈 자리를 파고들어 손쉬운 득점을 올렸다. 또한 종료 1분 전에는 함지훈이 절묘한 위치 선정으로 2개의 공격 리바운드를 잇달아 따낸 것이 승리를 확정짓는 분수령이 됐다.

승리 후 조동현 현대모비스 감독은 "두 외국인 선수와 함지훈이 중심을 잘 잡아줘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평가하며 "중간에 함지훈을 교체해줘야 할지 고민했는데 흐름을 뺏길까봐 계속 밀어붙였다. 구심점 역할을 잘해줬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함지훈은 현대모비스의 상징이자 기록의 사나이다. 중앙대를 졸업하고 2007년 신인드래프트를 거쳐 프로에 데뷔한 함지훈은,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무려 17년째 현대모비스 한 팀의 유니폼만을 입고 활약중인 '원클럽맨'이다.

사실 그가 프로무대에 처음 도전장을 던질 때만 해도 이 정도의 레전드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함지훈이 등장한 2007년 신인 드래프트는 프로농구 역사상 '황금세대'를 배출한 때로 꼽힌다. 당시 함지훈은 김태술·양희종·이광재·정영삼 같은 쟁쟁한 동기들에 밀려 1라운드 최하위인 10번에 턱걸이로 지명받았다.

심지어 함지훈이 프로에 데뷔하던 시기는 외국인 선수가 2명이 동시에 출전하던 시기였다. 외국인 선수를 받쳐줄 수 있는 가드나 슈터는 상종가였던 반면, 외국인 선수들이 골밑을 장악한 환경 속에서 토종 빅맨의 주가는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대학 시절 최고의 빅맨으로 꼽혔지만 프로무대에서는 언더사이즈에 가까운 애매한 신체조건과 운동능력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저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함지훈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리그 최고의 선수로 성장했다. 탄탄한 기본기와 파워, 변칙적인 스텝과 슈팅능력, 탁월한 BQ를 바탕으로 자신보다 크고 빠른 선수들의 허를 찌르며 '언더사이즈 토종 빅맨이 어떻게 KBL에서 살아남아야 하는지'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존재로 거듭났다.

오히려 신체조건이나 운동능력에 크게 의존하지 않던 플레이스타일 덕분에, 많은 선수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겪는 '노쇠화'의 영향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경기를 보다 보면 특별히 화려하거나 눈에 띄는 플레이를 하지는 않지만, 적재적소에 가장 효율적인 움직임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NBA(미 프로농구) 레전드인 팀 던컨(전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자주 비교되기도 한다.

베테랑, 그 이상의 의미

함지훈은 정규리그 통산 805경기에 출전해 10.2점, 4.9리바운드,3.6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현대모비스가 기록한 역대 7회의 우승 중 무려 5번을 함께 했으며 2009-2010시즌에는 팀의 통합우승을 이끌고 정규리그 MVP까지 올랐다.

현대모비스는 함지훈이 입단한 이후 18시즌간 15번이나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았다. 2010-2011시즌은 그가 군복무 중이었고, 2019-2020시즌은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시즌이 조기중단된 경우이기에, 신인 시절인 2007-2008시즌을 제외하면 함지훈이 최소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지 못한 시즌은 한번도 없었다. 그는 통산 플레이오프에서만 83경기에 출전해 역대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미 지금 당장 은퇴해도 현대모비스에서 함지훈의 '영구결번'은 확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어느덧 그와 동시대에 활약했던 선수들은 이제 모두 은퇴했거나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함지훈과 현대모비스에서 팀메이트였던 1살 위의 김효범 감독은 현재 서울 삼성의 지휘봉을 잡고 있고, 동갑내기이자 드래프트 동기인 김태술은 올시즌 고양 소노의 감독을 역임했다. 현재 KBL에서 함지훈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는 불혹을 넘긴 지금도 단지 상징적인 베테랑을 넘어서, 여전히 팀에서 중요한 핵심 선수로 건재하다. 함지훈을 올시즌 정규리그에서 37경기를 소화하며 6.6점, 3.6리바운드, 2.9어시스트로 출전시간 대비 높은 생산성을 발휘하며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끄는 데 기여했다. 지난 6일 열린 서울 삼성과의 정규리그 마지막 홈경기에서는 주희정(572승)에 이어 KBL 역대 2번째로 정규리그 개인 500승(현 501승)의 위업을 달성하기도 했다.

함지훈은 정관장전 승리 직후 "선수들과 몸싸움과 리바운드 등 기본적인 플레이에서 밀리지 말자고 이야기했다. 다행히 준비한 대로 잘 된 것 같다"며 만족감을 표현했다. 또한 승리에 안주하지 않고 "상대 외국인 선수를 수비하는 데 도움 수비와 위치 선정 등에서 동료들과 이야기해 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며 보완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냉철한 진단도 덧붙였다.

현대모비스는 문태종(44세), 이창수(42세), 양동근(40세), 우지원(37세) 등 팀을 거쳐간 베테랑들이 말년까지 좋은 활약을 이어가며 선수생활을 아름답게 마무리했던 선례가 많은 팀이다. 불혹을 넘긴 함지훈 역시 아직 은퇴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활약을 이어가며 '팀에 왜 모범이 될 수 있는 베테랑이 필요한지' 그 존재 가치를 확실히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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