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리>영화 포스터
(주)영화사조아
오랜 노력 끝에, 꿈에 그리던 집으로 이사 온 카미키 가족. 그러나 행복한 시간도 잠시, 이사 후 불가사의한 현상들이 잇따라 발생하며 아버지 아키오(카지와라 젠 분), 어머니 마시코(우라베 후사코 분), 할아버지 쇼조(키타로 분), 장녀 케이코(모리타 코코로 분), 막내 슌(이노미타 레이오 분)이 잇따라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 하루에(네기시 토시에 분)와 장남 노리오(미나미데 료카 분)는 모든 비극이 과거 이 집에 살다가 죽은 소녀 '사유리' 때문인 걸 알게 되고 가족을 앗아간 원혼에게 복수하고 집을 되찾기 위한 반격을 준비한다.
일본 공포 영화에서 '귀신이 나오는 집'은 친숙한 소재다. 오래 전부터 일본에선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 복수를 한다는 괴담이 흔했으며 이런 원혼의 복수는 거주 공간이자 가족, 정체성, 과거를 의미하는 장소인 집과 결합해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로 발전했고 영화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일본 공포 영화를 대표하는 <주온> 시리즈는 집 자체가 저주의 매개체였고 <링> 시리즈에선 원혼이 생전에 살던 집과 우물이 중요한 공간으로 나타난다. 이들 영화에서 집은 억압된 기억, 죄의식, 해결되지 않은 상처가 외부로 표출되는 공간이었다.
<사유리>는 일본의 '귀신이 나오는 집'을 다룬 영화들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영화는 일본의 오시키리 렌스케 작가가 만든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삼았다. 원작 만화 <사유리>는 일본 공포물의 익숙한 설정으로 시작해 중반부터 예상치 못한 '반격'과 '복수'를 펼치며 전형적인 틀을 깬 것으로 유명하다.
공포와 웃음이 공존하는 혼돈의 분위기
▲<사유리>영화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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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유리>의 메가폰은 페이크 다큐 <노로이>(20050, 한일 합작 공포 영화 <원 컷-어느 친절한 살인자의 기록>(2014), <링>과 <주온>의 만남인 <사다코 대 가야코>(2017)를 연출한 바 있는 시라이시 코지 감독이 잡았다. 시라이시 코지 감독은 오시키리 렌스케 작가의 "원하는 대로 만들어 주세요"란 응원에 힘입어 원작의 전반과 후반의 색깔이 다른 장르 전환이란 기본적인 틀은 살리되 시각과 청각으로 공포를 강화하고 영화만의 설정과 웃음을 추가해 대중적인 재미를 더했다.
전반부는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 집에 깃들어 복수심에 사무쳐 악행을 저지르는 '원혼 모티프', 평범한 공간을 배경으로 삼아 친숙함 속에서 공포를 추출하는 '일상성', 분위기를 중요시하며 느린 호흡으로 불안감을 증폭하는 '심리적 공포' 등 <링>과 <주온>이 구축한 친숙한 공식에 충실한 정통 J-호러다. 감독은 시각적, 청각적 효과를 덧붙여 공포를 극대화한다. 집 안 곳곳을 활용한 긴장감 넘치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집 안에서 들리는 사유리의 웃음소리나 기괴한 소음은 마치 관객에 카미키 가족과 함께 공포를 체험하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후반부엔 원작과 마찬가지로 '반격'과 '복수'를 기반으로 한 코미디 장르로 전환한다. 귀신이 사는 집에 눌러앉겠다는 것도 모자라 복수를 한다는 원작 만화의 설정도 기가 막힌 데 영화는 한술 더 떠서 치매에서 벗어나 제정신이 돌아온 할머니 하루에와 손자 노리오가 '태극권'으로 사유리에게 복수한다는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해 웃음을 자아낸다. 사유리에 대한 반격 장면엔 과장된 연출과 터무니없는 상황들이 계속되며 공포와 웃음이 공존하는 혼돈의 분위기를 만든다. 과거 태극권 사범이었던 할머니의 가르침을 받아 손자가 신체를 단련하는 모습은 마치 무협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시라시이 코지 감독은 공포와 코미디를 조화시키는 어려운 작업을 멋지게 성공한다.
일본 사회 현실 형상화
▲<사유리>영화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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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리>는 겉으론 '귀신이 나오는 집'을 소재로 삼은 평범한 공포/코미디 영화로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일본 사회의 현실을 형상화하여 눈길을 끈다. 하나, 가족의 재건이다. 카미키 가족은 새로운 집을 통해 행복을 얻으려 했으나 사유리에 의해 하나씩 사라지며 붕괴한다. 이는 일본에서 급격히 핵가족화가 이뤄지며 전통적인 대가족 구조가 사라진 걸 반영한 묘사다. 영화는 가족이란 사회 안전망이 약해진 일본의 현실을 공포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와 노리오의 반격은 가족이 다시 뭉친다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둘, 노인도 강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일본은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노인은 항상 보호받아야 할 약자로 인식되었고 그들의 사회적 역할은 축소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 하루에가 중반 이후 각성하여 사유리에게 맞서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소외되거나 무력하다고 치부되던 노인 세대도 강인함과 생명력을 가졌으며 가족을 구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유리>영화의 한 장면(주)영화사조아
셋, 일본의 코로나19 대응 상황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다. 영화에서 사유리의 저주에 코로나19를, 할머니와 손자의 반격에 생존 의지를, 가족의 은폐와 경찰의 무능력에 일본 정부의 무책임을 대입하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영화에서 사유리는 코로나19처럼 예측 불가능한 공포로 다가온다. 할머니 하루에와 손자 노리오가 가족을 하나둘 잃는 모습은 코로나19가 확산하며 많은 사람이 겪은 상실감과 다를 바가 없다. 사유리의 가족들이 그녀를 죽인 후 살인을 감추는 장면은 마치 코로나19가 유행할 무렵 일본 정부가 저지른 은폐가 겹쳐진다. 할머니 하루에가 가족이 죽어도 경찰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고 화를 내며 자신과 노리오가 직접 사유리를 처리하는 건 코로나19 당시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자 개인과 지역 공동체가 정부의 지원 없이 자구책을 마련하던 현실을 은유한 인상이다.
원작 만화가 2011년에 연재를 시작했고 시라이시 코지 감독 역시 팬데믹 상황을 담았다고 언급한 적이 없었기에 무리한 해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준비한 시기는 코로나19가 한창 일본 사회에 영향을 주었던 무렵이다. 당시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의 경험과 그로 인한 불안은 무의식적으로든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시라이시 코지 감독은 말한다.
"일본 사회의 불안을 공포로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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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불가능한 공포에 일본 치매 할머니가 한 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