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플러스 퓨전사극 <허식당>의 주인공은 17세기 초반의 광해군시대 사람인 허균(시우민 분)이다. 그는 대한민국에 환생한 순간부터 백반집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 이 시국에 5천원 짜리 백반을, 그것도 맛집 백반을 먹는 행운을 그는 누린다. 요즘 물가에 대한 감각이 있었다면, 착해도 너무 착한 그 가격 때문에도 한층 맛나게 먹었을 것이다.
허균은 현대 음식에 금방 적응할 뿐 아니라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음식도 척척 만들어낸다. 자신은 한번 맛본 것은 뭐든지 기억해내는 초월 천재라고 자부하며 지금 사람들의 입맛을 절묘하게 맞춰준다. 호텔급 식당을 경영하는 도도한 한식 명장 이혁(이세온 분)마저 그 음식을 맛보고 스카우트 제의를 했을 정도다.
백반집 사장(김희정 분)의 딸인 봉은실(추소정 분)은 한밤중에 느닷없이 출현해 자기네 식당에서 신세지는 허균을 못마땅해하며 내쫓으려 했다. 그랬던 봉은실이 허균을 꼭 붙들고 놓아주지 않게 된 것은 어머니가 병원 신세를 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허균이 어머니 이상의 음식 솜씨를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광해군시대 사람이 21세기 음식과 양념에 금방 적응한 결과로 생겨난 드라마 속의 일들이다.
단군신화를 만들어낸 고대 한국인들은 환웅이 곰에게 마늘을 먹으라고 건네주는 장면을 상상했다. 이 신화에 나오는 산(蒜)이라는 글자가 마늘이 아닌 다른 것을 의미했을 수 있다는 주장들도 있지만, 그것이 마늘이라는 점을 뒤엎을 만한 학술적 근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MBN 플러스 <허식당> 관련 이미지.MBN플러스
매운 맛에 익숙했던 광해군 시대 사람들
세종대왕이 세상을 떠난 1450년 무렵에 <산가요록(山家要錄)>이라는 요리 안내서가 나왔다. 의관 전순의(全循義)가 쓴 이 책이 현재까지는 한국 최고(最古)의 요리서다. 이 책에 나오는 침산(沈蒜)은 마늘김치로 풀이된다. 전순의는 이 음식의 조리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덜 성숙했을 때 마늘을 캐서 거친 껍질을 벗겨내 깨끗이 씻어 말린다. 물기를 없애고 끓는 물에 짜지 않게 소금을 타서 식으면 담근다. 먹을 때 껍질을 벗겨보면 하얗고 맛이 좋다."
다른 재료는 들어가지 않고 마늘과 소금만으로 만드는 음식이 이처럼 15세기 서적에서 추천됐다. 훨씬 이전 시대의 한국인들뿐 아니라 허균(1569~1618) 같은 광해군시대(1608~1623) 사람들은 이 같은 마늘과 소금에 더해 생강의 매운 맛에도 익숙했다. <산가요록>은 오이지인 과저(瓜菹)를 담그는 방법 중 하나를 이렇게 소개한다.
"푸른 오이를 1치쯤 되게 잘라서 끓는 물에 살짝 담갔다가 건져내 푸른색을 없애고 형개(荊芥), 산초 잎, 생강, 마늘을 섞어서 항아리에 담고 참기름과 달인 장물을 부어 하룻밤 지낸 뒤에 먹는다."
17세기 초반 사람들은 생파의 매운 맛도 잘 알고 있었다. 위 책은 파김치 제조법도 소개한다. "파를 깨끗이 씻고 소금을 적당히 쳐서 나무통에 담고, 2일이 지나 소금기가 다 밴 후에 항아리를 햇볕 비치는 곳에 놓고 파를 묶음 지어 항아리에 담은 뒤 지저분한 것이 섞이지 않게 하고 무겁게 눌러둔다"고 알려준다.
그런데 광해군시대 사람들은 고추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파·마늘·생강의 매운 맛에는 친숙해도 고추의 매운 맛에는 그렇지 않았다. 이 시대인 1614년에 발행된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주막집에서 소주와 함께 고추를 먹은 사람들이 죽는 일이 많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때만 해도 한국인들의 몸은 고추의 독한 맛을 잘 감당해내지 못했다.
한국인들이 임진왜란(1592~1598)을 전후에 유입된 고추에 적응하고 이를 양념으로 활용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고추가 그렇게 이용된 것은 광해군시대 이후다. 영조 임금 때인 1766년에 발행된 유중림의 <증보산림경제>는 무우 동치미를 만드는 방법 중 하나를 소개하면서 고추와 그 잎을 거론한다.
"첫서리 뒤에 무우와 잎을 거두어서 깨끗하게 씻는다. 이와 별도로 고추의 연한 열매와 줄기와 잎, 청각, 늙지 않은 오이, 어린아이 주먹만한 호박과 잎 밑의 연한 줄기, 가을 갓의 줄기와 잎, 동아, 초피, 부추 따위를 가져다가 함께 담근다. 그리고 마늘을 많이 갈아 즙을 내고 무우와 여러 가지 양념들과 버무리고, 항아리에 넣을 때에 한겹 한겹 띄워 마늘즙을 골고루 넣는다. 항아리를 단단히 싸매어 땅에 파묻는데 앞에서 말한 대로 하면 된다."
매운 고추에 이어, 음식에 깊은 맛을 더해주는 젓갈이 양념으로 쓰인 것은 훨씬 뒤다. 1815년경에 발행된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에 조기젓·굴젓·밴댕이젓이 등장한다. 젓갈이 들어간 깊이 있는 김치의 맛은 1815년 이전의 어느 시점부터 맛볼 수 있었다.
허균 같은 광해군시대 사람들은 파·소금·마늘·생강 등이 들어간 음식에는 익숙했어도, 고추나 젓갈이 들어간 음식은 잘 몰랐다. 그래서 그 시대 사람들이 오늘날의 백반집에서 고춧가루나 젓갈이 들어간 반찬을 입에 넣게 되면 이질감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그 시대 사람들도 파·소금·마늘·생강 등에 익숙했다. 그래서 고추 양념이 너무 과하게 들어가지만 않는다면, 그들이 현대의 백반에 적응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듯하다.
하지만, 음식의 양념 못지않게 음식의 가격도 중요하다. <허식당> 속의 허균은 그에게 부담되지 않는 5천원짜리 백반부터 입에 댔다. 백반 가격이 1만원 고지를 넘어 그 이상을 마구 활보하게 된다면, 광해군시대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 시대 사람들도 백반집 음식에 적응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가격이 싸면 음식에 대한 평가가 호의적이 된다. 물가도 제2의 양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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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