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행복의 노란 손수건> 스틸컷
태양미디어그룹
물론 일부 장면에서 감수성 높은 여성들에게 불쾌감을 자아낼 수 있겠다. 어떻게든 아케미를 덮치려 드는 킨야의 모습과 그를 밀어내면서도 끝끝내 동행을 이어가는 아케미의 선택이 요즈음의 감성으론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탓이다. 당대 일본 기준으론 장점만이 언급됐던 이 영화가 오늘 한국에서 재개봉 한 뒤 성적 불쾌감과 여성 캐릭터의 수동적 선택에 대한 비난에 직면한 건 차라리 자연스럽다 해도 좋겠다.
일례로 둘은 사정이 꼬여 한 여관방에 들게 되는데, 아무 짓도 안 하고 따로 자기로 한 킨야가 당초 약속과 달리 아케미를 범하려 든다. 그와 나란히 누워 있던 아케미는 슬금슬금 넘어오는 킨야에게 키스까지는 허락하지만 그 이상을 요구하는 그와 실랑이를 벌인다. 이 장면은 직접적 폭력만 쓰이지 않을 뿐이지 요즈음 한국 법률 기준으로는 거의 범죄와 맞닿는 수준인데, 영화는 이와 같은 장면을 남녀사이에 다반사로 벌어질 수 있는 일인 듯 연출하는 것이다.
방음이 좋지 않은 옆방에서 상황을 그대로 듣던 동행 시마 유사쿠(다카쿠라 켄 분)가 참지 못하고 옆방 문을 열어젖히며 상황을 일단락 시키는데, 이때 그가 킨야의 무리한 요구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 그쯤 해 둬'라고 싸잡아 비난하는 대목도 당시의 사회문화적 분위기를 알도록 한다. 말하자면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이 예민하게 다뤄지는 요즈음의 감성과 어찌됐든 결과만 좋다면 만사 오케이라는 당대의 풍토가 얼마만큼 달라졌는지를 알도록 하는 사건들이다.
<행복의 노란 손수건>은 이처럼 킨야와 아케미의 엇갈리면서도 어딘지 가능성이 엿보이는 관계를 흥미롭게 드러내는 가운데서 차츰 이들과 동행하는 사내 유사쿠의 사정을 꺼내놓는다. 그가 과거 사람을 죽이고 감옥소에서 살았다가 이제 막 출소하는 상황이란 사연부터, 살인에 이르게 된 사정, 또 고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아내와의 관계까지를 하나 둘 풀어낸다. 그리고 마침내 동행인 킨야와 아케미가 이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낯선 이 유사쿠를 응원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변한 것이 꼭 나아진 건 아님을
여러모로 영화는 1970년 일본사회와 반세기 흐른 뒤의 한국사회의 격차를 느끼도록 한다. 킨야가 아케미를, 유사쿠가 아내를 대하는 모습에 더해, 이 영화가 여성 캐릭터를 그려내는 자세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아예 비판적 의식을 갖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라 믿는다. 과거의 마초이즘이 깨져나간 자리엔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고 그 사고와 결정의 가치를 존중하는 모습이 자리한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일부 그를 훼손한 장면과 선택들이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는 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회의 발전이라 보아야 옳을 테다.
그러나 한편으로 영화는 우리가 잃은 것 또한 돌아보도록 한다. 킨야와 아케미, 그리고 유사쿠까지, 세대와 성별은 물론이고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배경까지 완전히 다른 이들이 별다른 위화감 없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지난 시대 우리가 지나온 세상을 떠올리게 한다. 이웃도 고향도 공동체도 모두 다 잃어버리고 파편화되고 개인화된 한국사회의 모습을 무작정 발전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어른의 조언이 오지랖이며 꼰대질로만 평가되고, 도움도 없고 해를 끼치는 일도 없는 세상이 마땅히 자연스럽다 여기는 오늘의 모습이 과연 이 영화 속 풍경보다 아름답다 할 수 있는가.
전과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꺼이 그 사연에 귀를 기울이고 재기의 기회를 주는 자세 또한 영화 안 여러 대목에서 드러난다. 경찰에게, 동행인 킨야와 아케미에게, 그리고 그 자신과 아내에게까지 말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사회는 어떠한가. 죄를 지은 이에게 딱지를 붙이고 저와 다른 이들과 엮이지 않으려 드는 경계 짓고 손가락질 하는 이들의 세상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행복의 노란 손수건>이 드러내는 다름은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도록 이끈다. 자연스럽다고 믿지만 세월이 지나 바라보면 자연스럽지 않은 모습일지도 모르는 많은 면모를 우리는 갖고 있는 것이다. 오늘을 달리 보도록 이끄는 영화란 언제나 귀하다. 이 영화가 그렇다.
▲영화 <행복의 노란 손수건> 포스터태양미디어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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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