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원 배우가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커튼콜데이 촬영)
최정원 배우가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커튼콜데이 촬영)한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대표 넘버 '지금 이 순간'은 원작의 인기를 뛰어넘었다. 이중인격의 대명사로 불리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뮤지컬뿐 아니라 여러 미디어로부터 재현되고 각색됐다. 선한 지킬 박사로부터 악한 본성 '하이드'를 끌어낸 이야기를 연극 <지킬 앤 하이드>는 어떻게 표현했을까.

이 연극에서는 지킬과 하이드를 포함해 지킬의 충직한 친구이자 변호사인 어터슨, 한량 앤필드, 친구 래니언, 범죄의 목격자, 집사 풀까지 한 배우가 연기한다. 이때 배우를 '퍼포머'라고 부른다. 최정원·고훈정·백석광·강기둥 배우가 출연한다. 220석의 TOM 2관에서 5월 6일까지 공연된다.

최정원, 스스로를 증명하다

대극장 주연으로 주목받던 최정원은 이 극을 통해 첫 모노드라마에 도전했다. 상대 배우와의 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던 그는 홀로 서는 무대에 "외롭다"고 말한다. 최정원은 지난 2일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홀로 서는 무대인 만큼 관객들을 동료 배우라고 생각하며 연기한다. 관객들이 나의 어터슨이다"라고 말했다.

최정원의 필모그래피에서 이 극은 특별하다. 처음 그가 <지킬 앤 하이드>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당연히 대극장 뮤지컬인 줄 알았다. 드디어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 여성 지킬을 볼 수 있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연극이었다. 심지어 일인극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호기심이 생겼다.

뮤지컬 <시카고>, <컴 프롬 어웨이> 등 다수의 대극장 작품에서 굵직하고 탄탄한 연기로 극을 이끌어가는 모습은 보인 최정원이 과연 연극도 잘할 수 있을까? 대학로 소극장에서, 그것도 연극에서, 심지어 모노드라마로 볼 또 다른 기회가 있을까?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들어갔던 공연에서 그는 모든 것을 증명했다.

온 힘을 쏟는 최정원의 에너지는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가 입장하는 관객들의 분위기에 힘을 얻는다고 말한 것과 같다. 시작 전 소대에서 입장하는 관객들의 대화를 듣는다는 최정원은 첫 대사가 가장 어려우면서 설렌다고 말했다. 그는 "그날의 첫 대사의 느낌이 그날 공연을 이끈다"고 덧붙였다.

유일한 여성 배우로서 캐스팅된 그는 대사를 외우는 일부터 시작해 여러 의견을 냈다. 이준우 연출은 "모든 연습을 지켜보는 열정에 감탄했다"라고도 말했다. 넘치는 에너지로 관객의 박수와 호응을 유도하며 이야기를 시작한 최정원은 마지막 지킬의 고백 장면을 통해 절정으로 장식한다. 머리 한쪽을 늘어내리고 모자를 쓴 최정원은 어느 자리에서 보냐에 따라 지킬 같기도, 하이드 같기도 한 모습으로 그 안에 지킬과 하이드가 모두 있음을 표현한다. 무대에 홀로 선 그는 순식간에 관객들을 극 안으로 끌어들이며 함께 호흡한다.

퍼포머와 관객이 함께 만드는 무대

 연극 <지킬 앤 하이드> 공연 전의 빈 무대다. 왼쪽이 무대 아래, 오른쪽이 문과 모자.
연극 <지킬 앤 하이드> 공연 전의 빈 무대다. 왼쪽이 무대 아래, 오른쪽이 문과 모자.한별

이 극에서 관객은 퍼포머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들은 단순히 퍼포머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지 않고, 무대와 이야기를 상상해야 한다. 이준우 연출은 단순한 무대 구성을 두고 배우와 관객들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 모양의 틀일 뿐이지만 퍼포머의 설명과 관객의 상상으로 그 문은 한없이 그로테스크해질 수 있다. 이야기는 그 문에서 시작된다.

이준우 연출은 '그로테스크하다'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딱 맞는 한국어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괴하다' 등의 유의어는 있을 수 있지만 그 의미를 완전히 담은 단어는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회화 작품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이준우 연출은 "베이컨은 그로테스크 미학을 정리했다. 숨겨진 인간의 본성이나 불안, 공포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제4의 벽(무대와 객석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해제된 상황에서 어터슨을 연기하는 퍼포머는 관객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순식간에 런던으로 들어간 관객은 어터슨과 함께 사건과 하이드를 마주하며 극의 전개를 같이 만든다.

이준우 연출은 무대를 단순하게 만든 만큼 조명을 다양하게 구성했다고 말했다. 어두운 극의 분위기에 맞춰 최소한의 빛을 사용하고 무대 조명을 통해 상황과 인물을 표현한다. 옷걸이에 걸린 모자의 그림자는 지킬 같으면서도 어느 순간 하이드가 된다. 하이드의 살인 사건 현장은 무대 양옆에서 쏘는 조명과 음향으로 시공간을 형성한다. 이 극에서 조명은 상황을 반전시키는 도구일 뿐 아니라 지킬과 하이드, 명과 암, 위선과 본능을 표현하는 장치가 된다.

누구에게나 하이드가 있다

 극장에 부착돼 있는 최정원 배우 캐스팅보드.
극장에 부착돼 있는 최정원 배우 캐스팅보드.한별

어터슨은 등장하자마자 "자신을 선한 사람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하이드를 추적하고 찾아내던 그의 모든 행동은 친구인 지킬 박사를 위한 행동일 뿐, 사회 정의나 진실을 통한 문제 해결을 촉구하지 않는다. 극 중 일어난 살인 사건이 모두 하이드의 짓이고, 하이드가 곧 지킬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도 하이드를 위해 충직한 집사 풀을 두고 올 정도로 냉혹하다. 그런 어터슨에게 하이드를 꺼낸 지킬은 "그 본능이 자네의 하이드"라고 지적한다. 어터슨은 부정하지 않는다. 공연은 어터슨이 "말했잖아요, 저 착한 사람 아니라고"라고 내뱉으며 끝난다.

<지킬 앤 하이드>의 고전적인 해석은 선과 악이다. 보통 지킬은 선한 인물로, 하이드는 지킬로부터 분리한 악한 인성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이 극에서 지킬과 하이드는 선악보다는 이성과 본능으로 해석된다. 하이드가 본능이라면 지킬은 위선이다. 착함과 나쁨을 처치하고서라도 본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면 그건 가짜다.

네 명의 퍼포머는 각자 자신의 해석대로 연기하지만 정답도 가짜도 없다. 큰 틀은 함께 잡되 디테일은 다르게 둬 배우에 따른 디테일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최정원이 처음 연습을 시작할 때 남자 목소리를 내려고 하자 이준우 연출은 "선배님(최정원)의 목소리로 해주세요"라고 주문했다는 후문이다.

강기둥은 술을 마시며 등장하고 안경을 쓰고 벗는 행위로 극 참여를 결정한다. 고훈정은 단추가 떨어지고 서스펜더가 끊어지는 돌발 상황을 연기를 통해 모면한다. 각자의 선택이 살아 있는 대본이 관객들의 흥미를 돋군다. 초연의 네 배우뿐 아니라, 앞으로 종횡무진 활약할 다른 연기파 배우들의 연극 <지킬 앤 하이드>가 궁금하다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올해 20주년을 맞았고, 아홉 번째 시즌을 이어가고 있다. 웅장한 무대를 내세우는 뮤지컬로 인해 연극 <지킬 앤 하이드>가 초라해 보일 것 같다면 그는 오판이다. 여러 미디어에서 해석되며 많은 해석을 거친 지킬과 하이드가 드디어 대학로에 찾아왔다. 올해 초연을 올린 연극 <지킬 앤 하이드>가 앞으로 배우의 해석과 관객의 상상으로 극을 발전시켜 오래 대학로에서 장수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 블로그 https://blog.naver.com/burn_like_a_sta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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