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마추어>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03.
"내 기분은 중요하지 않아요. 세라는 소중한 사람이에요."
이 영화가 기존의 다른 첩보물과 차별점을 갖고자 하는 부분은 인물이다. 뛰어난 체격 조건을 바탕으로 수준 높은 액션은 물론, 수많은 복잡한 장치를 능숙하게 다루던 기존의 스파이와 다른 캐릭터. 극 중 캐릭터는 IQ 170이라는 범접할 수 없는 두뇌로 평생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었던 암호 해독가로 현장 경험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다. 아내의 복수를 다짐하며 범죄자들을 직접 처단하겠다고 마음먹지만 CIA 훈련을 받는 동안에도 총 한 번 제대로 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간단한 가정집 문을 따는 일조차 동영상을 보며 배워야 하는 정도. 그 대신 그에게는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고도의 해킹 능력과 프로그래밍 실력이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인물은 현장에 직접 투입되는 대신 백업 요원으로서 주인공을 돕는 경우가 많다. 이번 작품에서 그가 현장에 직접 뛰어들게 된 데는 아내의 죽음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일련의 사건 뒤에 믿을 수 있어야 할 정보부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도 영향을 미친다. 앞서 이야기했던, 자신의 권력 위에서 의도된 공격조차 테러로 둔갑시킬 수 있는 본부장이다. 실제로 아내가 죽임을 당한 영국 테러는 조작된 테러로 인한 반동과 분노로 일어났다. 사건을 들춰내 아내의 복수를 이루려는 찰리와 이를 막고 은폐하려는 집단 사이의 다툼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개인은 혼자서라도 나서려 한다.
문제는 액션 스릴러 장르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로부터 육체적인 강점을 빼앗고 나니 장르적 강점이 되어야 할 액션의 지점이 상대적으로 빈약해진다는 데 있다.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할 수도 없는 법이다. 제임스 하위스 감독은 이를 주변 인물의 갈등 구조를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이제 막 정보부 국장 자리에 취임한 신임인 오브라이언(줄리안 니콜슨 분) 국장이 무어 본부장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결 구도다. 두 인물은 공통의 목표인 찰리를 함께 뒤쫓으며 긴장감을 형성한다. 찰리가 테러범을 처단하는 과정에서의 장면 또한 나름의 역할을 해낸다. 직접적인 격투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지점을 최대한 볼륨감 있게 다룸으로써 시각적인 자극을 이끌어내고 있다.
04.
"넌 할 만큼 했어. 세라가 뭘 원하겠어?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던 머리만 좋은, 총도 하나 제대로 쏘지 못하는 인물의 복수극. 누군가를 한 번도 죽여본 일이 없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는 영화 곳곳에 드러난다. 처음 찾아갔던 그레첸 프랭크(바바라 프로브스트 분)를 마주했을 때도 직접 죽이지 못하고 망설이다 일을 그르칠 뻔하고, 아내의 살인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호르스트 실러(마이크 스털버그 분)는 자신을 죽여보라며 총까지 직접 쥐여주지만 결국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이 부분에 대해 영화는 실러의 입을 빌려 테러 직후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했어야 하는 그들과 복수의 마지막까지 이르기 위해 간접적인 방법으로나마 누군가를 죽여온 찰리가 별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눈앞에서 직접 죽이는 일은 매번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일에 가까운데, 이미 너무 큰 존재를 잃어버린 직후라 그 또한 그러지 못한 것이라고 말이다.
진심은 아니다. 영화는 자신의 말을 완전히 전복시키며 직접적인 폭력과 살인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복수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마지막에서 분명히 보여준다. 찰리가 방아쇠를 직접 당기지 못하는 것이 두려움이나 나약함 때문이 아니라 훨씬 더 성숙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말이다. 이는 본부장 무어의 횡포에 맞서 정의를 지키고자 하는 오브라이언 국장의 모습 또한 같은 맥락에서 하나의 메시지를 완성해 낸다.
"우리가 하는 일이 가끔 어두운 곳에서 이루어지더라도, 목적과 수단마저 어둠에는 물들어서는 안 된다."
▲영화 <아마추어> 스틸컷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05.
찰리 헬러를 연기한 라미 말렉은 이 인물이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는 인물'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인물이 표현되는 데에는 그의 예민하면서도 일면 불안해 보이기까지 한 선명한 표정이 큰 역할을 해낸다. 어쩌면 이 작품으로 인해 라미 말렉은 자신의 거대한 작품 <보헤미안 랩소디>로부터 조금 떨어져 나올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프레디 머큐리의 모습이 지워지거나 옅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역할, 더 넓은 세상으로 이제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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