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최불암 선생님께서 (한국인의 밥상을) 하시면서 보여주신 눈빛, 손짓 하나하나 모든 게 국민들에게 담겨 있잖아요. 그래서 제게 제안이 왔을 때 상당히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마음을 먹은 건 통화에서 고두심 선생님이 해준 말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해주고 기쁨과 슬픔을 많이 느껴주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한국인의 밥상>의 새 진행자 배우 최수종이 부담감을 이겨내고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전했다. 1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신관에서 열린 <한국인의 밥상> 700회 겸 새 프리젠터 간담회에서 그는 "(최불암) 선생님의 그림자를 밟을세라 조심하면서 그 발자국을 뒤따라가겠다"고 말했다.
새로운 맛의 동행자
▲배우 최수종이 <한국인의 밥상> 새로운 진행자로 나선다.
신나리
지금이야 음식과 이야기를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이 많지만, 14여 년 전에는 요리법을 소개하는 방송이 대다수였다. 다만, <한국인의 밥상>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각자의 사연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어떤 계절에 어떤 음식을 먹는지, 이 음식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삶의 희로애락을 전했다. 매회 음식과 이야기를 찾는 동행자로 한국인의 대표 아버지로 불리는 이가 함께했는데, 배우 최불암이었다.
한국의 맛과 그 기록을 좇던 그는 2025년 1월 16일 <한국인의 밥상> 688회를 마지막으로 하차했다. 기획과 연출을 총괄하는 임기순 피디는 "(최불암) 선생님은 우리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아간다며 방송에 열정과 애정 그리고 사명감이 컸다. 다만, 첫 방송부터 14년 11개월 동안 헌신적으로 매주 전국을 다녔다"면서 "'이제 든든한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주고자 한다'는 뜻을 밝혀 오랜 시간 고민 끝에 새 진행자를 찾았다"고 새로운 진행자가 온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인의 밥상'은 지역 대표 음식들의 숨겨진 이야기와 역사, 문화 등을 아름다운 영상과 깊이 있는 취재를 통해 매주 한편의 '푸드멘터리'로 전달한다. 최불암이 마지막으로 진행한 688회 방송 '오대산 가는 길 - 겨울 맛이 납니다'에서 설국의 진수가 펼쳐지는 소금강을 품은 노인봉을 카메라에 담으며 노인봉 산장을 지키며 산 산장지기와 친구들, 그들이 즐겨 먹는 백숙을 보여주는 식이다.
임 피디는 "프로그램의 형태는 기존과 같다. 사라져 가는 음식이 많은데 이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맛의 저장소로서 역할에 계속 충실할 것이다"라면서 새로운 진행자가 온 후의 변화를 두고 "국민 남편이라는 별칭처럼 국민 여러분에게 친밀함을 무기로 다가갈 수 있는 최수종과 함께 새로운 변화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행자가 바뀌는 건) 세대교체가 아니라 세대를 이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지켜온 <한국인의 밥상> 유산을 잘 이어갈 적격자"라고 최수종을 설명했다.
"900km 넘게 오가며 만난 사람들, 마냥 감사했다"
▲10일 서울 여의도 KBS신관에서 열린 KBS <한국인의 밥상> 700회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임기순 피디, 배우 최수종, 전선애 작가.신나리
최수종 역시 "최불암 선생님의 뒷모습을 따라가려 한다. 처음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 바꿀 수는 없지만 <한국인의 밥상>이 최수종화 되도록 하나하나 익혀가는 과정을 겪어가며 촬영에 임할 것"이라며 "최불암 선생님이 아버지의 시선으로 사람들을 만나셨다면, 저는 아버지, 아들, 삼촌, 이웃집 형이나 오빠의 역할도 해내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날까지 최수종은 4번의 촬영을 하며 총 8곳의 지역을 방문했다. 그는 "하루 평균 이동 거리가 900km가 넘었다. 최불암 선생님께서는 이걸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촬영하며 맛본 음식들이 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음식이었다. 너무 신기하고, 감사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이 사람을 중심으로 음식 이야기를 펼치기에 다양한 사람이 등장하는데, 최수종은 촬영 도중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잠시 눈물을 보였다. 그는 "아흔이 넘은 어르신들이 '내가 죽기 전에 최수종 당신을 보니 행복하다'는 말이 참 감동이었다"며 "역사에 관심이 많다는 한 초등학생이 '강감찬 장군님(최수종이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연기한 인물) 사인해 주세요'라며 반겨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1회부터 <한국인의 밥상>을 책임진 전선애 작가 역시 프로그램이 평범한 '사람'을 담는다고 전했다. 그는 "아흔을 바라보는 어르신이 늙은 호박을 따 썰어서 말리면서 '처음엔 뻣뻣하지만 겨울 찬바람 맞으면 부드러워진다. 사람도 성숙되는 것'이라는 말을 한다"면서 "또 곧 방송에 나오겠지만, 구로공단에서 30~40년 일하던 미싱사들이 그때의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떡볶이를 만들어 먹는다. 그럴 때 이건 그냥 떡볶이가 아니라 그분들의 젊음 아니겠나. 우리 프로그램은 이런 이야기를 담는다"고 설명했다.
임기순 피디는 "설익은 과일은 맛이 쓰다고 하고, 잘 익은 건 단맛이 난다고 한다. 앞으로도 <한국인의 밥상>은 오래 기억에 남고, 찾게 되는 감칠맛 나는 프로그램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700회를 맞이하는 다짐을 전했다.
한편, 최수종이 처음 진행하는 <한국인의 밥상>은 이날 오후 7시 40분에 방송된다. 배우 강부자·이정현 그리고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 셰프가 특별 게스트로 출연해 '집들이 밥상'을 꾸린다. 제작진은 "이번 700회 특집 방송은 지금까지 '한국인의 밥상'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지난 14년간 프로그램을 이끌어온 최불암에게 바치는 진심 어린 헌사"라고 밝혔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최불암 잇는 최수종 "'한국인의 밥상' 부담, 고두심 선생님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