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애가 출연하는 연극 <헤다 가블러> 포스터
이영애가 출연하는 연극 <헤다 가블러> 포스터LG아트센터

한류 스타 이영애가 5월 7일 개막하는 연극 <헤다 가블러>로 32년 만에 무대에 선다. 1993년 <짜장면> 이후 줄곧 드라마를 통해 대중과 만나온 이영애의 연극 출연은 현재 연예계의 최대 화두 중 하나다. 이영애뿐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로 모습을 비추던 스타 배우들이 최근 속속 무대에 오르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도연이 <벚꽃동산>으로 27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섰고, 김선영은 현재 <그의 어머니>를 통해 7년 만에 관객을 만나고 있다. 이처럼 오랫동안 무대를 떠나있다 돌아온 사례도 있지만, 스타 배우가 연극에 처음 도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조승우가 데뷔 24년 만에 처음으로 <햄릿>을 통해 연극에 도전했고, 유승호와 샤이니 출신 최민호도 지난해 연극 무대에 데뷔했다.

더욱이 유승호와 최민호의 연극 출연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았다. <엔젤스 인 아메리카>로 첫 연극을 선보인 유승호는 다가오는 5월 10일 개막하는 <킬링시저>를 통해 다시 한 번 무대에 선다. 이순재와 함께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에 출연하며 연극에 데뷔한 최민호 역시 올해 <랑데부>로 자신의 두 번째 연극 커리어를 써나가고 있다.

4월 5일 개막한 <랑데부>에는 최민호뿐 아니라 박성웅, 박건형 등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대중을 만나오던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이처럼 매체에서 주로 활약해온 인지도 높은 배우들이 무대에 서는 건 이제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이는 공연예술이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다양성이 증대되는 긍정적 효과를 낳았다. 점점 규모가 커지는 공연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다만 최근 심화되고 있는 티켓 가격 상승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스타 캐스팅이 지목되고, 스타 배우로의 관객 쏠림 현상이 심화되는 등 한계 역시 뚜렷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스타 배우들의 무대 진출을 보다 심도 있게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무대에 오르는 스타 배우, 그들이 불러온 공연 열풍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에 출연한 이순재와 최민호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에 출연한 이순재와 최민호(주)파크컴퍼니

스타 배우의 무대 진출은 드라마나 영화 시장이 위축되며 가속화되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드라마, 영화 시장의 돌파구로 보였던 OTT 시장도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반면 공연 시장은 매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공연예술통합전상망(KOPIS) '2024년 총결산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공연 시장은 1조 4537억 원의 티켓 판매액을 기록하며 영화 매출액 약 1조 1945억 원을 앞질렀다. 영화나 드라마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현실적 제약이 스타 배우를 무대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스타 배우의 유입은 몸집을 불리고 있던 공연 시장의 성장도 부추겼다. KOPIS에 따르면, 2024년 연극 티켓 판매액은 전년 대비 16.5% 증가한 734억 원에 달했는데, 이를 견인한 티켓 판매액 상위 3개의 작품이 모두 스타 배우가 출연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판매액 1위 <맥베스>에는 황정민이 출연했고, 2위 <벚꽃동산>에는 전도연과 박해수가 출연했으며, 3위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는 유승호와 손호준, 고준희 등이 출연했다.

<맥베스>와 <벚꽃동산>의 공연 기간은 한 달,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약 두 달로 다른 연극에 비해 공연 기간이 짧았음에도 가장 좋은 실적을 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작사 입장에서도 흥행을 담보하는 스타 배우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연극 <맥베스>에 출연한 황정민
연극 <맥베스>에 출연한 황정민(주)샘컴퍼니

무대에 대한 배우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것 또한 스타 배우의 무대 도전을 가능케 했다. 한 공연 관계자는 "배우들이 관객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것에 짜릿한 감각을 느낀다고 한다. 연극을 했던 배우들은 이 감각을 잊지 못해 무대로 돌아오고, 이런 이야기를 듣는 동료 배우들도 자연스레 공연 장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시장 상황, 제작사와 배우의 선호에 따라 야기된 스타 배우의 무대 진출은 티켓 판매액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연계의 성장을 견인했다. 연극에서 보다 다양한 배우들의 연기를 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새로운 관객의 유입을 통해 한 발 더 대중화되는 긍정적 효과도 기대된다.

스타 배우의 유입으로 공연의 질이 더 높아진다는 의견도 있다. 또 다른 공연 관계자는 "얼굴을 아는 배우가 출연한다는 점에서 관객의 평가 선이 높아진다. 제작사 입장에서 긍정적인 의미로 부담을 느끼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더 신경 쓰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치솟는 티켓 가격, 연극계가 맞닥뜨린 문제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 출연한 유승호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 출연한 유승호(주)글림컴퍼니

명이 존재하는 만큼 암도 존재한다. 대관료와 스태프 인건비 상승 등을 이유로 오르던 티켓 가격이 스타 배우 캐스팅과 맞물리며 가파르게 상승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뮤지컬은 15만 원, 연극은 10만 원이 최고 등급 좌석 가격의 일련의 마지노선이었다. 뮤지컬은 이 마지노선이 깨진 지 오래이고, 연극 역시 10만 원 이상을 지불해야 하는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뮤지컬의 경우 지난해 조승우가 출연한 <오페라의 유령>과 현재 공연되고 있으며 김준수가 출연 중인 <알라딘>이 19만 원의 티켓 가격을 기록했다. 2023년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국내 연극 중 처음으로 티켓 가격 10만 원을 돌파했다. 당시 공연 관계자는 다른 연극에 비해 많은 배우가 출연한다는 것도 최고가를 11만원으로 책정한 이유 중 하나로 제시했다. 해당 공연에는 김성철, 김유정, 채수빈, 정소민 등 인기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된 바 있다.

이영애가 출연하는 <헤다 가블러>는 티켓 가격을 11만 원으로 책정했음에도, 공연을 한 달 남짓 남긴 시점에서 소위 말하는 '좋은 좌석'이 매진되었다. 이런 흐름으로 미루어볼 때, 티켓 가격은 높은 수준으로 굳어질 것이며 앞으로의 가격 상승 가능성 역시 높다. 한 연극 팬은 "회차와 좌석 수는 한정되어 있는데 스타 배우를 캐스팅했으니 티켓 가격을 올리는 건 이해한다"면서도 "그 부담을 온전히 관객이 지게 하는 게 아쉽다"고 토로했다.

이뿐 아니라 스타 배우로의 관객 쏠림 현상도 두드러진다. 한 극단 관계자는 "아무래도 스타 배우를 보려는 관객이 많다 보니, 기존 연극 배우와 함께 캐스팅된 경우 티켓 판매의 편차가 크게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때문에 연극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배우들의 입지가 줄어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계자는 이어 "극단은 프로덕션과 달리 자본을 많이 들여 인기 배우를 데려오기 쉽지 않다. 현장에서도 이 격차를 실감한다"고 토로했다. 스타 배우와 함께 화제가 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그간 한국 연극계를 이끌어온 극단은 현실적 문제에 부딪혀 존립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공연 연극 스타캐스팅 이영애 유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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