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그의 어머니> 공연사진
연극 <그의 어머니> 공연사진국립극단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배우 김선영이 7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 범죄자의 어머니를 그린 연극 <그의 어머니>를 통해서다. 청룡영화상, 대종상영화제, 백상예술대상 등 내로라하는 시상식에서 수상의 영예를 누린 배우의 연극 무대 복귀는 그 자체로 화제가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세 여성을 강간한 소년 '매튜 카포위츠'의 어머니 '브렌다 카포위츠'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연극이다. 김선영이 브렌다 카포위츠를 연기한다. 그가 연기하는 브렌다는 어느 순간부터 아들을 다소 낯설게 느끼고, 집 밖에는 사람들이 몰려 서있다. 문을 열기만 하면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연극은 더 이상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없는 브렌다와 그 가족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브렌다를 연기하는 김선영을 필두로 성범죄를 저지른 첫째 아들 매튜 역에 최호재, 가족에게 들이닥친 낯선 삶을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하는 둘째 아들 제이슨 역에 최자운이 캐스팅됐다. 여기에 더해 홍선우, 김용준, 이다혜, 김시영이 연극에 참여한다. 공연은 4월 19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연극 <그의 어머니> 공연사진
연극 <그의 어머니> 공연사진국립극단

관계 회복의 서사

<그의 어머니>가 특이한 점은 사건의 중심부에 있는 인물, 즉 가해자나 피해자의 이야기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심에서 다소 벗어나있는 가해자의 어머니, 그리고 가해자의 동생이 가해자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건은 간단하게 언급될 뿐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피해자는 연극에 등장하지 않는다.

브렌다가 고용한 변호사, 브렌다와 이혼한 남편이 어쩌면 아들이자 가해자인 매튜보다 더 눈에 들어올 수 있다. 그만큼 연극은 중심부에서 살짝 벗어난, 어쩌면 많이 벗어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조명한다. 이때 눈에 들어오는 것이 '관계성'이다.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 변호사와 그를 고용한 사람 간의 관계, 부부 관계 등 다양한 관계가 연극에 등장한다. 이 모든 관계에는 일련의 의무와 기대가 잇따른다. 어머니는 이래야 하고, 아들은 이래야 한다는 식이다. 어머니는 자신이 생각하는 어머니의 의무를 따르면서 자식에게도 자식의 의무를 기대한다. 다만 어머니의 기대와 자식 스스로 생각하는 자식의 의무는 다를 수 있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모성은 어머니 됨의 중요한 요소이지만, 모성이 과할 경우 자녀와의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다. 그뿐 아니라 과한 모성은 때로 비도덕적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그의 어머니>에서 브렌다가 그렇다. 브렌다는 자신의 아들을 소년 법정에 세우고, 조금이라도 형량을 줄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자신이 구상한 그림에 아들이 순순히 따르지 않자 브렌다는 점점 이성을 잃고, 관계는 틀어진다.

특정 시점부터는 브렌다와 매튜의 갈등이 고조되고, 관계는 서서히 무너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게 무너지면 단 한 가지가 남는데, 바로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다. 모든 허울이 사라진 모자 관계에서 둘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다. 바로 이 관점에서 <그의 어머니>를 관계 회복의 서사로 이해할 수 있다.

 연극 <그의 어머니> 공연사진
연극 <그의 어머니> 공연사진국립극단

연극을 보는 또 다른 관점

<그의 어머니>에는 여러 상징과 곱씹어볼 주제가 많이 등장한다. 브렌다의 가족은 캐나다에 살고 있는 유대인 이민자다. 이들은 유대의 전통을 따르는데,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하누카'다. 유대교의 명절인 하누카는 기독교의 크리스마스처럼 축일이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해피 하누카"라는 대사를 통해 유대인이 하누카를 얼마나 기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바로 이 하누카가 연극의 시간적 배경이다. 즐기며 기념해야 하는 축일이지만, 브렌다 가족에게는 어둠이 짙게 깔려있다. 아들은 재판을 받아야 하고, 세상 사람들은 브렌다 가족에게 적대적이다. 막내 제이슨은 학교를 오고 갈 때 플래시 세례를 받아내야 한다. 가장 기뻐야 할 날에 가장 암울한 사건이 벌어지는 아이러니는 브렌다 가족의 이야기를 더 극적으로 구성한다.

언론이 사건을 조명하는 방식과 사람들이 이를 대하는 태도도 연극이 주안점을 두고 그려내는 소재다. 언론이 관심을 두는 건 브렌다가 막내 아들과 우유를 사러 가는 것, 브렌다 가족이 벌이는 파티 등이다. 언론은 브렌다가 범죄자 아들의 생일 파티를 해주었다고 보도하는데, 그 파티는 사실 하누카를 기념하는 종교 의식이었을 뿐이다.

이런 비본질적 요소들에 사람들은 분노와 비난을 쏟아내지만, 곧 다른 뉴스가 진행되면서 브렌다 가족을 향한 관심은 사그라든다. 사람들에게 이 사건은 가십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브렌다 가족에게도 필요 이상의 비극이지만, 피해자에게도 사건의 본질이 호도되고 자신의 고통이 묻히는 결과를 낳는다.

연극은 이 모든 사건들을 치밀하게 쌓아 올리면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인물들의 관계를 추적한다. 이때 배우들의 실감 나는 감정 연기는 작품의 설득력과 완성도를 높이는데, 브렌다에 분하는 김선영의 연기는 단연 압권이다.

 연극 <그의 어머니> 공연사진
연극 <그의 어머니> 공연사진국립극단
공연 연극 그의어머니 국립극단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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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사회를 이야기하겠습니다. anjihoon_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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