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무한도전'
MBC
2005년 어느 토요일 오후, 평소와 다름없이 사무실에 비치된 여러 대의 TV를 켜 놓고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스포츠신문사 편집국에서 일하던 시절이었다. 프로야구 중계를 중심으로 여러 채널의 방송을 지켜보는 게 일과 중 하나였다. 요즘처럼 실시간 속보 혹은 방송 리뷰 기사가 넘쳐나던 시기는 아니었던 터라 어느 정도 여유 속에 각종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었는데 그 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었다.
유재석을 중심으로 여러 명의 연예인이 촌스러운 '추리닝' 혹은 쫄쫄이 의상을 입고 황당한 대결과 도전을 이어가는 이 프로그램은 다름 아닌 <무모한 도전>이었다. 함께 당직을 보던 옆 부서 부장님은 "뭐 하러 저런 거 보냐?"라며 핀잔했다. 그 무렵 기성세대의 눈에는 마치 '광대 짓'처럼 보일만 했던 예능인들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초창기 무도는 그 덕분에 무료했던 주말 저녁 시간대 실소에 가까운 웃음을 자연스럽게 쏟아내게끔 했다.
특히 당시 톱스타였던 차승원의 '연탄 옮겨 쌓기 대결'은 지금 다시 봐도 최고의 '웃음 버튼'이다. 하지만 <무모한 도전>은 시청률 측면에선 연일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렇다 보니 일선 기자들 사이에서도 "저러면 오래 못 갈 텐데..."하는 반응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런데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승자라고 했던가. 마치 좀비처럼 폐지의 위기 속에서도 극적으로 살아남았던 무도는 '퀴즈의 달인' 이라는 부제 속에 스튜디오 예능 형식으로 변신했다. 특히 '예능 대부' 이경규와 박명수가 벌인 일명 '비난 배틀' 등 조금씩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나 역시 무도의 마력에 푹 빠졌다.
뭘 해도 웃겼던 그 시절... 우리 모두의 '밥친구'
▲MBC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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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들의 끈끈한 우정을 다지는 계기를 마련했던 '뉴질랜드 아이스 원정대' 편(2006년 8~9월 방영) 이후 무도의 앞길은 마치 화려한 레드카펫을 깔아놓은 것마냥 순탄하게 흘러갔다. 뭘 해도 무도가 하면 웃음 빵빵 터지는 최전성기가 도래했다. 음악 예능이든 상황극 콩트든 모두 재밌었다. 심지어 장기 프로젝트 미션도 하는 등 마치 뭐든지 하기만 하면 다 이뤄지는 '미다스의 손' 같은 프로그램이 됐다.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레이스에 임했던 봅슬레이와 프로레슬링, "우리 진짜 잘 탔어"를 연신 외치면서 눈물 펑펑 쏟아냈던 조정 특집 등 일련의 기획은 웃음 못잖은 벅찬 감동을 안겼다. '무한도전'이라는 이름대로 쉽지 않은 도전의 연속은 그래서 더욱 이 프로그램에 대한 진한 감정 이입을 끌어냈다.
오피스·상황극의 절정을 보여줬던 '무한상사', 시민들의 올바른 정치 참여를 유도한 '선거 특집' , 다양한 이름 내걸면서 음악 시장까지 뒤흔들었던 각종 '가요제 특집' 등 예능 프로그램이 우리의 삶에서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일깨워준 것도 그 무렵이었다. 지금처럼 OTT를 통한 다시보기도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 우리들의 저녁 시간 본방 사수하며 지켜보던 우리에게 무도야말로 진정한 '밥친구' 예능의 시발점이었다.
그때 더 뜨겁게 응원했더라면... 20주년 향한 두 가지 감정
▲MBC '무한도전'MBC
하지만 '화무십일홍'(열흘 붉은 꽃은 없다)이라고 했던가. 영원할 것 같았던 무도의 영광도 몇몇 멤버들의 일탈, 건강 악화 등에 따른 연이은 하차를 맞이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화려한 꽃을 피웠던 시절의 재미와 웃음은 시들어갔고, 결국 2018년 아쉬움 속에 막을 내렸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25년, 방영 20주년이라는 남다른 의미의 시간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몇몇 멤버들처럼 나는 아직도 최종회를 시청하지 못했다. 분명 프로그램은 끝나지만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속 한편의 진한 아쉬움은 이번 20주년을 더욱 묘한 감정으로 바라보게 한다.
때마침 최근 신곡을 발표하고 가수로서 홍보 활동을 진행 중인 무도 전 멤버 정형돈은 8일 옛 동료 하하가 진행하는 KBS Cool FM <하하의 슈퍼 라디오>에 출연해 "(중도에 하차해서) 늘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라며 짧지만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제는 각자의 영역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멤버를 화면 밖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우리들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향해 더 뜨거운 응원을 보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불현듯 방송국 파업으로 인해 수개월에 걸친 결방과 그에 따른 끝 모를 기다림(2012년)이 있던 13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언제 방송이 재개될지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무도 구성원들을 향해 아낌없는 성원을 보낼 수 있었던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시절 무도는 시청자들에겐 친구이자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2025년 4월, 잠시 떨어져 있던 벗과의 조우는 그래서 더욱 애잔하게 느껴진다. 반가우면서도 아쉬움이 공존한다. 무도 20주년을 맞이하니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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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무도' 최종회 보지 않은 사람, 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