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악연> 스틸 컷
넷플릭스
몰아보기를 강추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독특한 전개 방식에 있다. <악연>이 '비선형적 서사 구조'를 취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을 올바로 따라가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시청자로 하여금 이야기 퍼즐을 맞추게 유도한다.
물론, 이러한 전개 방식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른 드라마 작품들. 특히, 최근에 인기를 끈 드라마도 비슷한 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단조롭고 뻔한 전개에서 벗어나 시청자로 하여금 능동적으로 사고하게 만들어주는 장점이 있어 몰입감을 한층 더 올려 준다.
그런데 '악연'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한두 명의 인물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여러 캐릭터의 시점을 교차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다층적인 관점으로 인해 시청자들은 인물 한 명 한 명의 서사를 더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대신 제법 복잡한 서사 구조로 인해 극 초반부는 어쩔 수 없이 불친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2화를 보고 나니, 아예 다른 내용의 드라마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여서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1화와 2화는 등장인물과 내용 모두 다른 별개의 스토리를 담아낸다.
이를테면 1화에 나오는 의사 이주연(신민아)은 2화에 아예 등장하지 않았다. 반대로 1화에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인물인 한의사 한상훈(이광수)이 2화에 또 하나의 주연급으로 나온다. 옴니버스 형식의 드라마인가 착각이 들 때쯤, 3화 마지막 장면에서 신민아가 다시 나타나면서 나름의 반전을 끌어낸다.
4화부터가 본격적인 떡밥 회수의 시작이다. 별개의 스토리인가 싶었던 각각의 끔찍한 범죄들이 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마침내 최종 6화에 이르게 되면, 다시 처음의 1화와 조우하면서 사실은 사건들 모두가 하나의 원형을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악연을 끊어내는 방법
▲넷플릭스 <악연> 스틸 컷넷플릭스
우리는 종종 엄청나게 악한 범죄자임에도 약한 법으로 인해 오히려 편안하게 잘 먹고 잘사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반면 현재에 사는 듯하지만, 사실은 과거 끔찍했던 그 시간대를 살아가는 피해자들도 보게 된다. 피해자 입장에서 이 둘의 관계는 악연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강력 범죄의 피해자들은 높은 확률로 트라우마 때문에 고통받는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사건도, 사건의 피해자도 잊어버릴 때가 많다. 그러는 동안 피해자들은 악연의 굴레 안에 갇혀 버리고 만다.
피해자들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이유는 악한 범죄 대비 약한 처벌에 있다. 가해자들이 받는 벌이 충분하지 못하면 그만큼 피해자는 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드라마는 바로 이 부분을 꼬집고 있었다. 이는 요즘 심심치 않게 논란이 되는 사적 제재와도 연결된다.
이 내용을 마지막 회차인 6화에서 다뤄낸다. 주연을 괴롭혔던 악연은 결국 공권력의 도움이 아닌 개인에 의해 일단락된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복수가 피해자에게 딱히 영향을 끼치지 않은 점이다.
그렇다면 피해자인 지옥과 같은 트라우마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는가. 드라마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최종화인 6화에서 친절하게 보여 준다.
이 선택은 트라우마의 굴레가 타인이 탈출시켜 줄 수 있다는 게 아니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꽤 복잡하고 입체적으로 보였던 전개에 비해 뻔하고 단순한 메시지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맞다는 생각도 든다.
복잡한 악연을 끝낼 방법은 과거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는 것뿐이다. 드라마는 주연이 스스로 탈출하기까지 얼마나 아파하는지도 충분히 보여준다. 스스로 벗어나는 방법밖에 없다는 사실을 전함과 동시에 그 길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도 함께 알려준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이 지점이다. 드라마 속 피해자가 자신의 결단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했다고 해서 절대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실제 일상에서 피해자들이 과거가 아닌 현재를 다시 살아가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그 어려운 일을 조금이라도 쉽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가해자들은 더 엄히 처벌하고, 피해자들은 충분히 치유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혹시라도 주변에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범죄 피해자가 있다면 최대한 조심스럽고 신중한 태도를 지향하자. 당사자 스스로가 굴레를 벗어날 수 있도록 충분히 기다려주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언젠가 드라마 속 주연처럼 스스로 결심하고 새롭게 발걸음을 뗄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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