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이 단순하고도 담백한 한 문장을 듣기 위해 대한민국 국민들은 12.3 내란 이후 122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안 접수 이후 111일, 탄핵 심판 변론 종결 후 38일을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수 많은 루머와 억측이 난무하면서 국민들이 혼란에 빠지기도 했지만 8명의 헌법 재판관들은 '전원일치 파면'으로 의견을 모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임기가 시작된 지 1059일 만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윤석열의 12.3 내란은 지난 1979년 10.26사건 직후 선포됐던 계엄 이후 45년 만에 선포된 비상 계엄이었다. 1979년 당시 비상 계엄은 12.12 군사 반란과 광주 민주화 운동을 거쳐 제5공화국 탄생으로 연결된 '성공한 쿠데타'였다. 그리고 그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가 제작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대부분의 캐릭터가 실명으로 등장했던 MBC의 41부작 정치 드라마 <제5공화국>이었다(2005년 방송).

 드라마 <제5공화국>은 시청률을 뛰어넘어 방영 기간 내내 많은 논란과 화제를 낳았다.
드라마 <제5공화국>은 시청률을 뛰어넘어 방영 기간 내내 많은 논란과 화제를 낳았다.<제5공화국> 홈페이지

캐스팅 단계부터 난항, 전두환 역으로 출연한 배우 이덕화

지금은 어느덧 70대가 되면서 '낚시 좋아하는 노신사' 이미지가 강하지만 1970~90년대 이덕화 배우는 뛰어난 연기와 스타성,예능감까지 겸비한 최고의 스타였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재학시절이던 1972년 동양방송 공채 13기 탤런트에 합격한 이덕화 배우는 데뷔 초 야성적인 이미지의 하이틴 스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70년대 후반 <토요일 토요일 밤에>의 남자 MC로 발탁된 이덕화 배우는 1981년 < 쇼2000 >에 이어 1985년 프로그램명이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로 바뀐 후에도 1991년까지 MC 자리를 맡았다. 당시 이덕화 배우는 < 쇼2000 >과 <토토즐>을 진행하면서 정애리와 김성희, 강문영, 김청,조용원, 김희애 등 많은 여성 스타들과 호흡을 맞췄고 시그니처 멘트인 "부탁해요~"는 당대 최고의 유행어가 됐다.

이덕화 배우는 2000년대에 접어들어 중년의 나이가 됐지만 <여인천하>와 <무인시대> 등 사극을 중심으로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며 시청자들에게 꾸준히 사랑 받는 배우로 군림했다.

그러던 2005년, 이덕화 배우는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고 전두환 전 대통령을 연기했다. 드라마는 '제5공화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캐스팅 단계부터 난항을 겪었지만 이덕화 배우는 고민 끝에 전두환 전 대통령 역에 도전했다. 그리고 이덕화 배우는 베테랑 연기자 답게 뛰어난 몰입을 보여주면서 결코 쉽지 않은 캐릭터를 잘 소화했다.

베테랑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 돋보여

 전두환 전 대통령 역의 이덕화 배우는 개그맨 최병서에게 비밀과외(?)를 받았을 정도로 캐릭터 연구에 몰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역의 이덕화 배우는 개그맨 최병서에게 비밀과외(?)를 받았을 정도로 캐릭터 연구에 몰두했다.MBC 화면 캡처

사실 MBC에서는 1981년 <제1공화국>을 시작으로 1989년 <제2공화국>, 1993년 <제3공화국>, 1995년 <제4공화국>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다룬 '공화국 시리즈'를 꾸준히 제작해왔다 하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제5공화국'의 주요 인물 상당수가 생존해 있었고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진 시청자들도 있었기 때문에 <제5공화국> 제작을 강행하는 데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MBC에서는 <제5공화국> 제작에 착수했고 쉽지 않은 캐스팅에 돌입했다. 물론 실존 인물과 매우 닮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역의 이창환 배우, 고 최규하 전 대통령 역의 김성겸 배우 같은 캐스팅도 있었지만 전두환 역의 이덕화 배우나 고 노태우 전 대통령 역의 서인석 배우 등은 외모적 공통점이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제5공화국>은 베테랑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로 외모의 부족한 싱크로율을 극복했다.

사실 <제5공화국>은 동시간대에 맞붙은 KBS의 대하 사극 <불멸의 이순신>과 경쟁하면서 최고 시청률 17.9%로 썩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진 못했다(닐슨코리아 시청률 기준). 하지만 10.26 사건을 시작으로 12.12 군사 쿠데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언론 통폐합, 6월 항쟁 등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 벌어졌던 굵직했던 사건들을 재조명하면서 방영 기간 내내 많은 논란과 화제를 함께 불러 일으켰다.

<제5공화국>은 1979년 10.26 사건을 시작으로 구속 수감됐던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1997년 특별 사면될 때까지 20년에 가까운 타임 라인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전두환 보안 사령관이 대통령이 되는 과정이 25회에 걸쳐 자세히 소개되는 반면에 정작 제5공화국 출범 후에 있었던 사건들은 비교적 짧게 다뤄졌다. 특히 마지막회에서는 전두환 퇴임부터 사면까지 10년의 세월을 단 한 회로 압축했다.

대부분의 캐릭터, 실존 인물 이름으로 등장

 김기현 성우가 연기했던 고 장태완 수경 사령관은 18년 후 영화 <서울의 봄>에서 이태신 장군으로 재탄생했다.
김기현 성우가 연기했던 고 장태완 수경 사령관은 18년 후 영화 <서울의 봄>에서 이태신 장군으로 재탄생했다.MBC 화면 캡처

<제5공화국>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 만큼 캐스팅이 어려웠던 인물이 서인석 배우가 연기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서인석 배우는 전두환과 12.12 쿠데타를 함께 한 9사단장에서 내무부 장관, 민정당 총재를 거쳐 제13대 대통령이 되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인생을 잘 그려냈다. 특히 마지막회에서 대통령석에 앉아 기쁨을 만끽하다가 참모들이 들어오자 바로 표정이 바뀌는 연기는 단연 일품이었다.

1990년 <우리들의 청춘> 시즌1에 출연해 최수종을 위협하는 청춘 스타로 떠올랐던 홍학표는 <제5공화국>에서 전두환의 최측근 장세동 전 대통령 경호실장 및 안기부장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지금까지 <제4공화국>과 <삼김시대>, <1987>, <서울의 봄> 등 여러 작품에서 장세동 또는 그를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홍학표 만큼 장세동을 실감나게 연기했던 배우는 찾기 힘들다.

비록 출연 분량은 짧았지만 초반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캐릭터는 단연 김기현 성우가 연기했던 고 장태완 수경사령관이었다. 신군부에 맞선 장태완 사령관은 방영 당시 '장포스'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야, 이 반란군 놈의 새끼야"라는 대사가 밈으로 유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드라마 <제5공화국>의 조연이었던 장태완 사령관은 그가 고인이 된 후 영화 <서울의 봄>에서 주인공 이태신 장군(정우성 분)으로 재탄생했다.

<제5공화국>에서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실존 인물의 이름으로 등장했다. 참여 정부의 보건복지부장관이자 현존하는 민주 진영 최고의 논객으로 꼽히는 유시민 작가의 대학생 시절은 1990년대 후반 하이틴 스타였던 김수근이 연기했다. 2019년과 2022년에 걸쳐 SBS 연기대상을 수상했던 김남길도 이한이라는 예명으로 <제5공화국>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역으로 짧게 등장했다.
드라마보는아재 제5공화국 비상계엄 이덕화 서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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