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프라이드> 공연사진
연극 <프라이드> 공연사진연극열전

성 소수자를 깊이 있게 다룬 연극 <프라이드>가 6년 만에 돌아왔다. 2008년 영국에서 처음 공개된 <프라이드>는 영국 비평가 협회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2014년 한국에 소개됐다. 올해로 벌써 다섯 번째 시즌을 맞이한 <프라이드>는 국내 대표 연극 제작사 연극열전이 2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연극열전10' 프로젝트의 다섯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자부심을 뜻하는 영단어 'pride(프라이드)'를 제목으로 사용한 <프라이드>는 1958년과 2008년 두 시기를 교차하며 보여준다는 특징을 갖는다. 두 시기에 걸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같은 이름을 사용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는 두 개의 이야기를 번갈아 보여준다.

동성애자 필립과 올리버, 이들을 바라보는 이성애자 실비아가 작품의 주인공이다. 실비아는 1958년엔 필립의 아내로 등장하고, 2008년엔 필립과 올리버의 친구로 등장한다. 세 인물 외에도 '남자'라는 캐릭터가 추가로 등장하는데, 한 배우가 여러 역을 연기하는 일종의 멀티 캐릭터다.

임주환·이형훈·김경남이 필립을 연기하고, 권수현·김바다·김이준이 올리버를 연기한다. 실비아 역에는 김수연·홍금비가 캐스팅됐고, 남자 역은 박성현과 이강우가 번갈아가며 맡는다. 공연은 6월 22일가지 예스24아트원 2관에서 진행된다.

1958년과 2008년, 두 시기가 갖는 상징성

<프라이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시기를 1958년과 2008년으로 구분했다는 점이다. 두 시기는 동성애를 대하는 태도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1958년에는 동성애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정신 의학의 영역에서 다뤘다. 이전 시기에 동성애자들을 대량 학살한 나치의 만행이 대사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물리적 폭력을 가했던 시기에 비해서는 나아졌으나 여전히 동성애를 향한 시선은 곱지 않았던 시기다.

동성애를 비정상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기를 이해하는 데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설명은 큰 도움이 된다. 푸코는 물리적 폭력은 사라졌지만, 과학적 지식에 기반한 새로운 유형의 폭력이 등장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성에 기반을 둔 지식에 따라 비정상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광인으로 여겨지고, 이들은 곧 정신병원으로 향했다.

정신병원에서는 의사의 도덕적 훈육이 이루어지고, 환자는 자신이 비정상적이고 비이성적 존재라는 것을 서서히 인정해간다. 이때 환자는 결여 의식과 죄 의식을 느끼게 되고, 이것이 곧 새로운 유형의 폭력이라는 것이다. 1958년의 동성애자들은 바로 이 폭력의 시대를 살아간 셈이다.

따라서 1958년에 필립과 올리버의 사랑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시기에 동성애자임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이 사회 내에서 점유한 위치, 지금까지 얻은 것과 앞으로 얻을 가능성이 있는 것을 모두 포기할 각오를 해야 한다. 이에 필립은 올리버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확인하지만, 애써 부정한다.

올리버는 그런 필립을 설득하지만, 필립은 침묵을 요청할 뿐이다. 이후 올리버와의 관계를 끊은 필립은 스스로 정신병원을 찾아간다. 의사는 필립을 "환자"라고 칭하고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치부한다.

<프라이드>가 제시하는 두 번째 시기인 2008년에는 동성애가 더 이상 병원에서 다뤄지지 않는다. 동성애를 드러내는 것이 가능해진 시기이고,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며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참여한다. 이 시기의 필립과 올리버는 공개 연애를 한다.

1958년에 비해 분명 나아지긴 했다. 동성애자를 향한 혐오의 시선은 많이 사라졌으나, "다르다"는 말로 여전히 동성애자를 타자화하고 있다. 일종의 구분선을 그어 놓는데, 동성애자들이 이 선을 넘지 않을 때만 존재를 인정한다. 이런 점에서 2008년은 진보한 동시에 아직 과제가 남은 시기라고 볼 수 있다.

'프라이드'가 제안하는 연대의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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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두 시기에 벌어지는 필립과 올리버의 이야기는 당연히 다른 성격을 띤다. 1958년의 필립과 올리버는 서로 연결되기 위해 고민하고, 연결을 허락하지 않는 시대에 좌절한다. 반면 2008년에는 이미 필립과 올리버가 연결되어 있고, 연결됨으로써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분투한다. 이때 프라이드 퍼레이드는 갈등 해결의 단초를 제공한다.

시대의 억압과 구조화된 차별이 인물들을 제약하지만, 이에 맞서 각자 나름의 고민과 선택을 한다는 점에서 <프라이드>는 입체적이다. 두 시기에 나눠 전개되는 서로 다른 이야기임에도 연결되는 고리들이 있고, 두 이야기를 관통하는 상징적인 표현을 음미하는 맛도 있는 작품이다.

성소수자는 물론 약자이지만, 작품은 약자를 항상 약자의 위치에 두지 않는다. 2008년의 올리버는 필립과 결별한 후 다른 남자를 불러 육체적 관계를 갖고자 한다. 하지만 이는 사랑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올리버가 상대에게 돈을 지불해 이루어지는 성매매다. 올리버보다 더 낮은 지위에 있는 약자이지만, 그를 향한 올리버의 존중은 한참 부족하다.

한편, 1958년에는 억압에 맞서지 않고 침묵할 것을 요청했던 필립과 2008년의 필립은 대조적이다. 2008년의 필립은 침묵을 강요 당하는 사람들의 실상을 알리는 삶을 산다. 물리적으로 먼 곳, 자신과 상관 없어 보이는 것에 관심을 둘 것을 요청한다.

올리버는 이런 필립을 통해 차츰 변화하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지향해야 할 연대의 모델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작품은 비단 성소수자뿐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스스로를 성찰할 것을 요구하는 작품으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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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사회를 이야기하겠습니다. anjihoon_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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