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비> 스틸컷
㈜쇼박스
누구나 '개저씨'(개와 아저씨의 합성어)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책 <개저씨 심리학>에 따르면 자격 요건이 꽤 까다롭다. 나이는 40·50대에 청년 세대와 갈등을 겪어야 하고 연관 키워드로 성희롱, 성추행, 회식 등이 뒤따른다. 한 마디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헛소리를 일삼아야 한다는 건데 이런 사람을 살면서 몇 명이나 보겠는가.
그러나 이 영화에는 '개저씨'가 종류별로 나온다. <로비> 감독 하정우는 "빌런 아닌 빌런을 만들기 위해 내가 만난 '개저씨'들을 참고해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국책 사업을 따내겠다고 골프 로비에 나선 아저씨들, 그들이 고른 승부수는 하필 '여자'였다. 어린 여성 골퍼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남성 캐릭터들의 향연에 웃음은 사라지고 씁쓸함만 남았다. 여성 배우의 일그러진 표정이 너무나 현실의 것을 닮은 탓일까.
이게 피해 고발 다큐야, 코미디야
스타트업 대표 '창욱'(하정우)은 경쟁 회사 대표의 모략에 번번이 사업 기회와 기술을 빼앗긴다. 정직하게 경쟁하려 해도 요즘 사업은 모두 '로비발'이라 쉽지 않다. 골프 라운딩 한 번에 굵직한 건이 오간다고 하니 창욱은 마지못해 골프를 연습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회심의 미끼를 준비한다.
바로 여성 골퍼 '세빈'(강해림). 국책 사업을 결정하는 국토미래산업부 실장 '우현(김의성)'이 그의 열렬한 팬이기 때문이다. 창욱은 세빈에게 접근해 대뜸 "스폰을 하고 싶다"는 말로 오해를 샀다가 정정한다. 스포츠 선수로서 후원해 줄 테니 우현과의 골프 로비에 동행해달라는 것이다. 남몰래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빈은 창욱의 제안을 승낙한다.
그렇게 세빈은 스폰서십 대표 창욱, 과한 애정을 표하는 우현, 창욱의 뇌물을 받고 동석한 기자 '용훈'(이동휘)과 함께 골프에 나선다. 초반에는 평범한 회동처럼 보였으나 분위기는 당혹스럽게 흘러간다.
부담스럽게 말을 걸던 우현은 세빈에게 "탱고를 가르쳐주겠다"고 한다. 거부감을 표하는 세빈과 달리 다른 남성들은 그의 수긍을 종용하며 "인생에서 중요한 기회다, 행동 처신을 잘하라"고 한다. 그들은 곧 완연한 '개저씨'가 돼 집단으로 괴롭히기 시작한다.
우현이 내기 게임을 제안하면, 창욱은 몰래 공을 옮기고 용훈은 심리적으로 압박해 승부를 조작하는 식이다. 결국 세빈은 계속해서 패배하고, 승리한 우현은 "내가 남자로 보이냐", "내가 매력이 있냐"고 묻더니 급기야 "특별한 관계가 되고 싶다, 내 위치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말하기에 이른다.
카메라는 세빈의 표정을 재차 클로즈업하며 불쾌감에서 공포로 변하는 감정선을 보여준다. 또한 말수가 줄어들고 몸이 뻣뻣하게 굳는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노골적인 묘사는 관객에게 웃음을 유발하기보단 한 여성이 겪는 고통에 함께 압도당하게 한다. 특히 세빈의 경험처럼 위계질서를 기반으로 벌어지는 성희롱은 현실에서도 심각한 범죄인데 그만큼 신중하게 피해자성을 재현했는지 의문스럽다.
아울러 영화가 남성 캐릭터들의 악행을 통렬히 풍자했다고 보기에는 그들을 단순 묘사한 것에 그쳐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적 충실성도 아쉽다. 현실 속 불건전한 로비 문화를 작품으로 옮긴 <로비>, 적어도 '개저씨' 사실 고증에는 완벽히 성공했다.
여성 캐릭터들은 많은데... 활용도가 아쉽다
▲영화 <로비> 스틸컷
㈜쇼박스
<로비>에는 여러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색다른 모습을 볼 때쯤 서사가 끊긴다. '향숙'(강말금)은 유명 국회의원으로 거친 사투리와 타인을 휘어잡는 힘이 있는 인물이다. 이성적인 판단보다 말초 신경에 쫓기는 그가 극 흐름을 전개해도 신선할 텐데 영화는 향숙이 머리가 나빠서 남편 우현이 비선 실세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에 향숙보다 우현이 중점적으로 다뤄지며 작품 전반에서도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 외에 창욱과 함께 일하는 '김 이사'(곽선영)는 그저 주인공을 돕는 일만 수행하고 캐릭터 자체로서 개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척점에 선 '다미'(차주영) 역시 별다른 역할 없이 다른 남성 캐릭터와 잠시 문란하게 어울리다가 퇴장한다. 그나마 중추적인 세빈조차 창욱에게 로비의 잔혹한 현실을 보여주고, 다시 그가 공정한 경쟁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각성제처럼 쓰인다.
17명의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사람과 사람이 부딪혀 내는 소리를 줄거리 삼은 영화 <로비>. 자고로 권력이란 모이면 썩기 마련인데 그들이 대놓고 잔칫상을 펼치는 '로비'는 오죽할까. 서투른 블랙 코미디라도 남성 중심 사회의 폐부를 찌르려 시도했다는 점에서 '나이스 온'을 외친다.
▲영화 <로비> 메인 포스터㈜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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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저씨' 고증 제대로네... 감독 하정우의 신작, 제 점수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