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랑켄슈타인 아버지> 스틸컷
스튜디오 에이드
04.
"챙겨 준다면서 그렇게 자라도록 방치한 거 아닙니까?"
한편, 동석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몫까지 아들을 누구보다 소중히 키워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이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에 마음이 묶여 있다. 영재가 중학교 1학년 때 정자 기증 서류를 보고 난 뒤로는 더 심해졌다. 스스로 항변하기로는 장거리 트럭 운전을 나가 있는 동안에도 하루 몇 번씩 연락하고 챙겼다고 하지만, 정작 그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알지 못한다. 정말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학교에서는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일들에 대해서도 그렇다. 학교에 한 번만 나가보면 다 알 수 있는데도 말이다.
아무런 상의도 없이 사 온 구두를 영재의 발에 억지로 신기는 장면에 그가 가진 모든 변질된 감정이 그려진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영재가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서류를 발견하기 전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주장하는 장면이다. 이번에도 일방적인 태도다. 영재가 자신이 태어나는 방식에 아무런 관여를 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지금과 그때는 다르다. 치성이 생물학적으로 연결된 존재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외면하려고 했다면, 동석은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자유가 있는 아들의 의지와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나 다름없다.
05.
치성과 동석, 두 아버지에게 있어 아들 영재는 단순히 아들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이제 알 수 있다. 치성에게는 과거로부터 시작된 규칙과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동석에게는 과거의 감추고 싶은 사실로부터 시작된 거짓과 왜곡을 수정하고 다시 나아갈 기회를 얻을 수 있게 해준다. 앞서 생략했지만, 그 과정에서는 또 다른 실수와 갈등이 반복된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게 되는 이 대목은, 영화가 완벽한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아도 받아들이고, 서툴러도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아버지가 되는 과정'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영화의 제목이 '프랑켄슈타인 아버지'인 데는 명확한 복선이 깔려 있다. 같은 명칭을 사용하는 원작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 빅터 프랑켄슈타인 역시 자신의 창조물과 다시 만나게 되는 과정 속에서 책임을 묻는 상황에 처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창조자와 창조물'의 관계를 재해석하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작게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 더 나아가자면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생명의 총체에 대한 도의적 책임까지도 연결된다.
▲영화 <프랑켄슈타인 아버지> 스틸컷스튜디오 에이드
06.
"말로만 떠난다고 하면서, 사실은 못 떠나는 거죠?"
영화의 마지막에서 치성은 더 완벽한 때를 기다리며 떠나지 못했던 항해를 시작한다. 이 장면은 단순히 자신이 상상하던 꿈을 이루는 장면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의 처음처럼도 여겨진다. 과거의 자신을 단번에 완벽하게 지워내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안고 나아가는 모습이다. 현실적으로도 한순간에 모두 변하는 일은 거짓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치성 또한 '좋은 아버지' 혹은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게 이제는 과거에서 벗어나 받아들이고 변화할 준비가 되었다는 점 아닐까.
치성과 영재, 그리고 동석 세 사람의 먼 미래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본다. 아마도 영재가 성인이 되고 난 이후의 장면이 아닐까. 물론 영화에서는 주어지지 않는 신이다. 나는 세 사람이 나란히 둘러앉아 함께 소주 한 잔을 나누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태어나지 않았을 때, 아직 학생이던 때에는 어른들의 사정과 결정에 휘둘렸지만, 이제는 스스로 아버지들과 마주 앉아 대등한 관계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의미로 말이다. 그런 시간 동안 두 아버지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해내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처럼 그때도, 치성의 얼굴에는 무표정하지만 관객들만 알아차릴 수 있는 작은 미소가 떠오를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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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