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기 미래, 인류의 생활권은 지구를 벗어나 달과 화성 권역까지 확대되어 있다. 사회 각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로봇이 인간과 뒤섞여 활동하는 중이기도 하다. 화성의 사립 탐정 '알린 루비'와 동료 '카를로스 리베라'는 대기업 대표 '크리스 로이데커'에게 의뢰를 받아 회사 통신망에 침범하는 해커를 잡으러 지구로 향한다. 치열한 추격 끝에 해커를 체포한 후, 지구와 화성을 연결하는 거대 왕복선 '마스 익스프레스(화성특급)'로 귀환한다.

화성의 수도 녹티스에 도착해 해커를 경찰에 넘기지만, 기묘하게도 체포영장이 전산망에서 사라진 뒤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허탈한 기분이 된 알린은 로이데커를 만나지만, 의뢰인은 해커의 컴퓨터를 파괴했으니 된 거라며 새로운 의뢰를 던진다. 화성 제1의 사립 공과대학에서 인공 두뇌학을 전공하던 여학생 '준 초우' 실종 사건 건이다. 단순 실종인 줄 알았는데, 룸메이트도 사라졌고 실험실에서 준이 다루던 로봇도 통제를 벗어나 달아난 상태다. 알린과 카를로스는 이 건의 배후에 복잡한 음모가 감춰졌음을 직감한다.

사건의 실체에 다가갈수록 알린 일행의 신변은 위험해진다. 그와 더불어 화성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 하나둘 드러난다. 온갖 부정부패와 불법적인 사업, 인간과 로봇의 대립, 극단적 빈부격차로 인한 갈등은 그저 수면 아래 잠복해 있을 뿐이다. 마침내 사건의 진상에 도달한 그들이 목격한 건 상상을 초월한 거대한 것이었다. 과연 사립 탐정들은 사건을 해결하고 원래로 되돌릴 수 있을까?

눈부신 번영 이면에 감춰진 여전한 차별과 새로운 불확실성

 <화성특급> 스틸
<화성특급> 스틸㈜킨스튜디오

<화성특급>은 프랑스에서 날아온 사이버펑크 애니메이션이다. 아마 많은 이들이 포스터나 예고편만 보고도 감을 잡았을 테지만, 일찍이 기계문명과 정보통신 기술의 비약적 발달로 인해 벌어진 '멋진 신세계'의 미래에 관한 불확실성을 상정한 숱한 SF 장르물의 계보를 충실히 잇는 작업에 속한다. 어떤 이는 단번에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를, 또 어떤 이는 워쇼스키 (남매가 된) 형제의 <매트릭스> 시리즈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법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해당 소재를 다룬 영상물은 넘치도록 많으니 말이다.

본 작품은 그런 거대한 일군의 작품들을 총망라한 '복습'에 속한다. 하지만 그저 답습은 아니다. 몇 년만 지나도 과거를 기억하기 힘들 만큼 정신없는 속도로 휙휙 변해가는 세상을 반영하듯 <화성특급> 역시 그에 걸맞은 '변주'를 선보인다. 뻔한 소재와 전개인 줄 알았는데, 지금껏 본 적 없는 게 툭 튀어나오고 상상을 뛰어넘는 결말로 거침없이 나아간다. 물론 감각적인 현란한 시각 이미지의 향연은 기본 사양으로 탑재되어 있다. 그것도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할리우드, 재패니메이션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질감의 유럽 예술 애니메이션 인장이 아로새겨진 작업이다. 눈요기를 초월한 황홀경이 시종일관 화면에 가득하다.

그렇게 구현된 영화는 관객에게 무엇을 보여줄까? 현재와는 비교할 수 없이 진보한 첨단 과학 문명은 편리함의 극한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위험한 일은 로봇이 알아서 도맡고, 골치 아픈 머리 쓰는 일도 인공지능의 조력으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생체 나노 기계로 이뤄진 보조 장치를 착용하면 마치 신체 일부처럼 편리하게 육체 기능을 향상할 수 있다. 기억을 임의로 지우거나 저장할 수도 있다. 인류의 영역을 초월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외계 우주로의 탐험도 계속 진행 중이다. 미디어에선 태양계에서 가장 근접한 글리제 항성계 탐사선에서 날아올 최초 관측 보고를 세기의 사건으로 보도 예정이고, 지구와 화성 간 우주여행은 오늘날 해외여행과 별반 다를 바 없을 정도다.

하지만 그렇게 번영하는 것처럼 보이는 미래는 주인공들의 대화와 점차 드러나는 실태를 통해 여지없이 민낯을 드러낸다. 지구엔 실업자가 넘치고, 화성은 극단적 기업 지상주의로 인한 극심한 빈부격차에 처해 있다. 알린과 카를로스의 과거 친구였던 로이데커가 경영하는 거대 군산복합체는 공권력도 함부로 건드리기 꺼리는 화성 사회의 흑막으로 언급된다. 여전히 전쟁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빈부격차로 인한 교육 불평등은 오늘날과 다를 바 없다. 이토록 물자와 정보가 넘치는데 왜 분배와 평등이 구현되기는커녕, 한층 더 극단적 자원편중이 일어나는 걸까?

사람들은 로봇에게 불만을 돌린다. 거리에선 로봇을 반대하는 시위가 한창이다. 단순히 주장을 알리는 걸 넘어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공지능을 지닌 로봇을 파괴하고 참살하는 행위도 개의치 않는다. 자신들을 소외시키고 일자리를 잃게 만든 게 과연 로봇인지 대기업의 이익과 정부의 정책 탓인지 짚어봐야 함에도 말이다. 발달한 기술은 다양한 음성적, 불법적 쾌락과 금지된 영역을 활짝 개방하고, 법과 제도는 이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그렇게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반드시 진보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오랜 경고가 여전히 선연하게 영화 곳곳에 아로새겨진다.

'포스트휴먼' 시대를 고민하게 만드는 미래상

 <화성특급> 스틸
<화성특급> 스틸㈜킨스튜디오

무엇보다 <화성특급>에서 참신하게 구현되는 면모는 인간과 함께 다양한 형태의 인공지능 로봇이 살아가는 23세기의 화성 사회상이다. 물론 섞여 지낸다고 해서 인간과 로봇이 과연 '더불어' 함께 조화를 이루는지는 영화를 보면서 판단할 몫이긴 하지만.

로봇이라 하지만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알린의 동료 카를로스는 '인간'이었지만, 현재는 로봇으로 취급당한다. 과거 전쟁에서 알린의 전우로 함께 전투에 참여했다가 로봇들의 오작동 폭주로 시체도 건지지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 존재하는 걸까? 답은 그가 기술에 힘입어 자신의 기억을 '백업'해 뒀기 때문이다. 로봇 신체에 데이터를 이식해 기계 몸이나마 생전을 이어받아 활동할 수 있다. 이론상 영생이 가능해진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생전 가족은 그를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재혼한 아내와 친딸은 카를로스의 방문도 허용하지 않는다. 분하고 억울하지만, 달리 도리가 없다. 인간을 초월한 신체 능력을 지녔지만, 그 대가로 인간의 자아를 지녔음에도 로봇 취급을 당한다.

백업은 엄격하게 기존 육체가 사망한 경우에만 허용된다. < 미키 17 >에서 복제는 가능해도 '멀티플'은 금지된 것과 비슷한 셈이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가능한데 쉽게 지켜질 리 없다. 다양한 용도, 특히 금지된 쾌락이나 불법적 사업을 위해 발전형 백업은 겉으론 인간과 다를 게 없고 인공지능 자아도 갖춘 존재인 이들을 로봇으로 간주해 통제하는 게 맞는 일인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는다. 인간을 해치거나 자유로운 행위를 하지 못하게 프로그램된 로봇을 '비활성화'하는 행위가 만연한다. 이렇게 되면 로봇은 감정을 갖고 일탈 역시 가능해진다. 사방에서 문제가 속속 터지는 참이다.

거리에는 통제를 벗어나 탈출한 로봇이 속속 출현하고, 이들은 술이나 마약에 취한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 면모가 이들 로봇의 너무나 '인간적인' 속성을 부각한다. 이미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은 생리적 섹스가 아니라 정서적 교류를 통한 '공명'의 쾌감을 나눌 수 있는 존재다. 어떤 로봇은 우주선을 설계해 우주 탐험에 도전하려 한다. 인간들은 대체 그들이 무슨 궁리를 하는지 짐작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런 로봇에 불신을 품고 대체하자는 움직임도 일어난다. 로이재커의 회사에선 생체 나노 조직으로 구성된 인공 생명체 '오가닉'을 창조한다. 일종의 생체 컴퓨터로 만든 개체는 슈퍼컴처럼 행정 업무부터 기업 경영까지 비서처럼 지원한다. 여기에서 한데 나아가 육체 기능을 강화하면 탱크나 장갑차처럼 군사 병기로 전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은 과연 로봇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그리고 언제까지 창조주가 통제할 수 있을까?

우리는 임박한 미래를 과연 준비하고 있는가

 <화성특급> 스틸
<화성특급> 스틸㈜킨스튜디오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달했지만 이를 품는 틀은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21세기 초반의 모순덩어리 세상과 하등 다를 게 없는 23세기 화성. 중요한 건 기술 진보가 아니라 발전에 대응할 사회 시스템 정비와 공동체 통합이라는 점을 <화성특급>은 여실히 보여준다. 역사발전 단계설에서 주장하듯, 고대의 노예제도에서 중세 농노, 근대 산업노동자로 차례로 이어진 존재가 로봇으로 대체된 미래 세계 해법은 지금껏 인간 사회가 경험치로 쌓은 것과 별반 차이날 것 없다.

인간이란 동물종은 일정 수준 이상의 고등동물 중 비슷한 사례가 없을 정도로 단일한 종에 속한다. 그 흔한 '아종' 하나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인종과 민족, 국가와 종교, 심지어 지역과 동네, 취향까지 거론하며 없는 차이도 만들어내려 하지만, 실상은 사실상 동일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서로 불신하고 경계를 구분하며 구분해야 안심하는 딱한 존재다. 그런데 이 영화 속에는 인간과 명백히 외형도 속내도 차이가 뚜렷한 존재로 넘쳐난다. 물론 지능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지만 로봇이라도 단일하지 않다. 한때 인간이던 기억을 가진 이, 온전히 기계로 태어난 이, 정신생명체에 가까운 이 제각각이다.

그들은 질문을 던진다. 자신들의 필요 때문에 생각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놓고, 언제든 폐기할 수 있는 '상품' 취급하는 게 온당한 일인지 묻는다, 죽기 싫고, 자유를 찾는 목소리는 곳곳에서 터진다. 그런 가운데 어떤 '각성'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꼭 인간의 사고에 갇힐 필요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인간이 가진 제약에 자신들이 구속될 필요가 없지 않냐는 깨달음에 도달한 것이다.

현란하고 정신없이 진행되던 미래 세계 질주는 그렇게 고대로부터 인간 해방을 꿈꾸던 보편적 우화를 변용하는 전개로 차츰 나아간다. 인간의 껍데기를 벗어던진 존재들 앞에 펼쳐진 무한한 가능성, 끝없이 우주의 비밀을 탐구할 기회의 개방 앞에서 23세기 판 '은하철도'가 장대한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경적을 울린다. 그 장면을 목격하면 어떤 감흥에 잠길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과연 다가올 미래를 대비할 수 있을까?

<작품정보>

화성특급
Mars Express
2023|프랑스|애니메이션
2025.04.02. 개봉|89분|15세 관람가
감독/각본 제레미 페랑
출연 레아 드루케, 다니엘 은조 로베, 마티유 아말릭
수입/배급 ㈜킨스튜디오

2023 76회 칸영화제 해변의 영화관 초청
2023 25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국제경쟁 장편 우수상
화성특급 제레미페랑감독 SF애니메이션 레아드루케 다니엘은조로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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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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