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세기를 주름잡았던 액션 스타 중 하나인 멜 깁슨은 1990년대부터 연출에 발을 담갔다. 유명한 작품들로 <브레이브 하트>·<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아포칼립토>·<헥소 고지> 등이 있다. 모조리 역사적 이야기들로, 철저한 고증과 함께 폭력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중 지난 2004년 첫 개봉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최초 개봉일에 맞춰 재개봉했다.
'예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은 비기독교인도 들어봤음직 하다. 최후의 만찬, 겟세마네 동산, 유다의 배신, 총독 본디오 빌라도, 골고다 언덕, 십자가형, 죽음과 부활로 띄엄띄엄 나열하는 정도다. 하지만 예수의 수난, 죽음, 부활은 예수의 상징이자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2000년대 중반 작품으로, 1950~60년대 블록버스터급 대작들인 <십계>·<벤허> 등 이후 명맥이 끊겨 버린 대중적 종교영화를 부활시켰다. 실감 나는 폭력과 고통을 지켜보고 있자면 누구라도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 것이다.
최후의 만찬부터 골고다 언덕까지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포스터.
길갈
과월절을 기념하는 만찬 다음 날 새벽 겟세마네 동산, 예수가 기도를 드리고 옆에 몇몇 제자가 함께 있다. 곧 유대인 제사장의 사병들이 들이닥쳐 예수를 잡으려 한다. 결국 잡히고 마는 예수,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 앞으로 끌려간다. 하지만 빌라도는 예수를 죽이는 걸 저어해 이리저리 나름대로 노력한다.
예수를 헤로데 왕에게 보내 알아서 하게 하지만 다시 돌려보내진다. 당시 흉악한 살인마로 일컬어진 바라빠를 데려와 예수와 둘 중 누구를 풀어줄지 선택하라고 했지만 유대인 제사장을 비롯 유대인들은 바라빠를 풀어주라고 한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태형을 명하고 풀어주려 하지만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킬 듯한 분위기였다. 빌라도로선 폭동을 좌시할 수 없었다.
결국 십자가형을 명 받는 예수,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향한다. 와중에도 끊임없는 채찍질로 쓰러지기를 수차례 반복, 얼떨결에 예수를 도와 십자가를 옮긴 시몬 덕분에 언덕을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남은 건 더욱더 심한 고통과 죽음뿐이다.
종교 영화이자 대중 상업 영화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포스터.
길갈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박스오피스 성적으로 유명하다. 북미에서만 3억 7천만 달러, 전 세계적으로 6억 2천만 달러를 벌었다. 역대 R등급 북미 흥행 2위에 해당하는 성적이지만 해외에서도 적잖게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단순히 교인들만의 영화가 아닌 대중 상업 영화로서도 힘을 발휘했다는 이야기다.
멜 깁슨 감독의 연출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의 타 연출작들처럼 더 직접적이고 사실적이다. 실감 나게 폭력을 묘사하며 눈을 감아 버리고 싶은 한편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하물며 그 대상이 인류의 역사를 영원히 뒤바꾼 예수 그리스도라면 누구라도 궁금해서 한 번쯤 보고 싶을 것이다.
영화는 앞뒤 없이 예수가 유대인 제사장의 사병들에게 잡혀 로마 총독 앞에서, 헤로데왕 앞에서, 살인마 바라빠 앞에서 온갖 모욕을 당한 모습을 담는다. 이후 끔찍한 고통을 수반하는 태형을 받은 예수가 골고다 언덕을 올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알고 보면 눈물이 멈추지 않을 것이고 모르고 보면 고통에 함께 몸부림칠 것이다.
재현된 예수의 수난을 재현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포스터.길갈
영화는 기록에 남아 있는 '예수의 수난'을, 역사 고증을 가장 잘하는 사람 중 하나가, 덜도 말고 더도 말고 제대로 재현하려는 시도였다. 그럼에도 실제 예수가 겪은 수난이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는다고 하니, 비기독교인으로서도 감정이 심하게 요동친다. '예수'라는 상징성 다분한 호칭이 아닌 보통의 무고한 선량한 일반인이라고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 아닌가.
극 중 예수에게 주로 폭력을 가하는 이들은 로마의 말단 병사들인데, 이성적으로 형벌을 집행하는 게 아니라 감정적으로 유희를 즐기고 있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마치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다.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씌워 죽을 때까지 단 한 순간도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악마같은 행동인데 그들의 죄조차 모두 떠안는 예수라니, 더 할 말이 없다.
이런 영화가 또 나올 수 있을까 싶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울 정도로 잔인하고 폭력적이지만 바로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울지 않기가 힘들고, '종교 영화'라는 상당히 마이너하고 마니악한 장르지만 '전 세계적으로 대성공한 대중 상업 영화'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으며,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매력의 소유자라니.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공유하기
모든 걸 떠안은 예수, 그의 고통을 함께 겪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