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랜드 투어> 스틸컷
엠엔엠인터내셔널(주)
03.
먼저 이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다. 끝나가는 1차 세계대전의 분위기 속에서 식민지에 파견된 에드워드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으로부터 탈출하는 과정, 문자 그대로의 여행기(tour)가 그려지는 지점이 전반부에 해당된다. 티베트에 도착한 그가 아편에 중독된 영사를 만나고 대나무 숲에서 판다를 만나기까지다. 후반부는 그의 여행이 시작되던 시점으로 다시 돌아와 예정대로 랑군에 도착한 몰리가 이유도 없이 떠나버린 에드워드를 쫓아 자신만의 여행을 시작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일반적인 작품이라면, 쫓고 쫓기는 이야기를 그리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오히려 이 영화는 모종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으나 서로 다른 두 인물의 '그랜드 투어'로 바라보는 것이 조금 더 매끄럽게 느껴진다. 실제로 두 세트, 전반부와 후반부는 많은 장치를 공유한다. 신의 배경이 되는 각 나라(장소)의 다양한 언어가 특별한 자막이나 해석 없이 프레임의 한 구성요소로 작동한다는 것. 리얼리즘 접근법에 따라 도시의 장면들, 아카이빙 이미지가 장면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는 것. 과거와 현재를 하나로 엮어내고자 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등이다.
물론 이런 장치들은 이야기의 다면적 속성을 부각하기 위한 하나의 기술적인 부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미겔 고메스 감독은 '국가, 성별과 시대, 현실과 상상, 세상과 시네마 등의 분리된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거대한 투어'라고 이 작품을 소개한다. 다만 준비된 두 인물이 영화 속에 마련된 장치를 개별적이지만 공통적으로 나아간다는 점과 그 결과 동일한 장면에 이르게 된다는 점에서 함의를 찾을 수 있다.
04.
"백인은 동양 문화를 절대 이해 못 해요. 서구 문화의 사고를 초월하죠."
시작점에는 인상적인 장면 하나가 놓인다. 인력에 의해 작동되는 관람차 장면이다. 이후에도 몇 차례 등장하는 이 장면에서 가장 먼저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역시 커다란 기구를 직접 돌리는 사람이다. 그리고 작품의 다른 장면에서 우리는 사람에 의해 작동되는 것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게 된다. 그림자극과 난타를 공연하고, 용 군무를 추고, 강 상류로 배를 끌고 오르는 것도 모두 인력에 의지된다. 코코넛을 쪼개거나 오리를 기르고, 이제 막 남편의 집으로 향하는 신부의 가마를 드는 것도 사람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이미지들은 곧 증기와 모터, 기름과 같은 인력이 아닌 동력으로 움직이는 것들의 이미지로 전환된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 작품에서는 혼재되어 있으나 그 결과 가까운 미래에 어떤 장면을 마주하게 되는지에 대해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여행하는 동안 에드워드가 마주한 채로 '지나치게' 되는 인물들, 왕자의 생일에 참석한 인물, 냉담한 수도승, 파렴치한 도적은 물론, 몰리의 선택으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되는 신부와 사공들 모두 역시 지나온 이미지의 파편으로 남는다.
조금 냉혹한 표현이기는 하나, 사실 이 영화에서나 에드워드와 몰리 두 인물에게 그렇게 지나온 이미지와 그림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는 서구 문명에 의해 개방되고 발전되어 온 지난 시간 속 동양 문화권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때때로 영화가 시점을 밝히지 않고 보여주는 여러 영상의 시선까지도 애드워드나 몰리와 같은 서구권의 시점으로 여겨지는 것 또한 그래서일 것이다.) 티베트에서 만나게 되는 영국 영사만이 백인은 동양 문화를 절대 이해할 수 없다며, 서구 문화의 사고를 초월한다고 말하지만 그 역시 아편에 중독된 상태다.
▲영화 <그랜드 투어> 스틸컷엠엔엠인터내셔널(주)
05.
"평생의 믿음을 버리는 건 너무나 슬플 텐데요."
미겔 고메즈 감독과 영화 <그랜드 투어>가 특정 문화의 우월성을 주장하거나 그려내고자 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저 역사가 나아온 자리를 극 중 인물이 경험하게 만들고, 그들의 경험과 감독이 장치한 장면을 통해 관객이 다시 경험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여행 도중 샌더스의 청혼을 받고, 그의 물리적인 도움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닌 그의 집을 돌보는 응옥(랭 케 트란 분)을 선택하고 함께 티베트 고원에 도착하는 모습에서도 이 영화가 나아가고자 하는 자리는 가늠해 볼 수 있다.
두 인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에드워드는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여 도망치듯 여행을 떠났고, 몰리는 낯선 땅에서 하나의 목표만을 바라보며 또 하나의 여행을 시작했다. 두 사람은 비슷한 경로를 통해 같은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전혀 다른 경험을 했고, 상황을 알지는 못하지만 그저 아무 일이 없기만을 바라던 에드워드의 바람과는 달리 몰리는 꽁꽁 얼어붙은 채 발견된다. 심지어 에드워드의 마지막은 불명확하다. 결국 우리는 지금까지 영화가 보여줬던 것 말고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로 남는다. 지나온 130분의 흔적 말고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채다.
영화의 마지막이 현재와 연결되는 장면이 이 작품의 전체를 끌어안는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이 생소하고 낯선 장면 하나로 인해 극 중에서 표현되어 왔던 이 거대한 여정은 마치 우리 모두가 지나온 시간처럼 다가온다. 감독의 주문과 함께 장면에서 빠져나가는 몰리(극 중 이름이었으니 어쩌면 그녀의 이름은 다른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어쩌면 다시, 이 영화에 담지 못한 또 다른 시절, 다음의 장면을 다음 신에서 촬영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한, 우리가 지금 지나고 있는 이 모든 순간이 '그랜드 투어'에 해당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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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