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혹했던 1948년 탐라의 봄 > 스틸컷
퓨어웨이 픽쳐스
이는 우리가 통상 4·3사건에 대해 인지하는 것, 나아가 정부 주도로 이뤄진 진상조사의 결과와 어긋난다. 남로당 제주도당을 진압하기 위해 육지에서 파견된 서북청년단과 군 병력이 제주 민간인을 상대로 저지른 일방적 학살극, 정부에 의해 인정된 확인사망자만 1만 명을 훌쩍 넘고 추정 사망자는 그 수배에 이르는 참극을 그저 '빨갱이 소탕에 따른 부작용' 으로 치부하고 만다.
게다가 이는 4·3사건의 본질을 호도하는 행위다. 남로당 제주도당을 소위 '빨갱이'로 치부하고 이들의 범죄행위를 조명하는 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반드시 그에 비할 수 없는 피해를 일으킨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도 말하여야만 한다. 서북청년단을 파견한 최종 결정권자 이승만 대통령, 당시 경무부장이던 조병옥, 무엇보다 이를 조장한 미군정에 대한 책임 말이다.
다큐는 김학성 전 강원대 헌법교수를 통해 적극적 왜곡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는 4·3사건에 대해 '좌파는 민중봉기라 하고 우파는 남로당 제주도당이 일으킨 반란이라 한다'며 우파의 주장이 맞다는 근거로 2001년 헌법재판소 결정을 언급한다. 김대중 정부 시기 제정된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특별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에서 재판관 전원일치로 '제주 4·3사건은 남로당 제주도당이 일으킨 반란사건이다'라고 결정했다고 말한다.
이는 거짓이다. 해당 판례(2000헌마238, 302 병합)에서 반란에 대한 언급은 청구인 주장을 요약하는 대목에서만 언급될 뿐이다. 오히려 제주4·3사건민간인희생자유족회, 제주4·3연구소 등 4개 유관단체는 '제주4·3사건을 단순한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파악하거나, 북한 공산세력과 연계된 조직적인 공산무장반란으로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역사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입장을 내 청구인 측과 반대되는 주장을 펼쳤다. 다수 재판관은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관 2명(권성, 주선회)만이 이를 '공산무장세력이 주도한 반란행위'라 소수의견을 냈을 뿐이다. 다큐가 담아낸, 재판관이 전원일치로 공산당 반란이라 규정했다는 대목은 확인할 수 없다.
적극적 왜곡까지 버젓이 유통한다
< 잔혹했던 1948년 탐라의 봄 >은 말 그대로 1948년의 봄만을 잔혹하다고 이야기한다. 무장대 반란이 일어난 4월의 잔혹함만을 바라보고, 11월 17일 선포된 계엄령부터 12월 31일 계엄해제까지 집중적으로 자행된 중산간 지역 초토화작전, 그 전후로 이어진 학살극에 대해선 외면한다. 2020년 발간된 '제주 4·3 추가진상보고서'와 같이 신뢰성 있는 자료는 당시 기준으로 4·3위원회가 심의·결정한 민간인 희생자를 총 1만 4442명이라 적고 있다. 이중 토벌대에 의해 죽은 이가 78.7%, 무장대에 의해 사망을 15.7%로 기록했다. 전체 희생자의 7할 가까이가 초토화작전이 이뤄진 시기, 즉 1948년 가을부터 이듬해 늦겨울까지 발생했다. 1948년 탐라의 봄이 잔혹하다 말하려면 그 이후를 돌아봐야 할 일이다.
< 잔혹했던 1948년 탐라의 봄 >은 근 몇 년간 꾸준히 이어져 온 우파다큐의 흐름 가운데서 그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감독인 권순도는 2023년엔 이승만의 일대기를 미화해 다룬 <기적의 시작>을 감독해 또 한 번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기적의 시작>에선 감옥에서 영혼과 민족을 구원해달라며 신께 기도를 올리는 이승만의 모습을 의미심장하게 잡아내는 등 개신교적 주제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 <잔혹했던 1948년 탐라의 봄>에서도 제주도 기독교인의 죽음 등을 공들여 잡아낸 대목이 눈길을 끈다. 서북청년단이 영락교회 등 기독교 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단 건 주지의 사실이지만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작품이 완성된 뒤 최근 논란이 된 부산 세계로교회 등 개신교 교회들에서 순회상영을 이어간 점은 의미심장하다.
역사적 사실을 은근히 비틀어 보도록 하는 이와 같은 작품이 근 몇 년 끊이지 않고 제작되는 현실은 갈수록 역사에 무관심해지는 이들이 늘어나는 국면에서 경각심을 자아낸다. 역사적 사실을 두고 정치적 파벌로 갈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를 떠올린다. 더 세가 강한 쪽이 사실을 점령하고 후세들을 제 편으로 끌어들이는 일이 공공연히 벌어진다. 온라인에 공개돼 꾸준히 관심을 받는 이와 같은 영화, 나아가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유튜브며 커뮤니티 상의 콘텐츠들이 꼭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게 아닌지 두려워지는 오늘이다.
해법은 명백하다. 거짓을 가려내는 눈을 얻는 일, 파고들어 진실을 발굴하고 그를 널리 알리는 것이다. 고단하고 불편한 작업이지만 오로지 이것만이 거짓의 범람에 대항하는 길이다. 어둠을 물리치는 건 빛뿐이듯, 진실만이 거짓을 걷어내기 때문이다.
▲< 잔혹했던 1948년 탐라의 봄 >포스터퓨어웨이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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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