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의 이소라는 대부분 몸을 웅크린 채 얼굴을 찡그리며 노래한다.
에르타알레엔터테인먼트
그녀의 공연에 만족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무대 위의 이소라는 대부분 몸을 웅크린 채 얼굴을 찡그리며 노래한다. 목소리를 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찬찬히 한 소절 한 소절을 부른다. 평소 발음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노래가 다 달라진다고 말했던 그녀는 어떤 때에는 놓아주는 듯한 발음으로, 어떤 때는 부둥켜안는 발음으로 곡을 해석한다.
대부분의 공연에서 이소라는 어떤 움직임 없이 한곳에만 앉아 노래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공연을 팔짱을 끼고 몸을 뒤로 젖혀 편히 본 적이 없다. 늘 기도하듯 손에 깍지를 끼고 몸을 앞으로 숙이며 집중하게 된다. 피아노(이승환), 기타(홍준호·김동민), 드럼(이상민), 베이스(최인성 혹은 장승우) 등 이소라의 공연 세션은 크게 멤버가 바뀌지 않는데, 이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단단하게 받쳐준다.
그런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눈앞에 사계절이 펼쳐진다. 그녀가 입을 떼고 노래를 시작하면 봄의 설렘부터 여름의 푸르름과 가을의 외로움, 겨울의 서늘함이 멜로디에 담겨 피어난다.
'첫사랑'·'청혼'·'랑데뷰(Rendez-Vous)'는 봄의 수줍음을 드러내고,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우리가 가야 하는 곳"을 노래하는 'Track 3'은 청량한 여름의 기운을 뿜어낸다.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다가오는 선선하지만 외로운 가을바람은 "바람이 분다 / 서러운 마음에 /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고 읊조리는 '바람이 분다'에 담겨있다. 이소라가 부르는 'Track 8'의 노랫말인 "그래야 할 일이었을까 / 꼭 겪어야 할 일이었을까"를 들으면 한 해의 마지막, 코끝이 시린 겨울이 된 듯 싶어 한 해 동안 겪어낸 일들이 차례차례 스쳐 간다.
이소라의 공연은 '말'이 적기로도 유명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전에 진행한 소극장 공연에서 그녀는 10곡을 쉬지 않고 부르기도 했다. 때론 잔잔하게, 때론 휘몰아치듯 1시간 가까이 끊임없이 온몸에서 소리를 꺼내 노래하는 식이다. 각 곡이 끝날 때 관객은 환호하거나 요란하게 박수를 치는 대신 그녀가 다음 곡을 이어갈 수 있게 조용히 집중한다. 이소라가 별다른 멘트를 하지 않고 공연을 마치거나 앙코르없이 퇴장할 때도 있다. 다른 가수의 콘서트라면 쉽게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소라의 콘서트에서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소라가) 그러고 싶었겠지 하며, 이조차 공연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러니까 이소라는 무대 위에서 선물할 수 있는 최선이 음악 하나라는 걸 알고 딱 거기에만 꼿꼿하게 집중한다. 유행을 따르는 창법이나 스타일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다움의 옷을 입고 종종 그 안에서 변화를 도모하며, '이소라'라는 장르를 만들어 간다.
14년 전, MBC <나는 가수다>에서 그녀가 펼친 무대는 이소라의 '자기다움'을 이야기할 때마다 여전히 회자된다. 현장 투표에 유리할 수 있는 지르는 창법이나 웅장한 사운드를 한 번도 내세운 적 없이 어떤 때는 피아노와 목소리만으로 경연을 치렀다. '한 표'를 부탁하기보다 자신의 무기를 선보일 테니 이 매력을 알아보라는 듯이 당당하게.
일상을 살며 쉽게 휘청이는 내게 수십 년간 자기다움을 유지하는 아티스트를 보는 건 자기중심을 잡고 살고 싶게 하는 힘을 준다. 그래서 그녀가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만큼 무엇이든 마음껏 하기를 응원하는지도, 실은 거기에 내가 나를 응원하는 마음을 포개어 둔 건지도 모른다.
2025년 봄, 어딘가 어수선하고 잔인하게 느껴지는 시기에 이 섬세한 예술가는 '사랑의 힘'을 언급했다. 최근 열린 '봄밤 핌' 공연에서 그녀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없던 기운도 생긴다"면서 "아가페이든, 에로스든 여러 종류의 사랑은 사람에게 큰 힘을 준다. 최근 그런 감정에 메말라 무뎌져 있었는데, 오늘 그 사랑의 마음을 벅차게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형'으로 살아가리라는 다짐을 전했다.
"제 노래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방금 '되고 싶었어요'라고 말하려다 바꿨어요. 뭐든 '하고 싶었어'라고 하면 안 될 거 같더라고요. 계속 현재 진행형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그게 뭐든요."
집 문밖을 나서는 게 가장 어렵다던 이소라는 그럼에도 "공연을 통해 받은 벅찬 사랑의 기운으로 올해는 (집밖으로) 나가겠다"고 말했다. 나가서 무엇이든 해보겠다고, 지금을 놓치지 않겠다고 했다. 어쩌면 '사랑'이 어울리지 않는 봄이지만, '지금'을 움켜쥐겠다는 마음을 그녀 덕분에 또 한 번 가졌다.
▲지난 3월 27일부터 30일까지 나흘간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 서울 시그니처홀에서 열린 이소라 일곱번째 봄 콘서트 '봄밤 핌' 포스터.NHN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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