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가수, 휘성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10대 시절의 영웅, 알앤비의 세계를 알려준 예술가 휘성을 보내며...

누구에게나 짜릿한 '입덕'의 순간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2004년 늦가을에 만난 휘성의 노래 '불치병'이 그랬다. 절도 있는 춤을 추면서, 쉽지 않은 고음 애드리브를 연달아 내뱉는 모습을 보면서 홀딱 반했다. 2003 MMF(지금의 MAMA) 재방송에서 접한 'With Me'는 두 번째 충격이었다. 그때까지 그만큼 세련되고 도회적인 음악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휘성은 본토 알앤비의 작법과 가요의 감성을 절묘하게 결합한 아티스트였다. (이 곡이 실린 2집 < It's Real >은 지금까지도 나의 인생 앨범 중 하나다.)

삶에 새겨진 그의 노래

 가수 휘성.
가수 휘성.연합뉴스

휘성이 최전성기를 누렸던 2000년대, 나는 10대였다. 콘서트에 갈 돈이 있을 리 없다. 대신 문화상품권과 세뱃돈을 모아 휘성의 앨범을 샀다. 그의 음악은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인식한 알앤비(리듬 앤 블루스, Rhythm and Blues)였다. 휘성의 커버 버전을 통해 니요(Ne-Yo), 시스코(Sisqo),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맥스웰(Maxwell) 등 수많은 해외 알앤비 뮤지션의 존재도 알게 되었다. 그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확장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단순히 음악만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타고난 천재가 아닌, 노력파의 성공 신화에 마음이 갔다. 실패한 보이 그룹 A4의 멤버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대형 신인이 되었다는 서사는 얼마나 멋진가. 세련된 그루브 감 그 뒤에는 산속에서, 하수처리장에서 연습하는 등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그는 사춘기 시절의 영웅이 되기에 마땅한 인물이었다. 어린 날의 나는 그를 닮고 싶어 했다. 음악 방송에서 반창고를 얼굴에 붙인 채 '일년이면'을 부르는 모습을 보고, 나도 멀쩡한 얼굴에 반창고를 붙였다. 어린 시절 커뮤니티에서 쓰고 다니던 닉네임 역시 휘성의 별칭 'Real Slow'에서 따온 것이었다.

초등학교 수련회 장기자랑에서는 'With Me'를 불렀다. 고등학교 장기자랑에서는 'Insomnia'를 부르며 멋진 척을 했다. 짝사랑의 좌절을 다독이며 '전할 수 없는 이야기', '사랑 그 몹쓸병'을 들었다. 모처럼의 히트곡 '결혼까지 생각했어'의 컴백 무대를 보고 뿌듯함을 느꼈다. 날씨가 좋을 때는 경쾌한 'Player'를 들었다. (이 곡은 나의 미니홈피 배경 음악이기도 했다.) 음악이 유독 귀했던 신병 시절, 생활관 TV로 접한 노래 'Night and Day'의 반가움도 잊을 수 없다. 이처럼 휘성의 노래는 삶의 많은 순간에 아로새겨져 있었다.

세월이 지나고, 다른 음악들에 더 많은 관심이 갔다. 취향도 조금씩 바뀌었다. 뜨겁던 마음들은 조금씩 식어갔다. 그럼에도 휘성은 언제나 마음속에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 뒤늦게 그의 콘서트에 갔을 때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환호했다. 2013년 겨울 그가 출연한 JTBC <히든싱어>를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따스해지기도 했다. 그 방송분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모창자 김진호씨가 휘성의 숨은 명곡들을 일일이 열거하는 모습을 보며 동질감을 느꼈다. 오랜 팬으로서 휘성에게 느끼는 유일한 아쉬움이 있다면, 그가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의심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가수 하길 잘 했다"라며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고 안도감을 느꼈다.

최근 몇 년 동안 그의 커리어에는 궂은 일이 많았다. 어린 날의 우상에게 들려오는 안 좋은 뉴스들을 들으며 착잡했다. 그럼에도 가끔 SNS와 유튜브를 통해 그의 근황을 살펴보았다. 콘서트장에서 건재한 보컬을 들려주는 직캠 영상을 보고 흐뭇했다. 그가 알앤비 뮤지션의 정체성을 극대화한 'REALSLOW 1집'을 발표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반가웠다. 영원한 노력파에게 보다 근사한 40대가 찾아올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지난달, 인생의 가수가 세상을 떠났다. 예기치 못한 이별은 아프다. 그 소식을 듣자 마자 서재에 있는 휘성의 CD들을 모두 꺼내서 한동안 쳐다보았다. 어린 날의 소중한 조각이 사라진 것 같았다. '알앤비 앨범'이라는 꿈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서글펐다. 그리고 정신없이 휘성이 남긴 소리를 다시 들었다.

"형이 남겼던 작품과 음악과 노래는 어쩌면 계속 남아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저희가 지금보다 더 나이가 먹고 영정 사진 속의 형보다 더 나이가 늙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돼도 저희 형의 노력은 계속 남아 있고 오히려 어찌 보면 저희보다 더 오래 살 수 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휘성의 동생이자 상주였던 최혁성씨가 영결식에서 남긴 말은 많은 팬들에게 큰 위로로 다가왔다. 그의 말을 들으며 "죽음은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존재 양식의 변화"라는 한 배우의 수상 소감 역시 떠올랐다. 사람들이 휘성을 '비운의 가수'로 기억하지 않기를 바란다. 휘성의 음악에 감탄하고, 즐거워하고, 감동받기를 바란다. 나 역시 앞으로도 그의 음악을 부지런히 듣고 그 가치를 계속 이야기할 셈이다. 언젠가 그와 악수하며 "형 노래를 들으며 자랐어요"라고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그럴 수 없게 되었으니 이렇게라도 한다.

 가수 휘성의 빈소가 14일 서울 강남구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6일 오전 7시 30분이다.
가수 휘성의 빈소가 14일 서울 강남구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6일 오전 7시 30분이다.연합뉴스/공동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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