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비> 스틸컷
㈜쇼박스
연구밖에 모르는 스타트업 대표 창욱(하정우)은 과거 실리콘밸리에서 협업했던 광우(박병은)에게 여러 가지를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다. 스마트 주차장 사업 기술을 빼돌린 건 물론이요. 기술을 선보일 기회마저 빼앗겨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나쁜 놈이 더 잘 산다는 게 맞는 건가 싶다. 광우가 세운 회사는 로비까지 잘해 승승장구하며 업계를 개척해 나갔다. 그를 두고 삼성 스토어에 애플을 입점시킬 인간이란 비유는 평판을 가늠케 한다.
한편, 회사만 믿고 있는 직원들의 생계는 물론이요, 대출 이자 50억을 갚아야 하는 위기에 몰린 창욱. 걸린 4조 원에 달하는 국책사업을 꼭 따내야 한다. 로비는 젬병이지만 김 이사(곽선영)의 제안에 따라 조 장관(강말금)을 구워삶아 보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광우의 훼방으로 곤경에 빠지게 된다. 역시 빠르다. 조 장관을 미리 만나 로비 중이었던 것. 어쩔 수 없이 조 장관의 남편이자 실무자인 최 실장(김의성)에게 접근한다. 이를 도울 박 기자(이동휘)를 뇌물로 꼬셔 아군으로 포섭했다. 거기에 슬럼프에 빠진 프로골퍼 진 프로(강해림)에게 스폰서쉽까지 제안하며 영입에 열 올렸다. 최 실장이 진프로의 열렬한 팬이란 사실을 듣고 골프 라운딩으로 환심을 하려는 심산이다. 과연 4조 원의 국책사업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골프장에 모인 10인의 인간 군상
▲영화 <로비> 스틸컷㈜쇼박스
영화 <로비>는 골프 라운딩 당일의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굴곡진 난관이 벌어지는 영화다. 하정우 감독은 "골프 치는 사람들을 보면 단순한 운동 하기보다는 각자의 목적과 욕망을 지닌 것 같았다"며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감독의 말대로 영화 <로비>는 그의 전작인 <롤러코스터>와 DNA를 공유한다. 공간의 평수만 달라졌지 비슷한 이야기다. 광활해 보이지만 은밀한 공간에서 위기에 몰린 인간의 다채로운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영화와 같은 거창한 로비는 아니지만 실생활에서 크고 작은 로비의 경험을 떠올려 본다면 공감할 상황이 많다.
골프 라운딩이라는 한 가지 상황에 여러 캐릭터의 상황이 접목되자 시너지가 커진다. 이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한 사회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골프 레벨처럼 계급, 나이 차이가 만들어 내는 보이지 않는 선을 넘을 듯 말 듯 줄타기한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 고상한 척하는 속마음을 숨기고 있는 대한민국의 민낯을 들춘다. 공정보다 불공정이 익숙해 씁쓸한 세상의 이치를 슬며시 바라본다.
뻔해 보이지만 예상을 비틀어 버리는 대사는 군상의 속성처럼 어디로 튈지 알기 힘들어 긴장된다. 마치 잘 짜인 연극을 관람한 듯 무대라는 골프장에서 배우들의 열연이 빛난다. 전체 리딩만 10번 넘게 하며 팀워크를 다지고 촬영하면서도 대사를 수정하며 만들었다는 현장이 드러나는 이야기다. 특유의 호흡과 리듬감을 갖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연기하는 농익은 베테랑 배우들의 조합만으로도 중박은 면하는 영화다.
하정우 감독의 차기작이자 네 번째 연출작도 코미디다. 층간 소음으로 만난 두 부부가 저녁 식사 중 벌어지는 소동극인 <윗집 사람들>도 올해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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