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당시 한국 여자야구 대표팀 단체사진.
황혜정
'그저 공을 던지고 싶어 야구를 했을 뿐'인데, 유일한 여자 선수라는 이유로 10대, 20대 때 감내해야 했던 일이 많았다. 어느 순간 그는 "어릴 때부터 야구만 해왔다. 이제 할만큼 했다. 지금부턴 다른 내 인생을 살아봐야 하지 않겠나"라며 훌쩍 호주로 떠났다. 2008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당시, 안향미는 호주로 유학을 떠날 계획이 있다고 했는데 꿈을 이룬 것이다. 그는 현재 호주 시드니에 정착해 남편과 정답게 살고 있다.
안향미가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뒤로 하고 호주로 떠난 뒤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국 여자야구도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생겼다. 야구를 하는 여성의 수가 크게 늘었다. 2025년 현재 한국여자야구연맹에 등록된 사회인 팀은 50개, 선수 1000명에 육박한다. 안향미가 한국 첫 여자야구팀 '비밀리에'를 만든 지 21년 만의 일이다.
제2, 제3의 안향미도 등장했다. 최유라(27)와 김라경(25), 이지아(23)가 일본 여자야구 실업팀에 입단했고, 2023년엔 1999년 안향미 이후 24년 만에 고교야구 엘리트 대회에 출전한 여자선수가 등장했다. 바로 최근 국가대표 상비군에 선발된 손가은(19)이다. 안향미에게 손가은의 얘기를 전하며 기자가 썼던 기사를 보여주자, 그는 애정 어린 눈빛으로 기사를 꼼꼼히 읽은 뒤 환하게 웃으며 "손가은을 비롯해 김라경 등 꿋꿋이 선수 생활을 이어가려는 친구들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여학생을 위한 야구팀도 따로 생겼다. 리틀 야구단 여학생은 중학교 3학년까지만 뛸 수 있어(이마저도 '김라경 법'에 의해 2년 연장된 것이다 - 기자 말) 고등학교부터 뛸 팀이 없는데, 이를 위해 여학생들로만 구성된 주니어팀이 생긴 것이다. 2021년 당진주니어여자야구단을 시작으로, 2023년 천안주니어여자야구단이 창단됐다.
대학 여자야구부도 2006년 나주대학교 이후 19년 만에 재등장했다. 국민대학교 여자야구부는 비록 학점은행제로 운영되고 있지만 올해 한국여자야구연맹에 팀 등록을 마쳤고, 전국대회 출전 준비에 한창이다. 안향미가 그토록 부르짖던 여성들만의 팀, 여자야구 선수를 위한 단계별 팀이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야구를 할만큼 했다"고 했지만, 안향미의 마음 속에는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최종 미션'이 남아 있는 듯했다. 그는 "한국의 어린 여자 선수들을 위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여전히 미련처럼 있다. 내가 한국 여자야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언제든 돕겠다"라며 웃었다.
모처럼 한국에 들어온 그는 덕수고 동기들을 만난 뒤 일본으로 넘어가 일본에서 함께 뛰던 여자야구팀 동료와 조우하는 등 쉼 없는 일정을 소화한 뒤 다시 호주로 돌아갔다. 안향미가 어느날, 어느 순간, 정말 좋은 시기에 돌아와 한국 여자야구를 위해 마지막 불꽃을 태울 그날을 필자는 손꼽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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