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극작가 카를 발렌틴의 희곡 <변두리 극장>에 등장하는 짧은 에피소드들을 선별해 만든 연극 < 코믹(Com!que) >이 개막했다. 베테랑 연극인인 고선웅 예술감독과 임도완 연출가가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서울시극단이 선보이는 2025년 첫 작품이기도 하다.

<코믹>은 프롤로그와 총 9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하나의 굵직한 서사가 연극 전체를 아우르는 보통의 연극들과 다른 점이다. 에피소드 하나를 진행하는 데에는 10분 남짓한 시간이 소요되며, 에피소드를 전환할 때는 배우가 직접 팻말을 들고 간단한 코미디를 선보이기도 한다.

3월 28일 개막한 <코믹>에는 서울시극단에서 오랜 시간 활약한 김신기를 비롯해 정은영, 성원, 박경주, 이승우, 구본혁, 정다연, 박신혜가 참여한다. 공연은 4월 2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진행된다.

 연극 <코믹> 공연사진
연극 <코믹> 공연사진세종문화회관

연극 <코믹>, 이렇게 즐겨보세요

에피소드에 따라 배우들은 여러 역할을 소화한다. 종종 가면을 쓰거나 빨간 코를 붙이는 등 '광대스러움'을 외형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과장된 의상이나 몸짓 등도 코미디를 완성하기 위한 요소다.

<코믹>은 상황의 부조리함을 드러냄으로써 웃음을 유발하는 방식을 택한다. 따라서 장면에 따라 크게 웃는 사람, 자그마한 웃음을 짓는 사람, 웃지 않는 사람이 공존한다. 한편 극 중 인물들이 여러 사투리를 사용한다는 점도 작품의 특징이다.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도 돋보인다. 극의 전개를 돕는 배경음악은 시트콤을 연상케 했고, 중간중간 나오는 효과음은 예능 프로그램을 연상시켰다. 프롤로그와 커튼콜에는 "괜찮다"는 말을 반복해서 전하는 노래를 부른다. 연극은 각종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주지만 그런 세상도, 그런 사람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앞으로 <코믹>을 보시게 된다면 연극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생각하기보다 웃음을 유발하는 매 순간을 즐기시길 권한다. 에피소드당 소요 시간이 10분 정도로 짧은 탓에 작품의 주제 의식을 온전히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시간에 코미디를 실컷 즐기고, 이후에 일상을 살아가며 은연중에 떠오르는 작품의 메시지를 곱씹어도 좋다.

 연극 <코믹> 공연사진
연극 <코믹> 공연사진세종문화회관

위트 있게 그려낸 세상의 아이러니

<코믹>은 여러 부조리함을 드러내는데, 연극을 본 후 필자가 곱씹어보고 있는 부조리함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합리성의 지나치게 추구한 끝에 비합리적 결과가 야기되는 아이러니다. 이는 6번째 에피소드 '새 장수'와 8번째 에피소드 '떠넘기기'에서 두드러진다.

'새 장수'는 영수증에는 새가 적혀있지만, 실제로는 새가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소동이다. 새 장수는 영수증에 새가 적혀있으니 새 한 마리의 가격을 달라고 하고, 손님은 실제로 새가 없으니 돈을 지불할 수 없다고 맞선다. 이처럼 어이없는 상황은 믿음을 담보하는 영수증이라는 수단이 되레 믿음을 헤치는 아이러니를 그려낸다.

'떠넘기기'는 전화가 계속 다른 부서로 넘어가는 상황을 묘사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필자가 관람한 회차에서 관객의 반응이 가장 좋았다. 이 에피소드는 효율성을 증대하기 위해 고안된 분업이 비효율적 결과를 가져오는 아이러니를 그려낸다.

둘째로, 7번째 에피소드 '이혼 법정'이 묘사하는 부조리함이 인상적이었다. 커다란 스크린이 무대의 배경을 이루는데, 판사 역할의 배우 뒤로 정의의 여신이 스크린에 등장한다. 이때 정의의 여신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공정한 판단을 상징하는 눈가리개를 하지 않고, 오히려 편견을 상징하는 색안경을 얹은 형국이다.

한편 보안 요원이 판사의 언어를 빌려 항변하는 장면도 있다. 보안 요원은 판결문의 주문과 선고 요지와 비슷한 형식으로 항변한다. 하지만 판사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때 보안 요원은 판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며 받아친다.

이런 메시지는 에피소드마다 담겨있다. 관객 각자의 경험이나 가치관, 개성에 따라 느껴지는 바가 다를 것이다. 이 역시 여러 에피소드를 한 데 묶어 소개하는 <코믹>의 매력이다.

 연극 <코믹> 공연사진
연극 <코믹> 공연사진세종문화회관
공연 연극 코믹 서울시극단 세종문화회관M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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