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막장 드라마의 대모'로 불리는 임성한 작가의 전성기 시절 별명은 '일일드라마의 여왕'이었다. 임성한 작가는 '겹사돈'이라는 독특한 소재의 <보고 또 보고>로 일일드라마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일일드라마로 이름을 알린 많은 작가들이 작업 환경이 편한 주말 및 미니시리즈로 자리를 옮기는 것과 달리 임성한 작가는 꾸준히 일일드라마를 집필했다.

임성한 작가는 2000년 일일드라마 <온달왕자들>과 아버지를 향한 복수극을 담은 <인어 아가씨>, 작가교체로 홍역을 치렀던 <왕꽃선녀님>을 히트시켰다. 물론 2005년 <하늘이시여>와 2011년작 <신기생뎐>, 은퇴 후 '피비'라는 필명으로 복귀한 <결혼작사, 이혼작곡> 같은 주말 드라마도 있었지만 많은 시청자들에게 임성한 작가는 '일일 드라마의 여왕' 이미지가 강하다.

전통적인 일일드라마의 강자 KBS와 스타작가 임성한을 앞세운 MBC에 밀려 '지상파의 막내' SBS는 상대적으로 일일 드라마에서 큰 힘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2008년 임성한 작가 못지 않은 걸출한 작가가 등장해 매일 저녁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모이게 했다. 무려 16주 동안 일일 드라마 시청률 1위에 올랐던 김순옥 작가의 SBS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이었다.

 <아내의 유혹>은 상대적으로 시청률이 낮았던 SBS 일일드라마를 지상파 3사 1위로 끌어 올렸다.
<아내의 유혹>은 상대적으로 시청률이 낮았던 SBS 일일드라마를 지상파 3사 1위로 끌어 올렸다.<아내의 유혹> 홈페이지

일일 드라마로 지상파 연기대상 2회 수상

1981년 아역배우 활동을 시작한 장서희는 1989년 MBC 19기 공채탤런트에 선발되며 성인 연기자로 데뷔했다. 장서희는 데뷔 초 <그 여자>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순조로운 커리어를 시작했다. 하지만 고현정과 심은하,고소영 등 또래 배우들이 스타로 도약하는 동안 장서희는 조연을 전전하면서 좀처럼 주목을 받지 못했다.

주로 착하고 단아한 캐릭터를 맡았던 장서희는 2002년 <인어 아가씨>에서 주인공 은아리영 역에 캐스팅됐다. 무명에 가까웠던 장서희가 주연을 맡으며 우려 속에 방송을 시작한 <인어아가씨>는 장서희의 엄청난 열연 속에 50%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MBC의 효자 드라마가 됐다. 장서희는 <인어아가씨>로 2002년 MBC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비롯해 5관왕을 휩쓸었다.

장서희는 <인어 아가씨> 종영 후 중국드라마 <경자풍운>에 출연했고 차승원과 호흡을 맞춘 영화 <귀신이 산다>도 289만 관객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2005년에 방송된 <사랑찬가>가 논란 속에 조기 종영된 후 장서희는 3년 간 공백기를 가졌다. 그렇게 <인어 아가씨>의 영광이 식어가던 2008년 장서희는 SBS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으로 컴백했다.

장서희는 <인어 아가씨>와 비슷한 장르의 복수극 <아내의 유혹>에서 자신을 버린 남편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 찬 구은재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고 <아내의 유혹>은 37.5%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닐슨코리아 시청률 기준). 장서희는 2009년 S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일일드라마(<인어 아가씨>,<아내의 유혹>)로 2개 방송국에서 연기 대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2010년 머리를 짧게 자르고 드라마 <산부인과>에 출연하며 변신을 시도한 장서희는 2014년 KBS 일일드라마 <뻐꾸기 둥지>를 통해 지상파 3사 일일 드라마를 섭렵했다. 2017년에는 <언니는 살아있다!>에서 <아내의 유혹>을 집필했던 김순옥 작가와 9년 만에 재회했다. 지금도 장서희의 팬들은 <인어 아가씨>와 <아내의 유혹>, <언니는 살아있다!>를 '장서희 복수 3부작'으로 부른다.

'아유월드' 속에선 모든 게 가능한 구은재

 장서희는 2002년 <인어 아가씨>로 MBC 연기대상, 2009년에는 <아내의 유혹>으로 SBS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장서희는 2002년 <인어 아가씨>로 MBC 연기대상, 2009년에는 <아내의 유혹>으로 SBS 연기대상을 수상했다.SBS 화면캡처

지금은 <왔다!장보리>,<내 딸,금사월>,<펜트하우스> 같은 히트작들을 보유한 스타작가가 됐지만 데뷔 초 김순옥 작가는 100부작이 넘는 일일드라마를 집필하기엔 경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김순옥 작가가 집필한 <아내의 유혹>은 평일 저녁 7시20분이라는 불리한 시간대를 극복하고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이변을 일으켰다.

사실 <아내의 유혹>은 'SBS 일일 드라마의 전설'과 '막장 드라마의 어머니'라는 평가를 함께 들을 만큼 온갖 막장 요소들이 가득하다. 특히 변우민이 연기한 정교빈은 아내의 친구 신애리(김서형 분)와 바람이 나서 아내를 물에 빠트렸고 다시 구은재가 (점 하나 찍고) 변신한 민소희의 유혹에 넘어가 불륜을 저질렀다. 게다가 정교빈은 도박으로 하루 아침에 회사 공금 200억을 날리기도 했다.

사실 지금이라면 지상파 방영이 어려운 소재들이 가득하지만 당시엔 빠른 전개와 자극적인 소재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역대급 '주인공 보정'을 받은 구은재는 죽다 살아난 후 "할 거예요, 해보겠습니다, 해볼게요"라는 말 이후 각종 외국어와 승마,골프,수영,사교댄스 등을 단기간에 마스터했다. 심지어 '아유월드'에서는 피처폰으로 찍은 사진의 화질이 DSLR 카메라처럼 선명하다.

<아내의 유혹>은 온갖 막장 요소에도 스피디한 전개와 통쾌한 복수, 배우들의 명품 연기가 더해지면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정교빈의 동생 정수빈(송희아 분)이 사고를 당하고 진짜 민소희(채영인 분)가 나타나는 후반부엔 '늘어지는 전개'를 피하지 못했다. 특히 신애리가 위암에 걸린 후에는 <아내의 유혹>이 가지고 있던 본연의 통쾌한 재미는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아내의 유혹>은 수많은 패러디를 통해 그 인기를 증명했다. <개그콘서트-봉숭아학당>에서는 장도연이 '민소매'라는 캐릭터로 등장했고 <무한도전-쪽대본 드라마 특집>에서도 <아내의 유혹> 패러디가 많이 등장했다.

"민소희!"만 외치면 부활하는 희대의 악녀

 <아내의 유혹>에서 김서형이 연기한 신애리는 대사의 절반 가량이 샤우팅일 정도로 엄청나게 화가 많은 인물이다.
<아내의 유혹>에서 김서형이 연기한 신애리는 대사의 절반 가량이 샤우팅일 정도로 엄청나게 화가 많은 인물이다.SBS 화면 캡처

1990년대 초반까지 청춘스타로 군림하던 변우민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슬럼프에 빠졌다가 2008년 <아내의 유혹> 정교빈을 통해 화려하게 재기했다. 정교빈은 아내의 친구와 바람이 나 조강지처를 죽이려 했던 최악의 남편으로 바람기에 도벽까지 있어 집안을 제대로 말아 먹는다. 평소 "나 같은 놈은 죽어야 돼"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정교빈은 마지막회에 정말로 바다에 빠져 죽었다.

김서형이 연기한 <아내의 유혹>의 악녀 신애리는 민소희로 변신한 구은재에게 모든 걸 빼앗기고 당하면서도 독기에 찬 눈으로 "민소희!!"를 크게 외치면 다음회에서 거짓말처럼 살아난다. 정교빈의 바람기를 두고 '고칠 수 없는 병', '하자가 있어 환불하고 싶다'고 비난하지만 정작 자신도 정교빈의 바람기를 이용해 천지건설 며느리에 올랐기에 시청자들의 동정을 받지 못했다.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와 드라마 <그 여름의 태풍>,<돌아와요 순애씨> 등에 출연했던 이재황은 <아내의 유혹>에서 민현주(정애리 분)의 양자이자 민소희의 양오빠 민건우 역을 맡았다. 민건우는 뛰어난 능력과 다정하고 정의로운 성격을 겸비한 인물로 정교빈과 반대편에 있는 선역 주인공이다. 바다에 빠진 구은재를 구하고 구은재의 복수에도 많은 도움을 줬다.

KBS 아나운서 출신으로 퇴사 후 프리랜서로 활동하던 오영실은 <아내의 유혹>에서 정하늘을 연기하면서 배우로 데뷔했다. 정하늘은 막장극인 <아내의 유혹>에서 천진난만한 성격과 행동으로 시청자들에게 따뜻한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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