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가 신의 뜻이라는 목사...음모론 판치는 세상 향한 경고

[리뷰] 넷플릭스 영화 <계시록>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음모론자는 멍청하고, 사회에서 고립됐고, 무능력할까? 셋 다 틀렸다. 책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에 따르면 '지구 평평론자'들은 다양한 인종과 계층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중에는 유명인이나 고학력자도 더러 있다. 의외로 음모론을 믿는 것과 지능은 상관관계가 낮다. 관건은 인식 체계의 오류다.

그들은 자신의 감각 체계를 지나치게 신뢰하며 동시에 합리적인 의심을 하지 않는다.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이 정답이라 믿으며 순식간에 신의 위치에 도달해 평범한 사람들은 모르는 '진리'를 깨우쳤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쩌나, 그 진리가 '음모론'인 것을. 각자의 오류에 빠져 허우적대는 인물들을 그린 넷플릭스 <계시록>, 분명 삶은 무작위한데 누군가는 패턴을 본다.

"당신을 죽일게, 신께서 '계시'를 주셨어"

 넷플릭스 <계시록> 스틸컷
넷플릭스 <계시록> 스틸컷NETFLIX

'민찬(류준열)'은 개척 사명을 받고 작은 마을에서 교회를 운영하는 목사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척박한 땅을 가꾸는 순박한 농부보다 강매를 권하는 영업사원에 가깝다. 성도 명부에 등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서류 작성을 요구하는 민찬은 오늘도 길 잃은 양을 발견했다. 단지 그 양이 전자 발찌를 착용한 '양래(신민재)'라는 것이 신경 쓰이지만, 하느님은 죄인도 사랑하지 않던가.

양래와 짧은 만남을 가진 민찬에게 전화가 온다. 아들이 실종됐다는 아내의 말에 그는 허둥지둥 사무실을 헤매다가 '신의 계시'를 발견한다. 천장에서 새는 빗물에 번져 양래의 사진이 악마처럼 변한 것이다. 겨우 이것 하나에 민찬은 양래를 납치범이라 확신하며 뜻하지 않게 절벽에서 민다. 그러나 아들은 멀쩡히 살아 있었다.

실제로 실종된 건 민찬의 교회에 다니는 학생이었고, 용의자는 양래다. 그 순간부터 사람을 죽였다는 민찬의 죄책감은 죄인을 처단해야 한다는 신자의 의무감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그래서 모든 우연의 일치를 신의 뜻이라 생각하며 양래를 완전히 삭제하기로 한다.

그는 우연히 방문한 양로원에서 초주검 상태인 양래를 발견한다. 항상 지겨웠던 봉사활동을 오랜만에 가고 싶었던 것도, 그곳에서 양래를 발견한 것도 모두 죄인을 처단하라는 '성령 부으심'이 아닐까. 다시 신의 계시에 감격한 민찬은 "나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이라며 양래를 폐건물로 납치한다.

이번에는 건물 벽면에 적힌 아리송한 숫자에 맞춰 <신명기>를 펼치니 '유인한 사람을 죽이라'고 적혀 있다. 자신을 악행으로 이끈 것은 양래이니, 역시 죽이는 것이 주님의 뜻인가 보다. 아무리 양래가 "나를 살려주면 납치한 학생의 위치를 알려주겠다"고 해도 민찬은 "어차피 죽었을 것"이라 확신하며 계속해서 그를 없애도 되는 명분을 만든다. 그렇게 민찬의 총구가 양래를 향한 순간, 한 사람이 나타나 저지한다.

세상에 더 나은 음모론은 없다

 넷플릭스 <계시록> 스틸컷
넷플릭스 <계시록> 스틸컷NETFLIX

'연희(신현빈)'는 형사이자 범죄 피해자다. 과거 양래가 그의 동생을 납치했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자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희를 추동하는 건 죄책감이다. 그는 동생의 환각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나를 왜 구하러 오지 않았냐"는 환청을 듣는다.

민찬이 신의 이름을 빌리며 살아간다면, 연희는 동생의 환영에 따라 움직인다. 진로가 유망하던 경찰대생이 굳이 형사계에 자원한 것도, 현실과 동떨어진 채 피폐하게 살아가는 것도 동생의 환영이 말하는 대로 행동한 결과다. 그가 진짜 동생이 아님을 알면서도 연희의 믿음은 굳건하다. 죽은 동생이 다시 살아온다면 분명 자신을 탓할 거라 생각한다.

민찬과 양래가 대치할 때 연희는 형사의 감을 살려 그들을 발견한다. 안타깝게도 탈출을 도모하던 양래가 건물 밖으로 떨어지게 되고 납치된 피해자의 위치는 오리무중이다. 거기에 점점 심해지는 동생의 환각은 연희를 더 괴롭게 만들 뿐이다. 현실이 아닌 가짜에 압도된 그를 돌아오게 한 것은 "보이는 것만 보아야 한다"는 의사의 조언이었다.

차분하게 증거를 복기하던 연희는 자신이 죽은 동생의 모습에 시달렸던 것처럼 양래도 조작된 믿음에 괴로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양래는 어린 시절 학대당하며 자랐고 당시 집에 있던 둥근 모양의 창문을 '외눈박이 괴물'이라 믿게 됐다. 실존하지 않는 괴물을 평생 무서워하며 양래는 무의식중에 피해자를 둥근 창이 있는 건물로 납치한 것이었다. 연희는 무사히 납치 현장을 발견하게 되고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된다.

<계시록> 속 인물들은 각기 다른 믿음을 맹신하며 살아간다. 민찬은 하느님을, 연희는 귀신이 된 동생을, 양래는 어릴 적 트라우마를 믿는다. 다른 것처럼 보여도 그들은 본질적으로 같다. 모두 사태의 원인을 하나의 대상에서 집요하게 찾기 때문이다. 극 중 정신과 의사의 말처럼 불행한 일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복합적인 원인에서 발생하는데도 사람들은 편의를 위해, 정확히는 살아남기 위해 이유를 만든다.

현실 세계가 불안정할수록 음모론은 판을 친다. 그래서 누군가는 지구가 평평하고, 인류가 달에 간 적이 없고, 투표가 조작됐다고 믿는다. 그러나 아무리 믿어도, 설령 믿는 쪽수가 늘거나 공신력 있는 사람이 맞장구쳐도 거짓이 사실이 될 수는 없다. 생각보다 삶의 엔트로피를 예측하는 건 어렵고 세상사 방향을 아는 건 더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견디지 못해 가짜 믿음을 만들고 기어코 맹신할 때 당신도 작품 속 주인공처럼 음모론을 양산할지 모른다. 어떠한 반증도 허락하지 않는 사람과 사회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계시록>. 자꾸만 한국 사회가 연상되는 건 나의 착각일까, 연상호 감독의 계시일까.

 넷플릭스 <계시록> 메인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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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계시록 류준열 신현빈 신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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