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트리밍>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02.
"그에게는 그저 놀이고 게임이겠지만, 죽어가는 여자에게는 지옥일 뿐입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온라인 스트리밍 방송, 개인 방송 플랫폼이 안고 있는 민낯과 점차 더 극단적인 방법으로 도파민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시대의 문제를 고발하고자 한다. 사실과 관계없는 억측과 루머, 허위 근거로 일방적인 공격을 일삼는 소위 '사이버 레커'는 물론 수위를 넘나드는 노출과 폭력성으로 수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BJ들의 욕구가 전체 설정의 근간이 된다. 이를 조금 더 극적으로 구조화하기 위해 마련하게 되는 것이 WAG라는 극 중 플랫폼의 수수료 정책과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마틸다의 모습이다.
우상이 활동하고 있는 플랫폼 WAG의 수수료 정책은 기본적으로 5:5로 설정된다. 시청자가 후원하는 금액('딱지'라는 이름으로 불린다)의 절반이 수수료로 플랫폼 회사에 귀속되는 것이다. 하지만 주간 1위를 달성한 BJ의 경우에는 수수료 없이 100% 전액 자신이 가져갈 수 있게 된다. 홍보 과정에서 플랫폼이 강조하는 슬로건 역시 'Winner takes it all'. 심지어 매주 1위가 교체될 수 있는 구조다 보니, 방송을 진행하는 BJ의 입장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1위를 하고, 또 1위를 지켜내고자 하는 욕망의 덫으로부터 빠져나오기 힘든 구조 속에 갇히게 된다.
영화 초반부 우상의 재연극의 도우미로 나서는 마틸다의 모습 또한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아직 인기도 없고, 시청자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신입 BJ로서 플랫폼의 최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는 우상의 방송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는 놓칠 수 없는 시간이다. 이 기회로 자신의 채널을 알려야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우상의 방송을 방해하면서까지 자신이 나서려고 하고, 실제로 죽을뻔한 상황까지 이르게 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이유다. 이 모든 것이 플랫폼에서의 성공, 수수료율을 낮추며 얻을 더 큰 수익에 목적이 있다.
03.
기본적 설정과 초반부의 이야기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시스템과 개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욕망이라면, 중반부를 지나는 시점부터는 콘텐츠 자체가 가진 문제와 믿음이나 신념과 같은 인간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선의와 맞닿아 있는 가치관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마틸다가 사라지고, 그를 스토킹하던 진성(강하경 분)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면서부터다. 끊임없이 마틸다를 괴롭히던 스토커 진성이 연락을 끊은 시점과 마틸다가 사라진 시점이 겹친다는 사실은 그를 또 다른 범인(처음 우상이 쫓던 연쇄살인범이 아닌 마틸다를 납치했다고 의심되는 범인)으로 여기게 만든다.
이중적 구조다. 옷자락 살인마라는 연쇄살인마를 쫓는 과정 안에서 마틸다의 납치라는 또 다른 사건의 발생한다. 이를 플랫폼과 시스템이라는 논점으로 옮겨다 놓으면, 수수료와 관련한 부정적 욕망을 부추기는 플랫폼 사업안에서 발생하는 문제 및 폭력으로 치환할 수 있다. 두 레이어는 구조적으로 닮았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부분이지만, 이 두 지점은 하위 사건의 해결로 상위 사건을 뿌리 뽑을 수 없다는 점에서도 서로 비슷한 점이 있다. 그리고 영화는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지점을 두 사건의 연결고리로 삼으며, 마틸다의 행방을 찾는 문제가 옷자락 살인마의 행적과 같은 방향을 향할 수 있도록 만든다.
▲영화 <스트리밍> 스틸컷롯데엔터테인먼트
04.
"내가 기회를 줄게. 니 입으로 해명할 기회. 니 입으로 사과할 기회."
결과적으로 마틸다의 실종 사건은 자신의 채널을 소위 떡상시키고 큰돈을 벌어보겠다는 욕심으로 비롯된 주작임이 밝혀진다. 하지만 한 번의 거대한 소동으로 방송이 벌어들인 금액은 15억이 넘어가고, 그 과정에서 보이게 된 우상의 쇼를 지켜본 이들이 수만 명을 넘어갔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비단 인기와 수익에 발목 잡힌 창작자들만의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익명성에 기댄 시청자들의 날 것 그대로의 반응과 조롱에 가까운 모독은 '스트리밍'이라는 것이 기술적인 의미로만 양방향 소통을 말하는 것은 아님을 깨닫게 만든다. 그에 따른 책임과 상실되어 가는 인간성에 대한 의무 또한 양쪽 모두에게 존재해야만 할 것이다.
앞서 짧게 언급했지만,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강하늘이라는 배우의 단단한 연기다. 과거 뮤지컬을 통해 장시간 연기를 지속해 내는 경험을 했던바, 이번 작품에서도 러닝타임 내내 쉬지 않고 계속해서 때로는 불량스러운, 또 비겁한 자신에게 주어진 인물을 십분 그려낸다. 조금도 위화감이 없는 그의 BJ 연기는 이 작품을 보는 내내 영화가 아니라 실제 스트리밍 방송을 보는 듯한 기분마저 느끼게 할 정도였으니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선택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스트리밍 방송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고, 또 분별할 수 있는 시각과 태도를 지닐 수 있길 바란다고 밝힌 조장호 감독. 그의 말처럼, 벌써 우리의 삶 속에 익숙하게 자리 잡은 하나의 장면이 아닌 도덕적 한계를 잃어가는 기형적인 모습의 자극과 경쟁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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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