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02.
"지금껏 우리가 견뎌준 게 얼마니? 내가 보기엔 너한테 필요한 건 관심이야 관심. 우리도 도와주고 있잖아."
영화의 중심에 존재하는 인물은 수진(오우리 분)이다. 전날 술 마시다 눈이 맞아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된 문정(백진연 분) 때문에 마음이 복잡하다. 그의 몸으로부터 초록빛이 쏟아져 나왔던 기억으로 인해서다. 대학 동아리 친구들은 온갖 가스라이팅으로 가득했던 지난 연애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되려 그를 나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누구에게도 공감받지 못하는 수리의 마음과 학교 축제 준비로 분주한 친구들의 소란스러움 위로 등장한 UFO 하나. 모두의 가슴이 하나둘 터져가기 시작한다.
사실 이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극 중에 등장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인물 하나를 포착해 낼 필요가 있다. 정은(강채윤 분)을 비롯한 여러 인물의 대사를 통해 제시되는, 수진의 전 연인 호연이다. 인물 간의 대사를 통해 드러나는 모든 관계를 고려할 때, 그는 동아리의 중심에 서 있는, 친구 사이의 권력 구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인물처럼 보여진다. 정은과 같은 다른 친구들에게도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수진이 연인인 호연에게 휘둘리는 대상이었을 것임은 쉽게 추측해 볼 수 있는 부분. 그런 관계에서 시작된 상처가 수진에게 아직 남아있는 셈이다.
주변 인물들의 은근한 공격적인 태도, 수진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호연의 편을 들고 있다거나, 자신들이 곁에서 힘이 돼주고 있음을 생색내고 강요하는 모습은 호연을 떠난 이후에도 수진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잔재로 남는다.(수진의 사정보다 눈앞의 이온 음료에 더 집착하는 한 남학생의 모습도 마찬가지.) 예전에는 이상한 애라고, 핑계 대지 말라며 몰아치더니 지금 와서 상황마다 달라지는 것이니 자신들의 말과 행동에 의혹을 갖지 말고 과거에서 벗어나라는 말도 같은 맥락 위에 있다.
03.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이야기 바깥에서 형성된 어긋난 집단의 구조(관계)와 개인의 내면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확인 비행물체(UFO)의 등장은 이를 위한 사건에 해당된다. 이 과정에서 제시되는 사람들의 가슴이 터지는 이유.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 강한 중력과 자기장 때문에 기압을 이기지 못한다는 내용은 이를 극적으로 완성하기 위한 설정으로 후반부 문정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되는 이유와 연결된다. 강인한 마음과 또렷한 사랑이다.
정은을 비롯한 대학 친구와 문정, 대비되는 양쪽의 서사를 이미지적으로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감독이 선택하는 방식은 색감이다. 정은과 친구들은 주로 분홍색으로 표현되는 반면, 문정은 초록색으로 그려진다. 지구를 침공한 UFO 역시 핑크 계열의 색상으로 보여지고 이를 물리치기 위한 무기의 에너지원은 다시 초록 계열이 되는데, 각각의 표현은 일그러진 사랑과 순수한 사랑, 물리쳐야 하는 대상과 지켜내야 하는 것으로 서로 연결된다. 일반적으로 사랑이 분홍색의 이미지를 갖게 되는 점을 조금 비틀어낸 듯 보인다.
극이 보여주는 전체적인 흐름, 부정적인 상황에 놓여 있던 인물이 어떤 사건을 통해 긍정성을 회복하는 과정은 전형적인 구조에 해당된다. 앞서 언급했던 색채감처럼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는 곳곳에서 분명히 시도되고 있다. 흐름의 방식에서, 인물의 행동양식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이 작품의 이색적인 '톤 앤 매너'를 형성할 수 있게 만들고, 이는 나아가 전형성을 감출 수 있도록 만드는 요인이 된다.(탈피는 아니다.)
▲영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 스틸컷인디그라운드
04.
"애들한테 호감 얻으려고 나 자신을 속여야 하는 거면 나도 너네들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아."
설명한 부분 외에도 이 작품에는 흥미로운 구석이 꽤 많다. 퀴어 영화를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적극적인 표현은 시도되지 않고 있고, 가슴이 터진다는 설정은 장르 상 고어 쪽에 가까워 보이지만 실상은 솜뭉치가 터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작품이 장르적으로 표현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의도적으로 설정한 방향성으로 보인다. 사랑의 양면과 개인의 심리와 정신, 미확인 비행물체라는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는 소재가 서로 뒤섞이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지점은 역시, '단단한 마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이뤄내는 것'에 있을 테니 말이다.
영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는 깊이 들여다볼수록 더 다양한 심지가 발굴되는 작품이다. 빠르고 정신없는 외형에 휘둘리지 않고 그 껍질 안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지를 관객들이 찾아내는 재미를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이 세계에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확인 비행물체를 격추하는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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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