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집'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틱톡' 사용자들의 모습
'계집'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틱톡' 사용자들의 모습X 계정(@rock9irl)

 '계집'이란 단어를 유행어로 인식하는 모습
'계집'이란 단어를 유행어로 인식하는 모습tiktok

(*이 기사는 시리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SNS(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을 따라가다가 놀랐다. 여성 연예인에 대한 게시글이었는데, 그를 '계집'이라 칭하며 성희롱과 여성혐오가 담긴 댓글들이 가득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말을 남기는 걸까. 한 계정을 클릭하니 10대 남성 청소년으로 추정되는 일상 사진이 보였다. 다른 계정을 클릭해도 비슷했다. 모두 남자아이들의 소행이었다.

당시에는 우연이라 넘겨짚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10대들이 사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비슷한 고민 글이 올라왔다. SNS 상에서 여성을 조롱하는 목적으로 '계집'이란 단어가 유행어처럼 쓰인다는 거였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쓰는 틱톡·인스타그램·유튜브를 살펴보니 곳곳에 '계집'이란 단어가 보였다. 평범한 사진에도 '계집'이라 댓글을 남겨 상대 여성을 비하하고 깔보는 것이 일종의 문화로 자리 잡은 듯했다.

실제로 10대 남성들 사이에서는 SNS를 통해 '계집신조'라는 글이 대거 공유됐다. '여자가 낼 수 있는 소리는 설거지할 때 물소리와 서방님 밤일 돕는 소리', '여자는 남자가 부르면 주인님이라 대답해야 한다' 등 여성을 비인격적으로 하대하는 발언이 마치 따라야 하는 준칙처럼 묘사됐다.

이제 아이들은 어른들의 감시망을 피해 SNS에서 여성혐오를 학습·생산하고 있다. 그들은 사진, 이모티콘, 유행어에 여성을 향한 일그러진 상을 담아낸다. 그 아래에는 어른의 시선으로 읽을 수 없는 혐오의 맥락이 흐른다. 과연 우리는 '여혐'하는 아이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를 이해하고자 넷플릭스 <소년의 시간>을 틀었다.

평범한 남자애는 '여성혐오' 범죄자였다

 넷플릭스 <소년의 시간> 예고편 화면 갈무리
넷플릭스 <소년의 시간> 예고편 화면 갈무리넷플릭스

주인공 '제이미'(오언 쿠퍼)는 평범한 13세 남자아이다. 학업 성적이 뛰어나고 변호사와 이야기할 때도 지적 능력을 드러낸다. 다만 걸리는 건 그가 개인 SNS 계정에 나체 모델들의 사진을 리포스트(인용)하고 부정적인 댓글을 남겼다는 것이다. 또한 남자 친구들밖에 없고 여자아이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한다.

이렇게 보면 성(性)에 눈뜬 사춘기 소년 같다. 하지만 그는 같은 수업을 듣는 여학생을 살해했다. 부엌칼로 신체를 7번이나 찔렀고 가슴, 목, 허벅지를 노렸다. 그러나 범행 동기가 모호하고 범행 도구조차 찾아볼 수 없다. 결국 형사 '루크'(애슐리 월터스)는 제이미가 다니는 학교에 직접 방문한다.

학교는 요란스럽다. 학생들은 SNS를 하기 바쁘고 선생님이 훈계해도 "닥치세요"라 답한다. 뒤죽박죽 10대 아이들에게 공통으로 발견되는 건 여성과 연애에 대한 의아한 인식이었다. 여학생과 남학생이 다투자, 아이들은 카메라로 촬영하며 "지금 여자애한테 맞은 거냐"고 조롱하고, 형사와 만난 제이미의 친구는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도 "학창 시절 때 여자한테 인기 많았냐"고 묻기 바쁘다.

정작 사건에는 묵묵부답인 학생들로 인해 수사는 난항을 겪는다.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때 형사의 아들이 찾아온다. 제이미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그는 "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며 형사인 아빠에게 청소년의 SNS 문화를 설명한다.

어른들이 보기에 평범한 이모티콘들은 알고 보니 여성을 향한 10대 남성들의 증오 표현이었다. 연애 상대를 구하지 못하는 무능한 남성을 뜻하는 '인셀', 20%의 남성이 80%의 여성을 차지한다는 20:80 법칙, 여성이 남성을 이용하는 세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레드필 이론' 등 어린 남성들의 엇나간 욕망은 SNS에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제이미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실마리를 푼 형사는 제이미의 SNS 속 '여성혐오'를 발견한다.

여성을 혐오하는 제이미의 심리는 상담사를 만나자 증폭된다. 그는 '여자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들을 좋아한다"고 말하며 "예전에 여자애들이 가슴을 보여줘서 만진 적이 있다. 걔네는 나의 성기를 만졌고 좋아했다"며 으스댄다. 모두 거짓말이다. 제이미는 제대로 된 이성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다.

또한 그는 자신이 살해한 피해자의 노출 사진을 본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과거 한 남학생이 피해자에게 노출 사진을 요구했고 SNS에 퍼뜨려 모두가 봤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이미는 자신도 사진을 봤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더 이상 다른 여자애의 사진을 받지 못하는 남자애가 '등신' 같다"고 비꼰다.

해당 사건 이후 제이미는 피해자에게 접근해 데이트를 신청했다고 덧붙인다. 이유를 묻는 상담사에게 돌아온 답은 섬찟하다. "모두가 '걸레'라 생각하니까 그 아이가 약해졌다고 판단했다." 심리적으로 약해진 여자는 얻기 쉽다는 '이론'에 따라 데이트를 신청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는 거절했고 제이미는 그를 살해했다. 그럼에도 "다른 남자애들이라면 피해자의 몸을 만졌을 텐데 나는 그러지 않았기에 더 나은 사람"이라 변명한다.

남자 변호사나 남자 경찰에게 깍듯하던 제이미는 여성 상담사에게 장난을 치며 만만하게 대한다. 그러다 상담사가 자신보다 우위라는 생각이 들면 의자를 집어 던지며 "당신은 나를 통제 못 한다"고 분노하고 "내가 소리 지르니까 무섭지 않았냐, 어린 남자애한테 겁먹은 게 쪽팔리지 않냐"고 조롱한다. 여성을 무시하는 제이미의 태도는 SNS를 넘어 현실 공간까지 침투했다.

여성혐오는 SNS를 먹고 자란다

 넷플릭스 <소년의 시간> 예고편 화면 갈무리
넷플릭스 <소년의 시간> 예고편 화면 갈무리넷플릭스

극 중 모든 어른들을 고민에 빠지게 만든 지점은 아이들의 여성혐오가 SNS에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달고 사는 아이들을 부모와 교사가 감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뿐만 아니라 제이미의 SNS를 올바르게 해석하지 못한 형사처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청소년 문화를 어른이 독해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어른들은 SNS의 영향력을 간과한다. <소년의 시간>에서 언급된 앤드루 테이트는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며 남성의 지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여성혐오자다. 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인물임에도 그는 SNS에서 막강한 '인플루언서'로 자리매김해 2023년 구글 '올해의 검색어' 인물 부문 3위를 차지했다. 약 9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를 팔로우하는데, 대다수가 제이미처럼 어린 남자들이다.

어른들이 방심한 사이에 아이들은 더 많은 혐오를 먹어 삼킨다. AI 기술을 활용해 여성의 신체를 음란물과 합성하고 SNS를 통해 유포하는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 중 약 76%가 10대였다. 어쩌면 한국 사회 전체가 <소년의 시간> 속 어른들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청소년의 여성혐오를 방관하는 걸지 모른다. 한때 아이들이 남긴 '계집' 댓글을 무심코 지나쳤던 나부터 반성한다.
넷플릭스 소년의시간 NETFLIX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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