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인구단 리부팅: 야구장 속 여성의 자리는 어디인가> 표지
턱괴는 여자들
최초의 대학 여자야구부도 그렇다. 지난해 필자는 국민대와 장안대가 한국 최초로 대학 여자야구부를 창단한다고 보도했다(관련 기사 :
국민대-장안대, 국내 최초 '대학' 여자야구팀 창단 준비 중 [여자야구 현주소(29)]). 당시 X(구 트위터)에서 큰 이슈가 되며 해당 기사가 6300회 이상의 리트윗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 이들은 최초가 아니다. 오보였다. 이 또한 기록이 거의 없어 최초인지 여부는 확실치는 않으나, 나주대학교에서 2006년 대학 여자야구부를 창단했다. 해당 기록은 2007년 <나주신문>에서 보도한 기사로 남겨져 있다(관련 기사 :
나주대학 여자야구부, 전국대회 석권 < 역사 교육 < 뉴스 < 기사본문 - 나주신문). 비록 나주대 여자야구부는 학생 모집 실패로 소리 소문없이 사라졌지만, 이들은 국민대·장안대보다 20년 먼저 대학 여자야구부를 창단했다. 이 자리를 빌려 잘못된 사실을 보도한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
필자에게 이 점을 지적한 이는 여자야구 연구 사례집 <외인구단 리부팅: 야구장 속 여성의 자리는 어디인가>(2022)를 펴낸 '턱괴는 여자들'의 정수경·송근영씨였다. 두 사람은 "나주대학에서 예전에 여자야구팀을 창단했다"고 귀띔해준 뒤 "기록되지 못한 이들의 역사가 지워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들 역시 고군분투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한 이들이 아닌가"라고 했다. 필자의 오보로 인해 나주대학 여자야구부의 역사와 그곳에서 용기를 품고 악전고투 해온 야구부원(김주현·김혜점·정이슬·김수미·박정희·김여름·이유영·이민정·이오영·조혜미·박형옥·이정옥·손금순,·박금주 등)이 지워졌음을 깨닫고 부끄러워졌다.
기록이 정확히 남아있지 않은 것 자체가 한국 여자야구 현주소를 그대로 나타낸다. 관심이 없으니, 누가,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왜 일본에 진출했는지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누군가의 개척정신과 피, 땀은 역사에 남지 못했고, 지워졌다.
'기록화'의 중요성이 드러나는 사례이기도 하다. 한국 여자야구가 실업·프로팀 없이 순수 아마추어 사회인 야구팀으로만 구성돼 있다 보니, 2007년 창설된 한국여자야구연맹 역시 해외에 자발적으로 진출하는 선수들을 기록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듯 하다. 또한 언론 역시 '여자야구'에 관심 갖지 않으니 뒤늦게 등장한 '여자야구 간판' 김라경이 일본 진출을 앞두자 제대로 기록을 찾아보지 않고 '최초' 타이틀을 붙였고, 대학 여자야구팀이 창단된다고 하자 또다시 '최초'를 언급했다.
'최초'가 누구인지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것이 아니다. 김라경이 일본 무대에서 세울 1승이 비록 한국 선수 '최초'가 아닐지라도, 그 의미는 퇴색되지 않는다. 김라경의 기록은 그 자체로 주목받고, 보도되고, 박수 받아야 한다. 마치 한국인 '27호' 메이저리거 이정후(27·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안타와 홈런이 그 자체로 가치 있고 매일 화제 되는 것과 같다. 다만, 누군가의 피나는 노력이, 조명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래서 기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워져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한국 여자야구 최초의 기록들을 '바로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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