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아들에게> 포스터
극단 미인
억압받던 시절, 잊힌 선인들을 기억할 수 없을까.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일제 치하에서 고통받고 살아야 했던 이들이 해방감을 누린지 어느덧 여든 해가 흘렀다. 해방둥이라 불렸던 선친이 살아있다면 당시의 기억을 내게 들려줬을지 모른다. 매해 반복되는 역사의 흔적이지만, 타이틀이 주는 무게 때문에 한 번 더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안창호와 안중근 같은 위인들은 공연예술계에서 흥행 보증수표와 같이 단골손님으로 종종 등장한다. 마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명언(?) 때문인지 우리는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 인물들'로 이런 영웅들을 출연자의 첫 줄에 올리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사에서 역동의 중심에 섰던 19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조선 말미의 혼동이 온 나라를 뒤덮고 일본의 거센 압박이 밀려온다. 아마도 당시의 한반도에는 정치와 이데올로기에서 사상의 흔들림이 쓰나미처럼 밀려왔을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일본이 세력을 펼치면서 서로 다른 신념이 온 나라를 휘몰아쳤다. "일본의 속국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목표는 같아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서로 다른 이념은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다시 세월이 흘러 2025년은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 준비로 여념 없다. 아마도 이런 의미를 담아 올해도 예년에 등장했던 주인공들이 다시 무대를 장식할지 모른다. 그런데 양날의 검처럼 동전의 앞면이 아니라 뒷면의 인물은 왜 등장하지 않을까?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김구 선생은 알고 있는데,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쳤지만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책장에서 사라진 이들은 없을지 말이다. 냉전시대의 이분법 논리에서 살아남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기억 속에서 잊힌 이들을 꺼내보는 시도가 궁금하다.
이번에 소개할 연극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던 독립운동의 페이지를 장식했던 한 여성의 이야기다. 다만 독립운동이 주는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당시의 정치·사회·관습적 억압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처절한 한 여인의 인생사다.
부제가 왜 '미옥, 앨리스 현'인가
<아들에게>(부제: 미옥, 앨리스 현)
1903년 하와이에서 태어나 중국과 일본에서 공부했으며, 이후엔 중국, 러시아, 미국을 오가며 독립운동과 공산주의 운동을 했던 현미옥(앨리스 현)의 이야기이다. 공산주의였기에 남한과 미국에서는 설자리가 없었다. 게다가 북한에서는 미국간첩 혐의로 숙청 당했다. 이 작품은 끝없이 자신의 의지로 수많은 길을 떠났던 현미옥을 박 기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인터뷰한다. 결국 둘은 서로를 인정하고 세대와 성별 등 다양한 이들과 이해를 구하며 공존을 생각한다.
오는 30일까지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아들에게>(작 구두리, 연출 김수희)에 관한 배경 설명을 듣자 몇 개의 기억이 뇌리를 스친다. 이 연극의 부제는 '미옥, 앨리스 현'이다. 지금은 부제로 남았지만 2021년 대학로 여행자극장에서 펼쳐진 낭독공연의 이름이 원래 이랬다.
한국이름은 현미옥. 그는 미국 하와이에서 노동자들의 목사로 활동하며 상해에서 임시정부 수립 당시 독립운동을 펼쳐 건국훈장을 받은 현순(1880~1968)의 실제 딸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 미녀 스파이로 잘 알려진 '마타하리'와 같이 기구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일까. '한국판 마타하리'의 수식어가 그녀를 따라붙었으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평양에서 처형된 '앨리스 현(1903~1956)'의 삶에 관한 내용이다.
연극 소개를 보자 내게 흥미를 끌었던 이름은 '현순'이다. 그에겐 '앨리스 현' 말고 아들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피터 현'(1906~1993). 아직도 이름을 뚜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가 2017년 시즌 프로그램으로 공개한 <에어콘 없는 방>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는데, '피터 현'의 실제 아들(더글라스 현)을 직접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부재'라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겠지만 하와이에서 태어나 한국·상하이·미국을 떠돌며 역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겪었던 남매의 처절함을 잊지 못한다.
당시에 서울문화재단과 극단 백수광부가 함께 제작한 <에어콘 없는 방>이 한국 근현대사에서 자기 분열적 생을 다룬 '피터 현'을 보여줬다면, 극단 미인의 <아들에게>에서는 누나인 '앨리스 현'의 기구한 일생을 엿볼 수 있다는 사실에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러나 <에어콘 없는 방>과 <아들에게>는 독립운동이 초점이 아니다. 더욱 일제강점기에서 정치사에 항거하는 메시지에 집중하지도 않았다. 아버지인 현순 목사가 건국공로자로 추서되고 국립묘지 안장행사를 위해 피터 현은 해방 이후 30년 만에 고국을 찾았다. 1975년 8월 7-8일 유신호텔 503호를 배경인 <에어콘 없는 방>은 당대의 한 인간이 겪었던 시대적 흐름과 인생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되묻는다. <에어콘 없는 방>은 독립운동이라는 거대사가 아니라 1900년대 초반 3.1운동 당시 조선, 1936년 대공황을 맞은 뉴욕, 1945년 9월 미군의 남한 진주, 1945년 해방 이후 혼란기 남한, 1953년 휴전 협정의 한국, 1975년 유신 정권하의 서울까지 피터 현이 걸어온 근현대사가 담겼다.
그런 의미에서 <아들에게>도 몇 가지 부분에서 묘하게 겹쳐 보인다. 미국 시민권자 1호의 타이틀을 얻은 앨리스 현은 지식인으로 삶을 살았지만 사회와 가정 어디에서도 순탄한 일생을 살지 못하고 처절하게 생을 마감했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고 살아온 배경의 영향을 받아 공산주의 이념을 받아들인다. 미국과 일본, 중국, 남한과 북한 등 어디에서도 정착하지 못한 그의 인생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이처럼 독립운동이 배경이 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한 여인의 삶을 무대 위로 소환한 배경에는 어쩌면 극단 미인 김수희 연출가의 우연한 발견 덕분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그가 <소년 B가 사는 집>, <말뫼의 눈물>, <공장>, <아버지들> 등을 통해 오랫동안 영감을 얻어왔던 소재와 분명 일치했을 것이고, 또한 그의 집요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한 여성의 빛바랜 기억이 책장의 먼지를 털며 세상으로 나왔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간 한 여성의 삶
▲왼쪽부터 피터 현, 앨리스 현, 현순(로스앤젤레스, 1948년) ⓒ David Hyun
David Hyun
<아들에게>는 2024년 연극계를 가장 뜨겁게 달궜다. 제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백상연극상과 연기상 등 2개 부문에서 수상했으며, 월간 한국연극이 선정하는 '2024 공연베스트 7'에 오를 정도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렇게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장기적인 지원도 한몫 했다. '극단 미인'은 지난 3년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안정적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2021년에 낭독공연에서 첫선을 보인 이래 '2023년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신작'에 선정됐으며 최근에는 공연예술중장기 창작지원사업을 통해 안정적으로 무대화를 보장 받았다. 실제로 지난해 1월 13일~21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첫 번째 공연 이후, 이번에는 2차 제작지원으로 오는 30일까지 재공연에 나선다.
1956년 함경북도 청진 해안, 복면을 쓴 채로 누군가에 이려온 미옥은 미국 간첩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면서 바닷속에 내던진다. 상황이 정리된 후 미옥 앞에는 한 남자가 그에게 취조하듯 질문한다. 그를 인터뷰하겠다는 남자는 자신을 박 기자로 서로를 통용한다.
연극은 박 기자와 미옥의 관점과 이야기를 통해 미옥의 출생부터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전 인생을 뒤쫓아간다. 시대에 굴복하고 사회의 편견에 항거하지 않는 미옥은 당시에는 드물었던 여성상인 모습을 갖고 있다. 미국에서 부모의 영향으로 많은 것을 누리며 자랐던 탓에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독립운동에 뛰어든다. 일본에 공부하러 가서 만난 연인과 결혼하며 자식을 갖지만 자신의 신념과 충돌하는 시집살이를 견디지 못한 채 다시 하와이로 뛰쳐나온다.
연극 <아들에게>는 '여성', '노동', '공산주의' 등 세 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사상과 이념이 달라서 세상의 기억이나 기록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린 여성운동가를 찾아낸 과정을 통해 사회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한 여성의 잃어버린 삶을 재조명한다. 작품은 일제강점기와 해방의 시기를 겪으면서 개인과 국가 사이의 정치적 이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한 여성의 삶이 어떤 지 100년 후의 관객에게 보여준다.
개인적 신념이 있지만 국가적 상황에 묻혀 어떻게 해야할 방법을 찾지 못했던 앨리스 현. 하지만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자신의 신념을 향해 달려갔던 신 지식인. 여성이 해방되는 꿈을 꾸며, 남성과 사대부에 굴복할 수 없다는 정신을 가지고. 독립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난도 헤쳐나갔던 현미옥의 생애에서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여기에서 묘하게 겹쳐 보이는 소설책이 떠올라 소개하려 한다. 20세기에 태어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조선 여성의 삶을 알고 싶다면, 조선희 작가의 대하소설 <세 여자>(2017, 한겨레 출판)를 읽어보길 추천한다.
후세의 아들에게 보내는 질문
연극 <아들에게>는 1900년대 초반 암울한 시대상을 등에 업고 자신이 길을 찾길 바랐지만 이념과 신념을 쫓아 월북한 전문직 여성의 삶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그러나 극단 미인은 "가정과 사랑에서 실수와 실패한 그녀가 자신을 항변한다면 가장 먼저 누구에게 고백하고 싶었을까?"라는 질문에 깊은 고민에 빠졌다. 역사 속에서 실존했던 인물을 탐구하며, 약간의 살을 덧붙여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지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국가의 이념과 사회의 통념에 묻혀 개인의 신명은 철저하게 무시될 수밖에 없었던 20세기 초반 세상은 지금과 비교하면 어떻게 다를까. 격동의 시기를 온몸으로 받아낸 처절하게 생을 마감한 한 여성의 생존기를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따라 개척자의 정신으로 이민을 떠난 조선인의 부모 아래에서 미국 시민권자 1호의 타이틀을 가졌지만 노예처럼 살아온 노동자의 삶을 두 눈으로 목격한 덕분에 공산주의를 신봉했던 그녀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100년이 흐른 지금도 각종 서로 다른 정치 이념으로 혼동의 강도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자신의 신념을 따를 수 있는 환경은 보장돼 있으며, 자신의 길을 걸으려는 여성의 길은 예전과 분명하게 차이가 있다. 그런데 아직도 100% 보장된 안정적인 시대에서 이들이 떳떳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되묻는다. 이것은 어머니 못지않게 기구한 생을 살다간 아들(정웰링턴)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아들에게>라 제목을 지었다 말했지만 정작 숨은 의도는 아직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후세의 아들에게 되묻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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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쓰고 있다. 문화예술 시사 월간지에서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에서 객원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만나고 있다. 현재는 '서울문화투데이' '더프리뷰' 등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