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3일> 스틸컷
CJ CGV
02.
"그날은 제 인생에서 최고로 중요하고 특별한 날이니까요."
사실 영화 자체는 그리 특별할 것이 없다. 앞서 설명했던 시놉시스 외에 분사되는 다른 이야기도 없을뿐더러, 스토리 상으로도 전혀 복잡하지 않다. 핵심은 남겨진 사람이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해 준비하는 장례 형식을 반대로 뒤집어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로 보자면, 아들인 태하가 엄마의 장례를 준비하고자 하지만, 1년 전부터 이미 자신의 장례를 모두 설계하고 준비한 엄마로 인해 되려 장례식을 선물 받게 된다는 것. 어쩌면 영화의 타이틀이 '3일장'이 아닌 '3일'인 이유도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3일 동안 치르는 장례가 아니라, 3일의 장례식 동안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이처럼 뒤집힌 설정을 위해 마련되는 서사가 있다. 세상을 떠나기 전 오랫동안 병을 앓았던 엄마 주희와 그를 보살피기 위해 음악을 포기해야 했던 아들 태하의 사정이다. 일반적이라면 진부하게 느껴질 소재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부분이다. 조문객들이 한날한시에 모여야 하는 이유, 장례식장 한쪽 벽면 가득 아들 태하의 사진이 채워져야 했던 까닭, 장례지도사 하진에게 아들의 노래 하나를 맡긴 사정 모두가 이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떠나는 순간까지 남겨지게 될 아들의 꿈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도 함께다.
03.
이미지적으로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것이 있다. 엄마가 남긴 선물, 아들의 꿈을 다시 찾아주고 싶었던 그가 장례식을 빌어 마련한 공연 무대를 경험하는 동안의 태하 모습. 그리고 아들 몰래 자신의 장례를 홀로 준비하던 주희의 모습이다. 엄마가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마음을 쓰고 있었을지 알지 못한 채 원망만 했던 날들을 떠올려가는 아들. 끝내 자신은 마주할 수 없을 아들의 공연을 상상으로만 그리며 채워갔을 엄마. 영상 곳곳에 흩어져 있는 두 사람의 형상을 그러모으고 나면 어느 한쪽으로도 밀리지 않는 커다란 두 힘이 형성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쓰이는 건 역시 자신의 영정 사진을 찍는 주희의 모습이다. 장례지도사인 하진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아무도 없이 홀로 웃음을 짓는 그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밝은 쓸쓸함이 참으로 짙은 장면이다.
한편, 태하를 도와 주희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장례지도사 하진이 '죽음이라는 것이 끝이라고들 많이 생각하지만 다시 이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말을 남기는 장면이 있다. 하진은 극 중에서 물리적으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지만, 이 짧은 대사 하나로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것이 그 자리를 공허하거나 황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 형태는 다소 달라지겠지만 '사랑'이라는 본질은 그대로 남게 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태하는 엄마의 공백으로부터 더 많은 기억을 떠올리는 모습이다. 엄마가 준비한 장례식의 서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이 걸린 벽 너머에서, 그리고 무대 위에서. 그렇게 엄마의 자리는 다시 가득 채워진다.
▲영화 <3일> 스틸컷CJ CGV
04.
"고맙다는 말, 꼭 하고 싶었어. 내 엄마로 살아줘서 고마워."
영화적으로는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는 전형적인 이야기에 속수무책으로 마음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때가 있다. 영화 <3일>이 그렇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기억이 있다면 꼭 그렇게 되고 마는 주제와 서사, 그리고 이를 묵직하게 그려내는 배우들의 연기. 영화를 보는 내내 자신이 내고 만드는 모든 종류의 소리가 지금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하고 생각하게 했다.
장례가 시작된 지 3일이 되는 날, 태하는 처음과 조금 다른 모습으로 엄마의 장례식장을 나선다. 마음이 덜어진 듯 편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정확히 마주할 수 있게 된 것도 같다. 이 글의 처음에서 장례는 함께했던 시간을 접어 묻어두는 일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태하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에는 사무치게 그리운 날이 있을 것이고, 또 어떤 날에는 그의 맑고 고운 미소를 미소 지으며 떠올리기도 할 테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의 사랑을 그렇게 키워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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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