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초 재희와 한채영·엄태웅 등 신예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드라마 <쾌걸춘향>은 30%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통칭 '홍자매'로 불리는 홍정은-홍미란 작가의 화려한 등장을 알렸다. 홍자매 작가는 같은 해 연말 이다해와 이동욱·이준기 주연의 <마이걸>을 24%, 2006년에는 한예슬,오지호 주연의 <환상의 커플>을 21.4%의 시청률로 견인하며 승승장구했다(닐슨미디어 시청률 기준).
하지만 세 편 연속 시청률 20%가 넘는 드라마를 집필한 홍자매 작가는 2008년 <쾌도 홍길동>이 <뉴하트>라는 경쟁작을 만나 16.9%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주춤했다. 장근석과 박신혜가 주연을 맡은 <미남이시네요> 역시 일본과 대만에서 리메이크되고 한국에서는 뮤지컬, 일본에서는 연극으로 제작될 정도로 큰 화제가 됐지만 <아이리스>와의 경쟁에서 뒤지며 10.9%의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2010년 이승기와 신민아를 앞세운 <내 여자친구의 구미호> 역시 지상파의 마지막 시청률 50%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를 만나는 바람에 끝내 시청률 20%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렇게 세 편 연속 시청률 20%를 넘지 못하고 침체(?)에 빠졌던 홍자매 작가는 2011년 5년 만에 MBC로 돌아와 다시 시청률 20%를 돌파하는 작품을 쓰면서 슬럼프를 '극복'했다. 바로 차승원-공효진 주연의 <최고의 사랑>이었다.
톱스타 연기도 찰떡같이 해낸 차승원
▲11회 엔딩 장면이었던 독고진(왼쪽)과 구애정의 키스신은 '충전키스'로 불리며 많은 화제를 모았다.
MBC 화면캡처
차승원은 강동원·주지훈·김우빈 등 지금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모델출신 배우'의 터를 닦아준 인물이다. 1990년대 중반 '남자모델=차승원'이라는 공식이 있었을 정도로 모델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그는 1997년 영화 <홀리데이 인 서울>을 통해 배우로 데뷔했다. 여기에 <이승연의 세이세이세이>, <김혜수의 플러스유> 같은 토크쇼에서는 보조 MC로 화려한 입담을 자랑했다.
모델 출신답게 훤칠하고 멋있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하던 차승원은 2000년 영화 <신라의 달밤>이 서울 관객 160만 명을 동원하며 코미디 배우로 가능성을 보였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그 후 <라이터를 켜라>와 <광복절 특사> 등 코미디 영화를 연속으로 히트시켰고, 2003년 <선생 김봉두>에서 데뷔 후 처음으로 단독 주연을 맡으며 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흥행 배우로 떠올랐다.
차승원은 <국경의 남쪽>,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등 여러 영화에서 진지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변신을 시도했지만 사극 스릴러 <혈의 누>를 제외하면 결과가 썩 좋지 못했다. 2003년 <보디가드>부터 2009년 <시티홀>, 2010년 <아테나:전쟁의 여신> 등을 통해 간헐적으로 드라마 출연을 병행하던 그는 2011년 <최고의 사랑>에서 톱스타 독고진을 연기했다.
차승원은 심장 수술을 받아 언제나 안정된 심박수를 유지해야 하지만 '생계형 연예인' 구애정(공효진 분)을 보면 심장이 빨리 뛰는 독고진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는 <최고의 사랑>을 21%의 시청률로 이끌며 MBC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과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했다. 2010년대 중반까지 흥행에서 다소 주춤했지만 2010년대 후반부터 강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배우로 또 한 차례 성장했다.
2018년 <독전>에서 브라이언, 2021년 <낙원의 밤>에서 마이사를 연기하며 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차승원은 2022년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기러기아빠 한수 역을 맡아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줬다. 지난해 드라마 <폭군>에서 국정원 출신의 살인청부업자, 넷플릭스 영화 <전,란>에서 선조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그는 올해도 드라마 <광장>과 영화 <어쩔 수가 없다> 등 차기작이 줄을 서있다.
톱스타와 생계형 연예인의 유쾌한 러브 스토리
▲<최고의 사랑>은 최고 시청률 21%를 기록하며 <시티헌터>, <로맨스타운>과의 시청률 경쟁에서 승리했다.
<최고의 사랑> 홈페이지
<최고의 사랑>은 영화 위주로 활동했던 차승원의 드라마 출연으로 화제가 됐지만 <고맙습니다>와 <파스타>를 통해 전성기를 달리던 공효진과 홍자매 작가의 만남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사실 공효진이 연기한 구애정은 '톱스타와 사랑에 빠지는 생계형 연예인'이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의 캐릭터였지만 공효진의 사랑스런 연기 덕분에 시청자들이 어색하지 않게 드라마에 빠져들 수 있었다.
<최고의 사랑>은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역으로 라이징 스타로 도약한 이민호를 앞세운 SBS의 <시티헌터>와 동시간대에 방송되면서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었다. 물론 선남선녀 주인공과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 <시티헌터> 역시 꾸준한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두 드라마의 대결은 홍자매 작가의 유쾌한 대본과 차승원-공효진의 맛있는 연기가 조화를 이뤘던 <최고의 사랑>이 판정승을 거뒀다.
홍자매 작가의 드라마에서는 캐릭터들이 반복해서 사용하는 대사들이 유행어가 되곤 했는데 <최고의 사랑>에서는 단연 독고진이 했던 "극복"이라는 대사가 독보적인 인기를 끌었다. 실제로 "극복"은 높은 인기 덕분에 드라마 안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됐고 "성공", "행복" 등 다른 단어들로 변주 되기도 했다. 심지어 드라마의 마지막 대사 역시 "이런 드라마 만나서 영광인 줄 알아, '극복'"이었다.
<최고의 사랑>에서 구애정이 속했던 '국민 걸그룹' 국보소녀는 멤버 간 불화와 멤버의 갑작스런 잠적 등 여러 이유로 갑작스럽게 해체됐다. 사실 드라마 속 국보소녀의 해체 스토리는 한국 걸그룹 역사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들이 겹치곤 한다. 실제로 멤버 간의 불화로 팀이 해체되거나 특정 멤버가 탈퇴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강세리(유인나 분)처럼 혼자 활동하면서 더 크게 성공한 걸그룹 멤버도 적지 않다.
<최고의 사랑>은 인기 가수들이 대거 참여한 화려한 OST로도 유명하다. 아이유가 부른 <내 손을 잡아>는 아이유가 발표한 첫 번째 자작곡이었고 원태연 시인이 가사를 쓴 <나를 잊지 말아요> 역시 허각의 대표곡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역시 <최고의 사랑> OST 중에서 시청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는 단연 드라마의 메인테마이자 독고진의 심장을 떨리게 했던 써니힐의 <두근두근>이었다.
악역이 되기엔 너무 착했던 국보소녀 막내
▲국보소녀의 막내 강세리는 마지막회에서 독고진과 결혼하는 구애정의 신부 들러리를 서줄 정도로 멤버들과 화해했다.MBC 화면캡처
국민그룹 지오디의 멤버이자 젊은 대중들에게 <범죄도시>의 장첸으로 더욱 유명한 윤계상은 아직 배우로 완전히 자리 잡기 전이었던 2011년 <최고의 사랑>에서 '완벽남' 윤필주를 연기했다. 맞선 프로그램에서 만난 구애정에 대해 호감을 보이지만 로코물의 서브남주답게 여주인공의 행복을 위해 그녀를 포기한다. 윤계상은 1년 후 <하이킥:짧은 다리의 역습>에서도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데뷔작 <지붕 뚫고 하이킥>과 예능프로그램 <영웅호걸>,드리마 <시크릿가든> 등을 통해 인지도를 쌓은 유인나는 <최고의 사랑>에서 국보소녀 막내에서 가수 겸 MC로 성공한 강세리 역을 맡았다. 강세리는 국보소녀 해체의 원인을 제공했음에도 여전히 구애정에 대해 악감정을 품기도 했지만 천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라 마지막에는 구애정과 국보소녀 멤버들에게 사과하고 다시 멤버들과 친해졌다.
<최고의 사랑>에 출연했던 조연 캐릭터들 중에서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캐릭터는 아역배우 양한열이 연기한 구애정의 조카이자 구애환(정준하 분)의 아들 구형규였다. 독고진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퀴즈'를 하면서 '띵똥'으로 불리게 된 형규는 캐릭터 이름보다 '띵똥'이란 별칭으로 더 유명했다. 어느덧 20대 청년이 된 양한열은 2023년 군에 입대해 오는 4월 전역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5월 유튜브를 개설해 현재 70만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최화정은 <최고의 사랑>에서 독고진과 구애정의 소속사 대표 문진영 역을 맡았다. 소속 연예인들과 갈등을 벌이는 대표들과 달리 문진영은 독고진과 회사 내 일들을 직접 상의한다(그만큼 독고진의 영향력이 큰 회사라는 뜻이다). 실제로 문진영은 독고진이 심장 재수술을 받게 됐을 때 눈물을 흘릴 정도로 인간적인 면을 가진 기획사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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