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천사와 드라이브> 스틸컷
다큐멘터리 <천사와 드라이브> 스틸컷인디그라운드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한 앉은뱅이 소년이 있었다. 또래 아이들이 학교를 갈 때 소년은 곰팡내 나는 골방에 몸을 숨겼다. (생략) 가장이었던 그가 가족을 위해 할 수 있었던 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드라이브였다. 조수석엔 아내를 뒷좌석엔 세 명의 아이들을 태우고 무엇도 두려울 것 없이 세상을 달렸다."

어떤 관계는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더 복잡해지곤 한다. 서로의 사정을 잘 알지 못했다면 이렇게까지 마음을 쓰고, 정리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을 텐데. 어딘가를 놓친 것만 같은 기분에 고개를 돌리고, 위치를 바꿔가며 풀어보려고 해도 답을 찾기가 쉽지 않은 관계. 대체로 가족이 그렇다. 모든 것을 알아야 할 것 같지만, 막상 떠올려보면 잘 알지 못하는 구멍이 이곳저곳에 뚫려 있는 것만 같은 기분.

다큐멘터리 <천사와 드라이브>를 연출한 김로사 감독에게도 그런 존재가 하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면서도 그 마음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아빠다.

감독의 아버지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으로 태어났다. 청년이 된 그는 뛰어난 손재주로 시계방을 차렸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 세 아이가 있는 가정을 꾸렸다. 몸을 아끼지 않고 가족을 부양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전 국민을 힘들게 만들었던 경제난 속에서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 가장이었던 그가 가족을 위해 할 수 있었던 것은 운전대를 잡고 안전한 가족의 드라이브를 책임지는 것. 이 작품은 뒷좌석에서 그런 아버지의 넓은 등을 바라보았을 어린 딸 로사의 마음을 담은 한 통의 편지와도 같다.

02.
"왜 우리 아빠여야 했을까? 그 이유를 묻는 여정에서 나는 항상 무력감을 느끼고 만다."

프롤로그와도 같은, 아버지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끝나고 나면 예상하지 못한 장면으로 본편이 시작된다. 구급차에 실려 어딘가로 향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호자의 시선으로 담은 숏 하나와 그의 병이 시작된 공간을 홀로 맴도는 감독의 모습이 담긴, 그 공간을 모두 스케치하는 신 하나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잠시 과거의 흔적 속에 머물고 있던 감독 자신과 그의 아버지 원태씨가 지나온 삶의 궤적 속으로 향하던 관객 모두를 즉시 현실로 소환한다. 추억을 회상하기 위함이 아니라 지금 가족이 지나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를 담고자 하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직접 등장하지 않는, 화자인 김로사 감독의 내면을 감히 추측해 보자면, 두 시점을 오가는 것도 아닌, 온전히 과거의 이야기에 매몰되는 것도 아닌 방법을 선택한 것은 오랜 시간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 노력해 왔던 지난한 시간을 담고자 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아버지라는 존재를 지켜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떠오르고 마는 감정들, 안타깝다거나 안쓰럽다거나, 어쩌면 일말의 동정과 같은 마음들을 모두 걷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바라보고 대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과정이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그는 스스로 쓰고 담아내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스크린을 통해 그를 바라보게 될 이름 모를 수많은 이들이 자신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을 한 겹의 레이어, 어쩌면 오독의 원인이 될 수도 있을, 그 막 하나를 최대한 없애고자 했던 게 아닐까 하고 가늠해 보게 된다.

 다큐멘터리 <천사와 드라이브> 스틸컷
다큐멘터리 <천사와 드라이브> 스틸컷인디그라운드

03.
그런 감정적인 프레임을 걷어내고 난 뒤에 이 이야기 속에 남는 것은 두 가지다. 좋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시골에 자신에게 맞는 집을 짓고 생활하면서 건강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과 다시 가족의 운전사가 되어 드라이브를 하길 원하는 아빠의 꿈이 하나. 그리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지금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을 해가면서 서로 소통하고 의지하는 가족의 밝고 건강한 모습이 또 하나다.

물론 언제나 밝고 유쾌하게, 감정적 필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기에 쏟아지는 부정 속에서 헤매기도 하고,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잠시 희망을 잃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어느 하나를 잠시 희생하는 선택을 하게 되기도 한다.

아빠가 의학적으로는 가장 좋지 못한 환자군에 속하기 때문에 계획하고 있는 것들이 어려울 것이라 말하는, 자신의 상태를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아빠 본인과 달리, 잘 버티고 있지만 안심하기는 힘든 상황이라 전하는 담당 의사와의 대화 장면이 그렇다. 그날, 로사는 있는 그대로의 말을 옮기지 못했다. 아빠의 마음을 지켜주기 위해 정확한 소통을 잠시 미뤄둔 것이다. 이런 때에는 다시 장막 하나가 드리워진다.

다시 보자면, 이 작품 <천사와 드라이브>는 지금 가족에게 중요한 두 공간 위로 때때로 엄습해 오는 어둡고 부정적인 감정을 끊임없이 걷어내고 치워내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드러난 매끄러운 가족의 모습을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단언컨대, 그것을 거짓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영상 속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삶의 단편일 뿐이며, 카메라가 삶의 일부를 옮겨온다고 해서 그 이야기 속에 실존하는 이들의 시간까지 끊어낼 수는 없다.

04.
"우리는 정말 다시 드라이브를 할 수 있을까?"

초반부에는 화자인 감독이 들고 있는 카메라 프레임 너머로 눈을 감고 잠들어 있는 아빠의 얼굴이 가득히 채워지는 장면이 나온다. 어떤 존재를 오롯이 들여다보는 행위의 곁에 사랑이 아닌 다른 단어를 가져다 놓을 수 있을까? 이 장면이야말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야기해 왔던 이 작품의 가장 순수한 감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설정된 시선은 러닝타임 내내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나는 이것이 기술적 장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운전대를 잡은 아빠가 뒷좌석의 세 남매를 바라봤을 시선,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가족의 버팀목을 대신하고자 했을 엄마의 마음, 그런 총체의 전이다.

이제 로사는 자신의 꿈을 꾸기 시작한다. 아직 서툴지만 언젠가 아빠 대신 가족의 운전대를 잡고 길고 긴 드라이브를 하겠다는 꿈이다. 독학으로 운전면허까지 땄다. 그를 닮아 작은 몸집을 가졌지만, 역시 그를 닮은 섬세한 손길로 이끌어주고자 한다. 자신이 아빠의 차에서, 휠체어 위에서 마음껏 눈을 감고 꿈을 꿨던 것처럼 말이다. 오래전 그랬듯이, 그 드라이브는 분명 무엇도 두려울 것 없이 세상을 달리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한국 독립예술영화의 유통 배급 환경 개선을 위해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한 인디그라운드는 2025년 3월부터 총 18개의 큐레이션을 통해 ‘2024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90편(장편 22편, 단편 68편)을 소개/상영할 예정입니다. 두 번째 큐레이션인 '손에 꽉 쥐고'은 3월 16일부터 3월 30일까지 보름간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 가입 후 무료로 시청 가능합니다.
영화 다큐멘터리 인디그라운드 천사와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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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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