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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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고되게 캐낸 해산물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더 이상 물질로 살아갈 수 없는 병들거나 늙은 해녀들의 삶을 부조하는 데 공평하게 쓰인다. 혼자만의 노력만으론 상군의 해녀가 될 수 없다. 앞선 세대 해녀가 전수한 물질의 지혜, 바다 속에서 숨이 끊어질 생사의 위기를 함께 넘어온 공동의 감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애순 엄마 광례(엄혜란)와 물질을 함께 해 온 해녀들의 이 공동체 감각은 애순 엄마가 떠난 자리를 채워주며 애순의 든든한 지지자로 거듭난다. 첫사랑과 첫 야반도주를 한 애순을 헤프다 나무라지 않고, 애순과 도피 행각을 벌인 관식의 부모에게 은근한 압력을 행사한다. 가난으로 못 이룬 애순의 향학열부터 여성차별로 급장 선거에서 9표를 더 받고도 부급장에 머문 소녀 애순의 권력욕까지 모두 감싸고 인정한다.
마침내 이들은 화끈한 선거운동으로 중년 애순(문소리)을 마을 최초의 여성 어촌계장 자리에 세우고야 만다. 애순의 삶에 관식의 순애보만큼이나 이들의 지지와 인정과 사랑이 없었다면, 그녀가 말하는 "나름 쨍쨍한 인생"은 없었을 것이다.
애순 엄마가 죽고 엄마의 집에 남겨진 이복동생들은 '심성이 식모'인 애순의 차지가 된다. '한량' 행세하는 계부 병철(오정세)는 애초 아이들을 돌볼 마음이 없이 밖으로 나돌며 애순을 '식모'로 부리기 위해 대학 공부 시켜준다는 감언이설로 착취한다. 마침내 새 애인을 데리고 나타난 계부를 보자 애순은 약속이 공수표가 된 것을 확인하고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녹록지 않은 세상, 금명이를 응원한다
애순이 쫓겨난 걸 앓던 이 빠진 것처럼 속 시원해하던 계부의 애인 민옥(엄지원)은 살아보니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린 여자아이가 부모도 없이 돈도 없이 혼자 양배추 농사를 지어 어린 동생들을 돌본 그 마음은 얼마나 웅숭깊은가. 민옥이 과거의 옹이졌던 마음을 미안해하며 애순에게 "난 너 존경해"라고 고백하는 장면은 그녀가 양심 있는 여자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제주 여자의 낯을 세운다.
애순이 소녀 시절을 외롭고 고되게 보낸 집을 떠나게 된 민옥은 부채감을 떨칠 수 없다. "애순의 사춘기를 잡아먹은 값"이야 응당 애순 계부가 지불해야겠지만, 그가 그럴 위인이 아니다. 민옥은 애순의 초라한 신혼 셋방의 월세를 석 달 치 선불 대납한다. '도의적 장학금'이 '도희정 장학금'이 되면 어떻겠는가. 민옥의 양심이 '도의적'이면 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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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지지와 연대 속에서 열심히 살아 어느덧 애순. 그러나 그토록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가난이 딸 금명(아이유, 1인2역)의 발목을 붙잡는다. 서울대에 떡하니 합격했어도 가난한 어부 부모는 떳떳한 대학생으로 살고자 하는 딸의 삶을 보조하지 못한다. 개천을 벗어날 수 없다면 개천 용이 무슨 영광이란 말인가. 결국 애순은 엄마의 영혼이 깃든 집을 판 돈으로 금명의 유학 비용을 댄다.
이건 분명 애순의 욕망이 금명에게 약간 비틀린 채 투사된 대리 만족임에 틀림없지만, 야단하기 망설여진다. 딸이 자신처럼 살기를 바라지 않은 애순의 다짐처럼, 집 팔아 아들이 아닌 딸을 공부시킨 반란이 가부장의 관습을 '통쾌'하게 깨부수기 때문이다.
애순의 분투에도 출발선이 너무 다른 금명의 서울 생활은 부모의 희생을 복구할 만큼 그렇게 극적으로 반짝이지 못한다. 결혼하고 싶은 남자의 엄마는 결혼하고도 직장을 다니겠다는 금명의 마음을 무참히 짓밟는다. 금명의 사회 인정 욕구를 '가난으로 비틀린 허영심'이라 모욕한다.
'개천 용' 금명은 저 무도한 예비 시모의 며느리가 돼 개천을 배신하게 될까. 남편은 끽해야 "시엄마 아들"이라는 해녀 이모들의 진리가 귓가에 어른댄다. 87학번 금명은 '개천 용'의 죄책감을 안은 채 어떻게 연애와 결혼을 통해 가부장 문화와 타협하게 될까. 자못 궁금하다.
딸은 자신처럼 살기를 바라지 않은 애순의 1960년대를 지나, 똑순이 울보 금명이 마주하고 있는 1980년대는 '양성평등'조차 낯선 시대였다. 절대 녹록지 않은 세상이지만 금명이 펼칠 인생을 응원할 수밖에 없다. "금명이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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