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안양 정관장 레드부스터스 모습(자료사진)
프로농구 안양 정관장 레드부스터스 모습(자료사진)연합뉴스

농구에서 '정당한 몸싸움'을 하라고 도입된 하드콜이 '진짜 싸움'을 유발하는 트리거가 되어버렸다.

12일 대구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KCC 프로농구 대구 한국가스공사와 안양 정관장의 경기는 그야말로 스포츠맨십이 실종된 올시즌 최악의 경기가 됐다.

이날 경기는 양팀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일전이었다. 5위 가스공사는 최근 3연패의 수렁에 빠져 있었고, 7위 정관장은 6강플레이오프 막차 티켓을 따내기 위해 이날 경기를 꼭 잡아야 했다.

가스공사는 이날 외국인 선수 앤드류 니콜슨이 겨우 19분 8초만 출장하고도 무려 67%의 야투율로 31점을 몰아친 신들린 맹활약을 앞세워 홈에서 정관장을 88-76으로 격파했다. 23승 21패가 된 한국가스공사는 5위를 유지했지만 6위 원주 DB(19승 25패)와 격차를 4경기로 벌리며 6강 확정에 청신호를 밝혔다. 반면 정관장 17승 27패로 DB와 격차가 2경기로 벌어지면서 6강진출에 빨간 불이 켜졌다.

격투기 연상시키는 거친 플레이

하지만 이날 승부는 양팀의 경기력보다 다른 측면에서 더 농구팬들에게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가스공사와 정관장 선수들은 이날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격투기를 연상시키는 거친 플레이와 신경전을 펼치며 분위기가 과열됐다.

양팀 합쳐서 파울만 무려 48개가 나왔고, 서로 번갈아가며 테크니컬 파울을 받았다. 흥분한 선수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돌파나 스크린 과정에서 자칫 부상을 초래할수 있는 고의적이고 위험한 플레이를 장군멍군식으로 일삼으며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심지어 선수나 코치도 아닌 통역관이 벤치에서 상대 선수를 비방했다는 혐의로 파울을 받는 황당한 장면도 나왔다. 가스공사 박지훈과 정관장 변준형은 볼 경합 과정에서 뒤엉켜 감정싸움을 벌이다가 정말로 멱살잡이 직전까지 치달으며, 심판과 주변 선수들이 달라붙어 제지해야 했다.

선수 풀이 좁고 선후배 관계가 강한 국내 농구에서는, 그동안 선수대 선수 개인간 우발적으로 소소한 충돌은 종종 있었어도, 팀대 팀간의 신경전으로 분위기가 이렇게까지 크게 과열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농구팬들에게는 오랜만에 거친 플레이가 난무하며 난투극도 수시로 벌어지던 1980-1990년대의 농구를 보는 듯한 기시감을 떠올리게 했다.

이러한 난장판 경기의 빌미를 제공한 원인은 올시즌부터 프로농구에 도입된 '하드콜(몸싸움에 관대한 판정)'이다. KBL은 기존의 파울콜이 경기 흐름을 자주 끊는다는 지적을 반영해 2024-25시즌부터 정당한 몸싸움이나 심하지 않은 신체접촉에 대해서는 파울 판정을 하지 않겠다고 판정 기준의 변화를 선언했다.

올시즌 개막 초반에는 이러한 하드콜의 영향으로 지난 시즌보다 한층 과감한 압박수비와 적극적인 몸싸움 장면이 경기마다 크게 늘어났다. 특히 강력한 수비를 트레이드 마크로 하는 가스공사는 시즌 초반 이러한 하드콜의 최대 수혜팀으로 꼽히며 선두권을 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3라운드부터 미묘하게 파울 판정 기준이 변화해 다시 예전으로 회귀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교롭게도 가스공사는 지난 3-4라운드에서 연이어 리그 팀 최다 파울 1위를 기록할 만큼 파울 판정이 급증했고 성적도 주춤하면서, 하드콜의 수혜자에서 피해자로 입지가 바뀌었다. 또한 오락가락하는 하드콜 정책에 대해 각 구단들 사이에서 이구동성으로 '일관성 없는 판정 기준'을 두고 불만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몸싸움과 파울 사이 기준 제대로 잡아줘야

정관장-가스공사전은 기준 없는 하드콜이 농구 경기를 얼마나 망칠 수 있는지 단 한 경기로 요약한 반면교사에 가까웠다. 이날 양팀 선수들이 흥분하게 된 진짜 이유는, 경기 내내 정당한 몸싸움과 파울 사이의 기준을 제대로 잡아주지 못한 경기 운영이었다.

정당한 몸싸움이 인정되려면 선수가 공간을 점유하는 과정에서 몸으로 자연스러운 접촉이 이뤄지는 경우여야 한다. 먼저 손과 팔을 사용하거나 어깨를 먼저 집어넣는 행위는 당연히 파울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서도 어떤 장면에서는 파울이 불리고 어떤 장면에서는 파울이 인정되지 않으니, 양팀 선수들은 서로 심판의 판정에 납득하지 못하고 불만과 피해의식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이날 경기를 중계한 이규섭 IB스포츠 해설위원도 여러 차례 심판 판정을 비판하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 위원은 전반부터 "손을 치는 장면에는 파울이 나와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부상이 나올 수 있다"며 판정 기준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어 양팀 선수들이 계속 충돌하며 경기가 파국으로 치달은 4쿼터에는 "그동안 일정 수준의 접촉에 파울이 안 나오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거다. 선수들이 그동안 불렸던 콜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하며 문제의 원인이 심판에게 있음을 강조했다.

양팀 감독들도 과열된 경기를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빼야했다. 김상식 정관장 감독은 작전타임을 불러서 "저쪽에서 몸싸움을 거는데 심판이 파울을 안 불고 있지 않나. 우리도 같이 (몸싸움을) 해야지, 싸우라는 이야기가 아니다"며 흥분한 선수들을 진정시켜야 했다.

강혁 가스공사 감독은 경기 후 "거칠게 할 수는 있지만, 서로 부상이 나오지 않게 플레이를 해야한다. 선수들이 흥분했는데, 상대에게 말리지 않고 영리하게 플레이할 수 있도록 이야기하겠다"며 과격해진 경기 분위기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농구는 신체접촉이 많고 격렬한 운동이다. 그래서 부상 위험도 높기에, 선수들을 보호할수 있는 공정한 파울콜과 상호 스포츠맨십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취지에서 시작된 제도라고 해도, 정작 현장에서 심판이 제대로 취지에 맞는 운영을 하지 못하면 하드콜은 언제든 '싸움콜'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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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콜 KBL 안양정관장 대구가스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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