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침범> 스틸컷
영화 <침범> 스틸컷㈜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엄마 영은(곽선영)은 기이한 행동을 하는 7살 딸 소현(기소유)을 홀로 돌보며 산다. 수영 강사인 그는 자식이 무섭다는 남편과 이혼했다. 하지만 딸과 살수록 영은의 영혼도 피폐해지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소현이 태어나면서부터 무섭거나 이상한 특징이 있던 건 아니다. 실은 첫 아이라 비교할 대상도 없다. 아이가 이상하다고 느껴도 영은은 딱히 하소연하거나 물을 곳이 없었다. 그저 남들도 다 비슷한 시간을 겪겠지 생각하며 아이를 키웠다. 그런데 최근 딸의 이상 증세가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영은은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자식을 후천적으로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는 엄마다. '내가 잘 못 키운 탓일까'라는 자책은 마음속 끊임없는 파동을 만들어 내고, 의무감과 책임감을 느낀다.

어느 날, 딸과 관련해 수영장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진다. 영은은 물을 무서워하는 아이를 수영장으로 데려와 훈육하려 한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아이와 관련해 반복된 사고를 수습하는 영은은 아이의 잘못을 자기 탓인 양 생각한다.

딸은 엄마가 소중히 여기는 가정, 직장을 무너트리면서까지 오롯이 자기에게만 관심 주길 원한다.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험한 말과 섬뜩한 행동으로 일관한다. 달래 보기도 하고 혼내 보며 나름의 분출구를 찾으려고 하지만, 엄마를 향한 애증은 날로 심각해진다.

위태로운 모녀 관계는 '성악설'과 '성선설'이란 화두를 수면 위로 올리기에 충분하다. 딸의 악마성을 발견한 엄마의 심리를 모래성 쌓듯 불안하게 다룬다. 그런 면에서 영화 <케빈에 대하여>와 맥이 닿는다. 반사회적 성향, 살인 본능, 공감 부족,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을 하는 영은의 딸 소현과 케빈은 비슷한 지점이 많다.

'악'은 태어나는가, 길러지는가

 영화 <침범> 스틸컷
영화 <침범> 스틸컷㈜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침범>은 미세한 균열이 커지는 것도 모른 채 지켜보다 결국 관계에 구멍이 생기는주인공을 다룬다.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뉜다. '물' 안에서 아슬아슬한 모녀를 다룬 1부는 김여정 감독이 연출했다. '불' 같은 두 여성의 팽팽한 심리전인 2부는 이정찬 감독의 입김이다. 마치 2막으로 구성된 연극 한 편을 보는 듯하다.

모성 신화 사이에 갇힌 엄마를 비롯해 인간의 본성과 가족의 의미를 되묻는다. 김여정, 이정찬 두 감독은 각자의 시나리오를 쓰던 중 공통점을 파악하고 이를 하나의 영화로 완성했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한 가지이지만, 영화가 두 갈래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2부에서 영화는 두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20년 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수 청소업체 직원인 민(권유리)은 신입 해영(이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딘지 모르게 어두운 구석이 보이는데, 자신과 같은 부류로 느껴져 불편하다. 겉으로는 해맑은 표정의 해영을 모두가 환영하는데, 민은 못마땅하기만 하다.

이후 민은 과거가 밝혀질 위태로운 순간을 마주한다. 그리고 해영과 육탄전을 벌인다. 엄마처럼 믿고 따르던 현경(신동미)과 관계도 망가진다. 민은 불안함을 느끼지만, 어떻게든 나아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민'과 '해영'의 관계는 본성에 대해 다룬다. 연관 없어 보이는 두 이야기는 본성에 대해 다룬다. 1부와 2부 기이해 보이는 아이의 연관성을 찾는 진실 게임은 팽팽한 긴장감과 궁금함을 느끼게 한다. 마치 흩어진 퍼즐 조각이 맞추어지는 중후반부터는 스릴러와 수사물의 장르로 변주되어 몰입도를 높인다.

영화는 네 여성의 복잡한 심리 묘사를 통해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관계성을 톺아본다. 곽선영, 권유리, 이설, 기소유의 새로운 얼굴을 마주하는 즐거움이 러닝타임을 꽉 채운다. 두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와 관객을 교란하며 어떠한 해답도 내놓지 않고 끝난다.

마지막 장면의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각자 묵직한 돌덩이를 하나씩 안고 극장 문을 나설 수밖에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영역에 침범하고, 침범당하는 일이 벌어진 게 아닌지 끊임없이 반문하게 한다. 점차 삭막해지고 단절되는 세상에서 관계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침입자는 당신 곁을 언제나 노리고 있다는 경고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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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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