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 영혼과 피> 스틸컷
일미디어
카라바조는 나폴리와 몰타, 시라쿠사로 이어지는 도피행을 이어간다. 그사이 내놓은 걸작들과 그만큼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다. 작위를 받았다가 물의를 빚어 다시 그를 잃는 일이 되풀이된다. 톰마소니 가문이 고용한 업자를 비롯해 그를 뒤쫓는 자객들이 있었단 건 정설에 가깝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나폴리 뒷골목에서 습격당해 큰 부상을 입기에 이른다. 다시 교회가 제 뒤를 봐주는 날이 오기를 소망하며 도망, 또 도망을 치던 이 예술가는 건강을 회복한 뒤 새 피난처를 찾아 떠난 여정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을 맞는다.
추하기 짝이 없던 당대 가톨릭교회, 그중에서도 못난 인물인 교황 바오로 5세가 카라바조의 마지막 여정에 앞서 카라바조를 사면했다는 사실을 그는 끝내 알지 못하고 죽었다.
<카라바조. 영혼과 피>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어느 화가의 파란만장한 생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 감독 헤수스 가르세스 람베르트는 밀라노와 로마, 나폴리, 몰타 등을 오가며 카라바조가 남긴 수많은 걸작들을 하나씩 스크린 위에 띄운다. '성 마태오의 소명', '성 바오로의 회심',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메두사의 머리가 그려진 방패',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등의 작품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면 관객들은 "이 작품도! (카라바조의 것이었구나)"하고 탄성을 내지르게 된다.
앞서 나온 <피렌체와 우피치 미술관>·<라파엘로. 예술의 군주> 등에 이어 카라바조의 미술세계를 조명한 제작진은, 단순하지만 직관적인 연대기적 서술방법을 채택해 카라바조의 온 생애를 찬찬히 훑는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기록 탓에, 스스로도 글을 거의 쓰지 않았을뿐더러 훌륭한 예술가일지라도 화가에 대한 기록을 충실히 남기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던 당대의 한계 때문이겠으나, 카라바조의 성격과 심리상태를 깊이 들여다볼 계기까진 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면 아쉽다.
잦은 다툼 끝에 마침내는 살인까지 저지르고 도피행각을 벌였던 카라바조의 심리를 보다 깊이 해석하고 조명했다면 어땠을까. 여러 작품을 아울러 나열하는 것보다도 몇몇 작품과 그에 얽힌 사연을 심층적으로 파고들어 갔다면 보다 흥미로운 영화가 되긴 했을 테다.
그럼에도 전시와 도록, 또 극영화 감상에 앞서 카라바조의 생애를 학술적으로 접근하고 싶은 이가 있다면 이 영화보다 나은 선택은 흔치 않을 것이다. 도시에서 도시로 옮겨 다니며, 또 서로 다른 의뢰인들의 서로 다른 요구를 충족시키며 활동한 화가다. 그의 작품을 내가 평소 사는 지역, 흔히 보던 극장이 아닌 곳에서 만난 건 색다른 감흥을 일으켰다. 광주극장에서 만난 <카라바조. 영혼과 피>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카라바조. 영혼과 피> 포스터일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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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