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3월의 광주였다. 한국 민주화운동의 십자가를 진 혁명과 희생의 도시, 맛의 고장이라 불리는 전라남도의 중심지, 인구 140만 명이 살아가는 2000년 역사의 고장이기도 하다. 한국사에 남을 쾌거 중 하나인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또한 광주가 배출한 인물로 꼽히고, 기아 타이거즈와 광주FC라는 한국 프로스포츠 가운데 각별히 매력적인 인기팀들의 연고지이기도 하다.

모처럼 광주를 찾은 길이었다. 내게는 낯이 선 이 도시에서 나는 사흘을 머물러야 했다. 익숙한 곳과 익숙하지 않은 곳을 나다니며 나는 이 도시가 내가 미처 알지 못한 면모를 여럿 지니고 있음을 알았다. 그중 하나가 광주가 지닌 문화, 각별히 영화와 관련한 것이었다.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엔 특별한 극장이 하나 있다. 광주광역시의 이름을 내건 광주극장으로, 국내외 독립영화 및 예술영화를 전문으로 트는 단관 극장이다. 일대의 비교적 세련된 건물들과 한눈에 구별되는 이 극장의 낡은 외면이 눈길을 사로잡는데, 그 역사가 무려 90년에 이른다고 전한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조선인 거리였던 충장로 4가와 5가 일대에 지어진 이 극장은 식민지 조선인과 일본인 모두가 찾는 명소로 기능했다.

특별한 극장에서 만난 독특한 영화

 <카라바조. 영혼과 피> 스틸컷
<카라바조. 영혼과 피> 스틸컷일미디어

외관부터 특별한 이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나는 일정보다 하루 더 광주에 머물렀다. 상영 중인 다른 작품들은 죄다 본 영화라 <카라바조. 영혼과 피>를 보기로 결정했다. 17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화가 카라바조의 작품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그 생애를 남긴 작품들과 함께 짚어보는 연대기적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카라바조는 한국에서 때아닌 관심을 받고 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시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에 더하여 루이 가렐과 이자벨 위페르 등이 출연한 극영화 <카라바조의 그림자>, 그리고 다큐 <카라바조. 영혼과 피>까지 개봉하면서다. 1610년 사망한 이 화가의 작품과 그에 얽힌 이야기가 오늘의 한국 대중들에게 수백 년의 시공간을 건너 닿는 광경이 이색적이다.

<카라바조. 영혼과 피>는 위의 전시와 영화 중 가장 앞서 접할 만한 작품이다. 그건 이 영화가 카라바조가 살아간 삶의 궤적을 뒤따르며 남긴 작품과 그에 얽힌 사연을 차례로 풀어내는 설명서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라바조의 대표작들을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보며 각 작품에 대한 미술사학자들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도슨트와 함께 전시회를 관람하는 인상이 들기도 한다.

카라바조? 그게 누구야 묻는 이에게

미술사에서의 대단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에게 카라바조는 생소한 인물일 수 있다. 이탈리아 예술의 정점이라고도 불리는 르네상스 시대 대표적 예술가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꼽는데, 카라바조는 이들에 비해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앞의 작가들보다 반세기 이상 늦게 활동해 이 시기 미술의 혁명적 전환에 얼마 기여하지 못했고, 얼룩진 개인사도 대중의 추앙을 받기에 난감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카라바조의 본래 이름은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이지만, 앞서 언급한 천재 미켈란젤로가 당대 같은 분야에서 워낙 유명한 탓으로 출신지인 카라바조를 활동명으로 삼았다. 르네상스 절정기를 살았던 그는 당대 예술의 중심지 중 하나였던 밀라노에서 견습화가로 미술을 배웠고 청년 시절 로마로 이주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전 시대 거물들이 사라진 자리, 전대 거물들의 성취를 모방하고 반복할 뿐이었던 현역들 사이에서 카라바조의 재능은 금세 제 가치를 인정받는다. 프란체스코 델 몬테 추기경을 비롯, 로마 교황청 유명 인사가 그에게 그림을 의뢰했고, 완성된 작품들이 연달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카라바조에게 흔히 따르는 '르네상스 미술을 완성하고 바로크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가 어울리는 작품들이 차츰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균형과 조화, 아름다움의 구현에 충실한 르네상스 미술에서 그 양식은 존중하되 동적이고 감각적이며 때로는 파격을 서슴지 않는 바로크 회화의 특징이 엿보인다는 뜻이겠다.

살인자까지 감싸준 교회의 민낯

 <카라바조. 영혼과 피> 스틸컷
<카라바조. 영혼과 피> 스틸컷일미디어

무엇보다 카라바조는 제 작품에서 엿보이는 파격과 변화에 꼭 어울리는 성격의 인물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삼촌을 페스트로 잃고 낯선 도시에서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만 했던 그다. 불우한 가정사 속에서 오로지 예술에만 매진한 시간은 그를 더욱 외골수로 만들어갔다. 마음 둘 곳 하나 없는 불안정한 삶 속에서 카라바조는 갈수록 괴팍해졌다. 특히 술에 취하는 날에는 온갖 몹쓸 일들을 벌였는데, 흉기를 꺼내 상대를 위협하고 싸움을 벌이기 일쑤였다.

카라바조의 뒤를 봐주는 건 당대 교황청의 사제들이었다. 보는 이를 감각적으로 사로잡는 걸작이 종교개혁 이후 그 세를 넓혀가던 개신교에 대항할 무기라 여겼던 교회에선 전대보다 훨씬 귀해진 예술적 재능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카라바조가 다른 이들에게 해를 입히고 소란을 부려도 교회가 힘을 발휘해 번번이 그를 꺼내주는데 어찌할까. 카라바조는 갈수록 방종해졌고 그가 일으키는 문제 또한 더욱 심각해졌다. 놀라운 건 그 같은 일들을 거듭하면서도 꾸준히 훌륭함을 담고 있는 작품을 생산했다는 점이랄까.

카라바조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변곡점은 로마에서 일으킨 살인사건이다. 로마에서 제법 명망 있는 가문의 아들이었다는 라노치오 톰마소니란 자와 시비가 붙어 그를 찔러 죽인 것인데, 아무리 타락한 가톨릭교회라 해도 살인한 이를 무죄 방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카라바조는 사형선고를 받았고, 당국엔 그를 체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기에 이르렀다. 목에 현상금까지 걸려 가뜩이나 원한 있는 자 많은 카라바조는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그러나 가톨릭 고위 사제들의 성스러운 비호를 받아온 카라바조다. 그는 이번에도 위기를 벗어나는데,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삼엄한 경계를 뚫고 로마를 벗어나 나폴리로 도망친 것이다. 이미 명성 높은 예술가였던 카라바조가 새로운 도시에 당도했으니 이 일대 고관대작들이 그를 반기지 않을 리 없다. 비록 사형수이자 도망자 신세이긴 했으나 그가 죽인 이의 가문이 힘을 발할 수없는 다른 도시가 아닌가. 카라바조는 나폴리에서도 유력 가문의 비호 속에서 수많은 작품 의뢰를 받고 걸작들을 내어놓는다.

교황의 사면은 끝내 닿지 못했다

 <카라바조. 영혼과 피> 스틸컷
<카라바조. 영혼과 피> 스틸컷일미디어

카라바조는 나폴리와 몰타, 시라쿠사로 이어지는 도피행을 이어간다. 그사이 내놓은 걸작들과 그만큼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다. 작위를 받았다가 물의를 빚어 다시 그를 잃는 일이 되풀이된다. 톰마소니 가문이 고용한 업자를 비롯해 그를 뒤쫓는 자객들이 있었단 건 정설에 가깝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나폴리 뒷골목에서 습격당해 큰 부상을 입기에 이른다. 다시 교회가 제 뒤를 봐주는 날이 오기를 소망하며 도망, 또 도망을 치던 이 예술가는 건강을 회복한 뒤 새 피난처를 찾아 떠난 여정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을 맞는다.

추하기 짝이 없던 당대 가톨릭교회, 그중에서도 못난 인물인 교황 바오로 5세가 카라바조의 마지막 여정에 앞서 카라바조를 사면했다는 사실을 그는 끝내 알지 못하고 죽었다.

<카라바조. 영혼과 피>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어느 화가의 파란만장한 생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 감독 헤수스 가르세스 람베르트는 밀라노와 로마, 나폴리, 몰타 등을 오가며 카라바조가 남긴 수많은 걸작들을 하나씩 스크린 위에 띄운다. '성 마태오의 소명', '성 바오로의 회심',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메두사의 머리가 그려진 방패',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등의 작품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면 관객들은 "이 작품도! (카라바조의 것이었구나)"하고 탄성을 내지르게 된다.

앞서 나온 <피렌체와 우피치 미술관>·<라파엘로. 예술의 군주> 등에 이어 카라바조의 미술세계를 조명한 제작진은, 단순하지만 직관적인 연대기적 서술방법을 채택해 카라바조의 온 생애를 찬찬히 훑는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기록 탓에, 스스로도 글을 거의 쓰지 않았을뿐더러 훌륭한 예술가일지라도 화가에 대한 기록을 충실히 남기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던 당대의 한계 때문이겠으나, 카라바조의 성격과 심리상태를 깊이 들여다볼 계기까진 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면 아쉽다.

잦은 다툼 끝에 마침내는 살인까지 저지르고 도피행각을 벌였던 카라바조의 심리를 보다 깊이 해석하고 조명했다면 어땠을까. 여러 작품을 아울러 나열하는 것보다도 몇몇 작품과 그에 얽힌 사연을 심층적으로 파고들어 갔다면 보다 흥미로운 영화가 되긴 했을 테다.

그럼에도 전시와 도록, 또 극영화 감상에 앞서 카라바조의 생애를 학술적으로 접근하고 싶은 이가 있다면 이 영화보다 나은 선택은 흔치 않을 것이다. 도시에서 도시로 옮겨 다니며, 또 서로 다른 의뢰인들의 서로 다른 요구를 충족시키며 활동한 화가다. 그의 작품을 내가 평소 사는 지역, 흔히 보던 극장이 아닌 곳에서 만난 건 색다른 감흥을 일으켰다. 광주극장에서 만난 <카라바조. 영혼과 피>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카라바조. 영혼과 피> 포스터
<카라바조. 영혼과 피> 포스터일미디어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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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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