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 스틸
시네마 달
이제 역경을 딛고 성공적인 공연만 남은 듯하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들이 무대에 올릴 공연은 '레전드 춘향전', 여성국극 황금시대의 대표 래퍼토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세대를 아우르는 공연자들이 여성국극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합하려는 야심작이다. 이를 위해 주요 배역은 과감히 세대별 연기자가 조합되어야 한다. 상징성을 위해선 당연히 고안할 만한 방법이다.
그러나 공연을 기획한 이들이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속속 터진다. 1세대와 3세대는 할머니와 손녀보다 더 나이 차이가 크다. 공연 홍보 카피 중 하나는 심지어 '93세 대 93년생'일 정도다. 이 정도면 다른 나라 사람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2세대라 해도 1940년대생들과 세대 차이가 아득하다. 원로 연기자들은 자신들이 실제로 공연했던 정통에 따르려 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대사 한 마디조차 과거와 현재가 안 맞다. 초고속 압축 성장의 대명사 현대 한국 사회답게 언어의 변천도 가파르다. '아'와 '어'만 달라도 느낌이 확 변하는데 큰일이다.
박수빈과 황지영은 춘향전을 현대적으로, 여성주의적 재해석을 가하고자 피력한다. 그러나 선배들에겐 여성국극의 전통을 훼손하는 것처럼 비친다. 분위기가 미묘해진다. 선배들끼리도 의견이 반드시 일치하진 않는 모양새다. 과거에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건지 불편한 구석도 엿보인다. 오순도순하기만 할 것 같던 신구 여성국극 전수자들이 모인 연습실은 순간순간 복잡한 기운이 소용돌이친다. 오랜만에 큰 무대 오르려니 노구의 1/2세대 선배들 몸 상태도 예전 같지 않다. 대형 무대에서 현대적 공연 연출을 위해 조명을 절제하니 눈이 침침해 넘어질까 봐 당황하는 모습이 웃프다.
일단 모든 배역을 여성 연기자가 담당하니 얼핏 여성주의적 분위기 가득할 것 같은데, 오히려 이몽룡은 훈남이니 성춘향은 더 고전적 여성미를 강조해야 한다는 선배들 입장 vs. 좀 더 능동적 캐릭터로 춘향을 탈바꿈하려는 후배들 시각이 충돌하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여성국극 용어로 여성형 주연은 '이마이', 남성형 주연은 '삼마이', 반동인물이자 '빌런' 역할은 '가다끼'라 호칭하는데, 과거 공연에서 가장 핵심은 '삼마이'에 집중되었다. <왕자가 된 소녀들>이나 <정년이>를 보면 금방 이해될 대목이다. 선배들은 각자 오랜 세월 전담해 왔던 역할에 쉽게 자리를 잡는다. 역시 고수들은 다르다.
문제는 3세대 핵심 황지영이다. 삼마이 역 박수빈은 별 애로가 없다. 하지만 이마이 캐릭터 황지영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힌다. 1세대 선배들은 삼마이가 돋보이기 위해 이마이가 여리여리하고 가냘파야 한다고 주장한다. 황지영에게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거나, 배역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공연하다. 아마 처음으로 3세대가 선배들과 대립하는 순간일 테다. 그들 사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못했을 게다.
영화는 우여곡절 이어가며 2023년 '레전드 춘향전'으로 향하는 여정을 차근차근 밟는다. 막바지에 장대한 공연 무대를 보고 있자면, 마치 공연의 제작과정 다큐멘터리 보는 기분이다. 하지만 여성국극의 전환점을 기대하며 진행된 역사적 공연 역시 그들이 일으키려는 새로운 파도의 서막에 불과하다. 이유는 공연 에필로그가 설명해준다. 참으로 오랜만에 맞는 여성국극 부활의 노래로 다큐멘터리는 제 몫을 수행하길 기다리는 중이다.
<작품정보>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
Women's Gukgeuk: Enduring on the Edge of Time
2025|한국|다큐멘터리
2025.03.19. 개봉|104분|12세 관람가
연출 유수연
출연 조영숙, 박수빈, 황지영, 이소자, 이옥천, 김성예, 이미자
제작 더 액티비스트
배급 시네마 달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 포스터시네마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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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